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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안개 자욱한 길을 달리다
ⓒ 권기봉
원래 오전 9시 45분 무궁화호 열차를 탈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16일) 새벽까지 연거푸 들이킨 술로 그 시각까지 영등포역으로 간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더군요. 미련하고 게으른 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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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도무지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

서울 강남에서 오후 12시에 출발한 광주행 고속 버스는 빗길을 시원하게 달리고 있습니다. 호우주의보가 발령됐다고는 하지만 그리 세찬 빗줄기가 아니라 마음을 놓습니다. 오히려 차창 밖으로 지나쳐 가는 나무와 건물들이 마치 목욕이나 한 듯 맑게 다가와 더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인가요? 누구 말마따나 빗속의 여정은 개운한가 봅니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이내 시원한 호남 들판으로 접어듭니다. 회색 하늘, 그러나 벼는 푸르기만 합니다.

시원한 호남 들판 내달리는 버스 안에서

그토록 가고 싶던 운주사를 이제야 찾아갑니다. 지난달 목동 근처에서 평소 존경하던 선배와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선배가 그러더군요. "운주사에 가면 정말 감정이 복잡해진다"고. "정말 대단한 경험이었다"고. 동석했던 어느 선생도 그러더군요.

"운주사, 참으로 충격이었다."
"너도 꼭 운주사에 한번 가봐야 돼."

그땐 그저 그러려니 했지만 황석영의 <장길산>을 읽고는 본격적인 여름이 다가오기 전에 꼭 한번 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 너른 호남 들판
ⓒ 권기봉
물론 책 말미에서 황석영이 말하고 있는 미완의 천불천탑 이야기가 아직 역사적으로 증명된 적이 없는 이야기에 불과하다지만, 운주사에 가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석탑과 불상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비록 거기서 '아래로부터의 개혁 의지'나 '불국정토의 실현' 등 거창한 화두나 현교이니, 밀교이니 하는 어려운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지는 못할지언정 저 나름의 느낌은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여행에 있어, 그리고 떠남에 있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자신이 직접 얻는 깨달음과 느낌이지 답사 안내 책자에 소개된 역사랄까 의미에 집착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누가 던져주는 질문과 모범 정답이 아닌, 스스로가 느끼고 사색할 수 있는 충분한 요건을 가진 곳이 운주사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가방을 꾸리고 버스에 올랐습니다.

여행? 그저 오고 감이 있을 뿐

차창을 스치는 비 때문인가요? 버스에서 틀어주는 영화 소리 때문도 아니요 강한 에어컨 바람도 이유는 아닌 것 같습니다. 평소 차만 탔다 하면 이내 잠에 빠져들기 일쑤였는데, 오늘은 왠지 말똥한 눈이 감기질 않습니다.

평소 별 생각 없이 떠났던 길이지만 오늘만은 다르게 다가옵니다. 과연 그 동안 무엇을 위해 길에 올랐던 것일까. 영어 한 단어,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 하나 배우기 바쁘다는 요즘에 왜 이렇게 취한 듯 홀린 듯 길을 떠났던 것일까. 남들은 취업 고민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한다는데, 뭐 기댈 데 하나 없는 녀석이 마치 '태평세월 내세상'인 양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이런 고민 자체가 과문한 탓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누구도 쉽게 답을 얻을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일 것입니다.

ⓒ 권기봉
잠시 탄천휴게소에서 쉬었던 버스는 내처 달리기 시작합니다. 아침 점심을 모두 거르고 떠나온 길이라 휴게소에서 파는 구운 감자 몇 개를 샀습니다. 옆 사람에게도 권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상한 사람을 쳐다보는 눈, 바로 그것입니다.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운주사가 있는 화순 가는 차를 갈아탈 광주까지 얼마 남지 않은 모양이라 잊습니다.

어쩌면 오늘의 목적지는 운주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운주사'라는 목적지는 그냥 핑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입니다. 여행이란 것에 본디 목적지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상이 여행이고 여행이 일상이고 보면 목적지라는 것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행? 그저 오고 감이 있을 뿐입니다. 남녀 사이에 만남이 있으면 필시 헤어짐이 있는 것처럼 오면 가는 것이고 가면 또 오는 것이 여행이고, 그것이 곧 우리네 일상이 아닐까요? 오고 감, 그리고 잠시 머무름.

오늘 운주사로 떠나기로 결정한 것과 실제로 가는 과정, 그리고 현지에서의 경험과 느낌, 돌아오는 길, 그리고 반추. 그 하나하나가 중요한 과정으로서의 매력이 있고 또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을 나선 것이기도 하구요. 일단 비 내리는 남도의 들녘을 보고 싶었고, 창건과 관련한 여러 설화를 품고 있다는 신비함 그 자체에 매료되어 운주사를 찾는 길입니다. 자신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 운주사에 대해 듣게 된 것입니다.

왜 여행을 할까?

▲ 휴게소를 지나
ⓒ 권기봉
주위에 여행을 좋아하는 이, 산을 좋아하는 이들을 보면 소위 나쁜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편견일까요? 여하튼 여행을 하게 되면 혼자 있는 시간, 특히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면서 그 동안의 과욕과 오만을 되짚어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한테 더없이 겸손해지는 시간일 테지요.

마치 화선지에서 쓸데없는 점과 선을 빼가는 것처럼 퇴고를 하며 의미 전달이 불분명한 말들을 빼고 필요한 것을 집어넣는 과정처럼, 여행이란 것은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들은 버리는 뺄셈과 필요한 것은 채워가는 덧셈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과정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길을 떠나는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나 합니다. 아직 종교라는 거대한 체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저로서는 여행이라는 것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지요. 물론 아직도 멀었고 한 평생 지나봐야 아무런 변화가 없을 지 모르지만.

이제 막 광주에 도착한 버스는 각자 갈 곳이 있는 사람들을 내려놓기 시작합니다. 운주사가 있는 화순까지 가려면 또 차를 타야 합니다. 간만의 긴 여정. 내일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차를 타고 북으로 올라가겠지만 이 짧은 시간이나마 헛되이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번엔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이 한없는 고독과 과분한 여유 속에 서면 차츰 그것이 무언인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내일 아침 보게 될 비안개 자욱할 운주사가 한결 기대됩니다. 또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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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기억 저편에 존재하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찾아 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저서로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알마, 2008), <다시, 서울을 걷다>(알마, 2012), <권기봉의 도시산책>(알마, 2015)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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