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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일본에서는 '분로쿠(文祿)·케이죠(慶長)의 역(役)'이라 부르고 있으나 풍신수길(豊臣秀吉)이 도자기를 탐내서 일으켰다고 해서 도자기전쟁이라고 하고 도자기 중에서 특히 찻사발이 목적이기에 일본식으로는 다완(茶碗)전쟁 즉 찻사발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1. 임진왜란 전 일본 속에서 우리 사발의 존재

임진왜란 전의 일본은 무로마치(室町)시대였다. 이때의 일본은 중국 차세계의 영향을 받아 서원차(書院茶)가 유행했다. 차의 본래 심성을 떠나 아주 호사스러운 차생활이었다. 찻사발은 중국에서 수입한 천목사발이었다. 조선사발은 중국사발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다.

▲ 조선분청사발. 전부분에 은을 입혀 중국사발로 보이게 인위적으로 수리했다. 일본 대명물이며, 德川 기념관 소장.
ⓒ 신한균
이 시기에 일본 다도의 선구자들은 소박미 속에 감추어진 우리사발의 아름다움을 통해 진정한 차정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 사발에 의해 일본 역사의 장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서원차(書院茶)는 사라지고 와비차(화경청적(和敬淸寂)을 추구하는 일본 다도의 세계)가 등장한다.

시대적으로는 지방 영주들이 일본의 패권을 다투는 전국시대에 돌입 된다. 불안한 시대에 종교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지방영주와 그 휘하의 사무라이들은 피비린내 나는 전쟁 속에서도 다도에 몰두한다.

그때는 우리 사발을 구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시대였다. 그 당시 일화 중 하나는 풍신수길의 주군이었던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는 조선 찻사발을 이용해 가장 적대 세력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우리 사발의 위력을 일본에 대표적으로 선보인 경우이다. 이 사발은 시바타(井戶)라는 이름을 가진 제기용 진주 보시기였다.

▲ 제기용으로 빚어진 진주 보시기사발. 일본에서는 靑井戶라 불리며 일본 중요문화재이다. 이름은 시바타 井戶이다. 根津박물관 소장.
ⓒ 신한균
▲ 제기용으로 빚어진 진주 사발. 일본이름은 筒井筒井戶. 일본에서 가장 많은 역사적 신화를 가지고 있다. 소장가측의 말에 의하면 본래 국보였으나 개인 소장품이라 하여 중요문화재로 격하되었다. 필자는 출판게재허가를 어렵게 득했으며 한국 방송국의 방영을 성사시켰다.
ⓒ 신한균
오다노부나가의 부하였던 풍신수길은 일본의 패권을 잡자 미천한 신분 출신임을 숨기려는 듯 더욱 더 다도세계에 몰입한다. 여기서도 한 일화가 있다.

풍신수길이 일본의 패권을 잡기 직전 큰 전투가 있었다. 이때 승리하여 풍신수길이 일본의 대권을 쥐게 된다. 이 전투 중 어느 편에 들지 않고 기회만 엿보던 어느 성주는 풍신수길이 승리하자 목숨을 위태로운 것을 직감한다. 자기의 영지와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기가 가진 가장 큰 보물인 진주큰사발을 풍신수길에게 상납해 용서를 빌어 자신의 영지와 목숨을 유지하게 된다. 이 사발의 이름이 일본식으로는 '筒井筒井戶'이다. 조선에서는 영남지방의 제기였다.

2. 임진왜란 속의 일본문화를 꽃피워준 우리 사발

▲ 왜란 때 약탈에 의해 도요토미에게 전달된 김해의 제기이다. 후에 도요토미의 부하에게 하사품으로 전달된다. 일본의 대명물이다. 옆부분의 돌출부분을 억지로 때어내 찻사발로 전용되도록 수리했다.
ⓒ 신한균
풍신수길의 조선침략 속내는 사실 자기 휘하의 지방 영주의 힘을 소진하게 하고 조선사발을 빼앗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면 임진왜란 중 '풍신수길의 칙령' 1호가 사기장을 납치해 오라는 것이었다.

한 이야기가 있다. 풍신수길이 조선 침략을 위해 일본 내에 차린 본진은 후쿠오카 부근의 나고야 성이었다. 조선에 교두보를 확보한 왜군이 가장 먼저 일본으로 보낸 전리품은 미학적 파격이 돋보이는 김해의 제기였다.

이 제기를 받은 풍신수길은 마치 조선을 완전히 정벌한 양 좋아 날뛰었다고 한다. 이 제기를 풍신수길은 자신의 최측근에게 전리품으로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이 제기를 본 일본의 영주인 '古田織部'라는 유명한 차인은 이 사발을 보고 지금도 유명한 일본의 도자기 중의 하나인 '古田織部야끼'를 창시하기도 했다.

▲ 필자는 ‘흑백김해각굽사발’이라 부른다. 일본분류명 御所丸茶碗이다. 김해제기사발을 古田織部가 디자인하여 김해에서 구워졌다고 전해진다. 三井家 소장.
ⓒ 신한균
▲ 필자는 ‘백김해각굽사발’이라 부른다. 일본분류명 御所丸茶碗이다. 이름은 藤井. 김해제기사발을 古田織部가 디자인하여 김해에서 구워졌다고 전해진다. 湯木미술관 소장.
ⓒ 신한균
풍신수길은 자신이 조선 땅에 입성할 때 타고 갈 배를 조성한다. 이 배의 이름을 고소마루(御所丸)라 한다. 풍신수길은 이 배를 타보지도 못하고 죽는다. 그 뒤에 풍신수길이 꿈에 그리던 조선사발을 상징하듯 조선에서 빚은 사발의 분류명이 고소마루라는 이 이름이 등장한다. 이것을 디자인하여 조선에 주문한 사람은 '古田織部'라고 알려져 있다.

3. 임진왜란 후의 우리 사발

임란 후 일본측과 교섭창구였던 동래부의 기록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 양산실타래굽사발. 양산보시기사발을 보고 주문한 찻사발이다. 일본 분류명은 도도야茶碗이다.
ⓒ 신한균
왜인이 하도 차보시기를 만들어달라고 사정해 김해 사기장을 불러 양산의 산 속에서 빚어서 보냈다고 한다. 그 당시 기록에는 차보시기를 '茶器甫兒'라고 기록되어있다. 이 사발들은 양산 실타래 굽사발(일본명:도도야茶碗) 양산 토미사발(일본명:카키노헤타茶碗)이다. 양산실타래굽사발의 모델이 된 사발은 그 전에 '千利休'가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도도야는 千利休의 집안 직업을 의미하는 생선장수라는 뜻이다.

4. 일본에 끌려가 조선 사기장

우리나라가 중앙집권제라면 일본은 지방분권제 였다. 그 당시 각 지방의 교역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것은 도자기였다. 이런 이유로 해서 일본은 납치한 조선의 사기장을 지역 요소마다 배치했다.

▲ 일본의 아리타야끼로서 인간국보인 今泉今右衛門 作이다. 일본에서 백자는 찻사발로서 인기도가 낮다.
ⓒ 신한균
▲ 조선의 관요인 분원에서 빚은 백자사발이다. 때깔이 아주 맑으며 태토에서 발생되는 발색이 정겹다.
ⓒ 신한균
그리고 그 지방의 흙으로 사발을 빚게 하였다. 그 결과 일본은 각 지방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도자기 마을이 형성되어 다양성 있는 도자문화가 형성되게 된다. 당시의 조선 사기장들은 대부분 사무라이 중에서도 높은 지위에 해당되는 신분을 보장 받았다. 또한 아리따에서는 이참평이라는 조선 사기장에 의해 백자 만드는 기술이 개발되어 일본에 자기시대를 열었으며 이 도자기는 전세계에 수출되어 일본이 경제대국이 되는 데 가장 큰 버팀목이었다.

임란 후 조선은 분청의 시대가 끝나고 관요인 분원가마를 필두로 해서 백자가 주로 빚어진다. 19세기말에 이르러 왜 사기의 직격탄을 맞고 한민족의 도자기는 더욱 더 우리 곁을 떠나갔다. 임진왜란에 이어 왜 사기는 두 번째 사발전쟁이었다.

5. 아직도 끝나지 않은 도자기 전쟁

임진왜란과 일본의 식민지 시대는 우리의 몸뿐만 아니라 머리마저 세뇌시켰다.

▲ 일본에서 보물이 된 ‘백김해각굽사발’을 친견하는 필자. 일본에서는 이 사발을 御所丸茶碗이라고 부르고 있다.
ⓒ 신한균
우리는 우리사발을 막사발이라고 부르고 있다. 지금 우리들의 상황은 우리사발은 일본전문가의 눈을 통해 감정하려 하고 사발의 생산지를 일본전문가를 통해 확인하려 한다.

슬픈 일이다. 우리가 우리의 사발을 확실히 연구하고 분석하여 식민사관에서 기술된 우리사발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임란 때 끌려간 사기장의 이야기도 일본인이 저술한 책에는 대부분 일본을 동경하여 스스로 왔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 당시의 시대상황을 무시한 일본인의 역사왜곡이다.

임진왜란은 분명 조선이 승리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이 전쟁을 도자기전쟁 아니 찻사발전쟁이라고 부르는 일본인의 속내를 알 것 같다. 조선은 정복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가장 원했던 도자기 즉 찻사발 전쟁은 이겼노라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사발의 이름마저도 일본식이다. 과연 도자기 전쟁이 끝났는가? 잃어버린 우리사발의 역사와 그 속에 내재되어있는 미학적이고 철학적인 요소를 되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분명히 임진왜란 때 패배해 지금도 일본 식민사관에 중독된 민족이란 사실을 밝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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