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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민주노동당을 더욱 지지하지만, 한때 저는 개혁당의 당원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아직 정식탈당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에선 당원 명단에 제 이름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양천을 선거 때 무자비한 문자 메시지를 받은 걸로 봐서는 개혁당이 저를 포기하지 않았나 보더군요.

저는 한동안 개혁당을 무척 사랑했었습니다. 그래서 돈도 못 버는 백수 주제에 5000원이상 내야하는 당비를(학생이나 백수는 오천원이상, 일반인은 만원이상입니다) 석 달 정도 꼬박꼬박 내곤 했지요. 개혁당을 홍보하기 위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개혁당원임을 자랑스럽게 홍보하기도 했고, 개혁당에 가입해서 세상을 바꿔놓자고 주위사람들을 설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개혁당이 가지는 한계는 이미 당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있었는지 모릅니다. 유시민씨도 인정했듯이, 자기 당 사람이 아닌, 남의 당 대통령 후보를 공식 지지한다는 게 참 이상한 정당이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노무현 지지는 전략적인 것이며, 아직 개혁당이 대통령 후보씩이나 낼 정도의 조직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개혁당은 새로운 출발을 다시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개혁당을 두고, 민주당의 이중대, 민주당의 위성정당이라 비웃을 때 저는 그들을 비난했습니다. 우리는 민주당과 아무 상관이 없다. 노무현을 지지하지만, 그것은 민주당과 별개다. 대통령 선거 끝나면 우리를 지켜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너희들에게 보여주겠다. 개미들이 모여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너희들에게 보여주겠다라고... 하지만 솔직히 그런 말하면서 내심 좀 불안했습니다. 여기 너무 친 민주적인거 아닌가 하고....

개혁당이 처음 생길 때, <오마이뉴스>에 민노당 분이 기사였던가, 독자 리플이었던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개혁당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라는 글을 써서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분 말로는, 당이란 것이 그리 쉽게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민주노동당 정도의 조직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제반조건들이 완성이 되어야 하는데, 개혁당은 아직 불안정하다는 것. 그래서 몇 달 못 가서 자포자기하게 될 것이라는 것. 상당히 불안한 예측을 하셨더군요. 그때 우리는 그랬죠. 이건 민노당의 질투다! 민노당 지들이 우리를 라이벌로 여기면서 괜히 트집 잡는거라고..

근데 다른 건 몰라도 몇 가지는 그분의 예상이 맞는 것 같았습니다. 당에서 당원으로 활동한다는 게 단순히 당비나 매달 내는 것 이상의 역할을 요구하더라구요. 몇 만명의 당원이 있다라고 개혁당은 자랑하지만, 그 몇 만명이 그저 개혁당에 당비나 내는 자금줄 이상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오히려 개혁당은 다른 보수정당처럼, 위에 앉아 계신 유시민, 김원웅 등의 몇몇 브레인에 의해 그 당의 성격이 와르르 이끌려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더군요.

하지만 전 그래도 개혁당의 미래를 믿었습니다. 조금만, 조금만 시간을 가지면 개혁당은 더 나아질 것이다라고 믿었죠.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개혁당의 선거기간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 그 희망은 다시 푸른 열매로 알알이 맺는 듯 했습니다. 이제 새로 시작이다.

개혁당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개혁당은 이제부터 노무현의 가장 엄격한 심판자가 될 것이다. 노무현이 제대로 못하면 개혁당이 나서서 호되게 혼내줄 것이다. 인터넷 정당은 24시간 로그인 되어있는 정당이다. 그래서 노무현이 잠을 자는 새벽에도 우리는 개혁정부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제일 열심히 토론하고, 제일 열심히 정부를 비판하고, 제일 열심히 정부를 견제해 나갈 것이다라고...

그런데, 저의 이런 생각은 저만의 생각이었나 봅니다.

제가 처음 개혁국민정당의 실체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 건,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후 <오마이뉴스>가 가졌던 유시민 인터뷰였습니다. 인터뷰 내용이 다 좋았는데(특히 청남대 개방을 부르짖던 유시민의 목소리에 감동까지...) 마지막 부분쯤에 한마디가 목에 탁 걸리더군요. 그부분을 발췌해 봅니다.

기자
만약 민주당이 신장개업형 정당개혁에 머물고, 노무현 당선자가 거기에 안주한다면 노 당선자에 대한 지지도 재고하는 것인가.

유시민
"아니다. 우리는 노무현 지지가 확실하다. 우리가 밀어서 당선시킨 후보인데 퇴임하는 그 날까지 계속 지지를 해야 한다. 이 분이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강력한 지지이고 열렬한 지지이며 확고한 지지다. 민주당 문제를 노 당선자에게 책임 지울 수는 없다. 그 분은 총재도 아니고 대표도 아니다. 평당원에 불과하다. 우리가 책임을 묻고 공격하고 비판한다면 그것은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이다. 민주당과는 경쟁자다. 서로 경쟁할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는."(1월 6일자 인터뷰 중에서...)


유시민은 노무현이 제대로 하든 못하든, 퇴임하는 날까지 끝까지 계속 지지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원칙을 지키는 범위에서는 강력한 지지이고 열렬한 지지이고 확고한 지지이다? 그냥 지지도 아니고, 뭐가 이리 요란한지... 자신의 노무현 사랑을 너무나 자랑스러워하는 유시민의 얼굴에서 개혁정당을 탄생시킬 때의 그 고뇌에 찬 눈빛은 오간 데 없었습니다.

이게 무슨 개혁당 대표가 할 말인가요? 민주당 당원이라도 이런 정도의 애정표시는 낯뜨거워 못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유시민은 정도를 이때부터 이미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이 인터뷰를 보고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그리고 민주당과 경쟁자로 뛰겠다던 유시민은 이번 보궐선거에서 민주당과 선거공조를 약속했습니다. 개혁당이 처음 나서는 본격적인 선거에서, 출발부터 선거공조라니... 3군데 지역에서 유시민만이 홀로 개혁당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유시민이 출마한 지역이 아닌 나머지 두 지역 중 하나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이번 선거기간동안 정말 엽기적인 문자들을 여러 차례 받고, 쓴웃음을 짓고 말았습니다.

정치개혁을 위해서 민주당 후보를 찍어달라는, 즉 그래서 노무현 개혁정부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는 문자들이 그것이죠. 어쩔 땐 직접 개혁당 당사에서 내 핸드폰에 전화를 걸어 민주당 후보를 찍을 것을 재차 확인하려 들기까지 했습니다. 어쩔 땐 집행위원이 거리홍보에 나서니까 개혁당 당원들이 많이 찾아와서 선거운동을 도와달라는 문자까지 받았구요.

민주당 후보를 위해 거리홍보까지? 도대체 내가 가입한 정당이 민주당인지, 개혁당인지 헛갈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개혁당은 민주당의 위성정당이라는 생각이 더더욱 확실해지는 계기가 이번 선거였던 것 같아요.

선거가 끝난 후, 민주노동당 홈페이지와 진보누리 사이트를 휩쓸며, 유비어천가를 남발하는 개혁당원들을 요즘 자주 보게 됩니다. 민노당에 대한 온갖 냉소와 야유를 보내며 자신들은 대통령이란 든든한 빽을 가지고 있고, 개혁이란 멋진 브랜도도 가지고 있으며, 더군다나 유시민이란 걸출한 스타(누구는 차기 대통령 후보라고 까지 말하던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상당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그들의 웃음이 엿보입니다.

개혁당은 지금 웃을 때일까요? 개혁당은 지금 잘 나가고 있는 것일까요? 개혁당에게 가해지는 온갖 부정적인 시선들을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요? 알면서 일부로 무시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개혁당의 정체는 무엇인지. 개혁당은 가고자 하는 길이 무엇인지, 정말 민주당의 위성정당이 아니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는지, 정말 그런 것인지….

뭐 검증은 그리 먼 시기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늦어도 다음 총선에는 모든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 믿어요. 개혁당이 진정 개혁을 원하는 정당이라면 총선에서 독자적인 선거운동에 나서리라 믿습니다. 민주당과 공조를 한다거나, 민주당과 합당을 추진하면서 초라하게 몰락하는 그런 개혁당이 안되길 바랍니다. 아직도 개혁당에게 약간의 미련이 있기에, 나는 정식탈당을 못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개혁당은 곧 민주당에 편입될 것이라는, 진중권씨가 생각하는 개혁당의 미래에 대다수 동감하지만, 난 그래도 개혁당 당원들의 자존심을 진중권씨보다 조금 더 쳐주고 싶군요. 지금 깨닫지 못할 뿐이지 언젠가는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할 날이 올 것으로 보니까요. 그때 꼭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길 바랍니다. 개혁당이 노무현의 개혁만을 개혁으로 생각하지 않는 그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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