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ination'이란 한국말로 행선자나 목적지를 뜻하는데, 영화의 원제목인 'final destination', 즉 '최종 행선지'는 사람이 생명을 다하면 영혼이 가게 되는 마지막 종착역, 호메로스 신화에 프쉬케가 날아가는 하데스의 집, 즉 염라대왕 앞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1990년작 <데스티네이션>은 7-80년대 슬래셔 무비나 90년대 팝콘 호러 무비에서는 보기 힘든, 보이지 않는 운명의 힘, 죽음의 신과 나약한 인간의 공포를 소재로 삼아서 평단의 호평을 받아낸 작품입니다. 영화의 감독이 동양출신이라서 그런지, 언론에서는 영화의 소재가 다분히 동양적이라고들 많이 말하시던데, 운명과 죽음에 관한 테마는 꼭 동양 것만은 아니고, 신화시대 때부터 동서고금 막론하게 주요한 테마이니 동양적인 영화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하튼 색다른 호러영화를 바라는 이들에게는 전편이 상당한 만족을 제공한 것 분명한 사실이죠. 전편 '데스티네이션'은 인간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즉 피하려 해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죽음은 얼마나 강력한 운명의 힘에 이끌리는지에 이야기합니다. 그동안의 호러영화의 백미는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하여 광기에 사로잡힌 살인마의 살인의 위협으로부터 무사히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었는데….(물론 마지막 주인공만 빼고 등장인물은 살인마에게 백전 백패) 이 영화에 등장하는 공포의 주체는 식칼들고 덤비는 마이클마이어나 갈고리 손으로 위협하는 프레디 정도와는 스파링 상대가 되지 않는, 죽음의 신, 즉 저승사자들이지요. 저승사자는 자기 모습을 세상에 외현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인간에게 죽음의 선물보따리를 안겨주면서 자신의 진가를 드러낼 뿐... 저승사자와 인간들의 대결? 이 말도 안 되는 힘의 무게차이 앞에서, 죽음의 신은 인간의 목숨을 누워서 떡을 던져먹듯 하나 하나 거세해 갑니다. 전편인 <데스티네이션>의 매력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전편 개봉 후 3년만에 찾아온 <데스티네이션 2>는 전편의 테마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습니다. 전편에서 비행기 폭발사고에서 탈출한 아이들의 운명을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대형 교통사고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아이들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역시 전편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영특한 주인공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고(물론 전편과 마찬가지로 왜 유독히 이 아이만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는지 설명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뭐 상관없어요. 주인공은 원래 특별하니까...), 죽음을 예고하는 기묘한 사인들은 더 시끄럽게 울려 퍼지면서 정신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영화의 백미는 자연사를 위장한 연속되는 살육의 축제! 영화는 전편보다 더 많은 살인장면을 보여주고 있고 죽어나가는 희생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납니다. 잔인함의 강도요? 전편은 비교가 안되지요. 잔인함의 정도는 확실히 업그레이드되었더군요. 날카로운 것에 찔려죽고, 불에 타 죽고, 자동차에 압사당하고, 몸이 세동강 나서 죽고, 무거운 것에 깔려죽고, 비명의 강도는 높아만 가고, 영화는 지극히 하드고어 적입니다. 어차피 죽음에 관한 영화의 테마는 전편에서 이미 다 설명했던 것이니, 후편에서 같은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을 필요는 없었겠지요. 우리는 전편에서 했던 이야기를 연상만 하면 됩니다. 결국 속편이 보여주고자 하는 건 살육의 파티! 얼마나 사람이 잔인하게 죽어 가는가 하는 게임일 뿐입니다. 영화의 잔인함이 전면으로 나서다보니, 전편이 보여주었던 운명에 대한 공포감은 많이 침전되어 버리는 게 사실입니다. 영화 내내 등장인물들이 공포에 떠는 것은 죽음의 신이 언제 나에게 닥쳐올까 하는 그런 강박관념의 공포라기보다는, 그저 옆에 친구가 목이 날라 가고, 같이 놀던 아이가 압사당해 죽고 하는 그런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신체적 훼손에 대한 공포겠지요. 전편에서의 암울한 테마는 이미 멀리 날아가고, 영화는 잔인! 잔인! 잔인뿐입니다. '가위'나 '폰'같은 한국 호러무비류의 어색하고 평범한 살해장면에 실증이 나고 하품을 한 분들이라면, 그리고 하드고어 맛이 나는 영화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물론 이영화는 하드고어는 아닙니다) <데스티네이션 2>의 릴레이적인 잔혹신들은 고감도의 신경을 자극해 주는 붉은 빛의 청량제가 되어 줄 겁니다. 찌릿! 찌릿! 찌릿1 (하지만 고어매니아들이 보기에는 그리 잔인한 영화도 아니지요. 이건 어차피 대중영화니까요) 하지만 역겨운 건 질색이고, 질색인 건 보기 싫다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저 이 영화의 허무한 죽음들이 불쾌감만 얹어 주는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 그런데 영화 내내 보면서 궁금한 것은, 아무리 죽음이 내 주위를 둥둥 맴돈다고 하더라도, 어째서 내 옆자리 친구가 목이 날라 가고 삼등분 되어 찢어지는데, 미치지 않고 이성적으로 자기 할 일을 찾아 나설까요. 솔직히 저 정도 상황이면, 죽음의 운명이 그들에게 찾아오기도 전에, 정신병으로 병원에 먼저 실려가게 될 것 같네요. 아마, 마지막 장면을 보니 3편도 나올 것 같은데, 같은 이야기 세 번 하면 분명 지루할 것 같습니다. 괜히 스크림 3편 꼴 안 나길 바라는데, 호러 제작자들이야 속편 만드는 게 취미이니 누가 말릴 수 있겠나요. 호러영화는 속편을 낳아야만 한다는 그 지리한 운명을, 나약한 인간인 우리가 어떻게 막는단 말입니까! 운명을 받아들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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