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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승석과 푸리의 공연-1
ⓒ 김기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한 사내가 홀연히 법전을 버리고 소리꾼이 되겠다고 나섰다. 잘 살던 사람이 종교에 매료되어 변신하거나 투신하는 경우는 간간이 봐왔던 일이긴 하지만 국악계에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일임에 분명하다. 어찌되었건 현재까지는 그늘에 가려진 문화의 분야가 국악이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 실마리를 풀 수 있는 단서가 하나 있다. 그는 소리의 고장이랄 수 있는 전라남도 진도 출생이다. 그땅의 피가 그를 가만두지 않았나보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그는 중앙대학교 대학원 한국음악과를 입학하여 본격적인 국악인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8년여만에 그의 첫무대를 가졌다.

▲ 수궁가를 부르는 한승석
ⓒ 김기
그가 당대의 최고라고 일컫는 안숙선, 성우향, 김청만, 이광수 등으로부터 제자수업을 받은 일 또한 이채로운 일이다.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가진 소리가 당당하고 남창가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더욱이 소리하는 남자가 드문 국악계로서는 참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심정적으로 서울대 법학과의 이력을 포기하고 투신한 그에게 남다른 배려는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 한승석과원일
한승석과원일
ⓒ 김기
그의 공연을 보자. 젊은 소리꾼답게 국악계의 전위적인 음악가 원일(서울예술종합학교 교수)이 이끄는 푸리(puri)의 일원이 되어 단순히 판소리만의 득공에 매달리지만은 않았다. 그가 들려주는 비나리나 판소리 한대목을 각색한 자룡, 활쏘다 등의 연주는 기존의 판소리의 영역과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화두를 제시한다.

국악계의 정설처럼 전해지는 격언이 있다. "국악에는 신동없다"가 그것이다. 그만큼 국악의 경지는 다다르기 어렵고 힘든 길이라는 뜻이다. 그런 만큼 8년의 독공으로는 판소리의 까다로운 성음을 다 갖추기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의 공연이 끝난 후 국악계의 몇몇 사람들은 역시 그의 판소리 성음에 대한 미흡함을 지적하면서도 그의 가능성에 대해서 기대하는 분위기이다.

▲ 달빛항해를 부르는 한승석
ⓒ 김기
이날 공연은 때아닌 소나기가 한시간 남짓 쏟아지는 바람에 장소와 시간을 바꿔야만 했다. 비로 인해 많은 수가 돌아갔음에도 불구하고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은 입석까지 모두 들어찼다. 오랜 기다림과 자리잡기 등으로 소란하던 장내가 일순 조용해진다. 언제 그랬냐 싶게 숨소리조차 참는 기색이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징소리와 함께 그들 푸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어쩌면 새롭기도 하고 또한 이전에 있어왔던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화답과 전승처럼 푸리의 본격적인 공연이 시작되었다. 한승석과 푸리는 때로는 놀라운 기법의 음악 운용으로 국악 공연이 아닌가 싶게도 하다가는 또 가장 전통의 음악을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 푸리의 정재일과 김웅식
ⓒ 김기
마치 프로그램 전반이 리듬을 타면서도 원래의 주제 내에서의 자유만을 타듯이 그렇게 한시간 반의 공연이 숨쉴 틈 없이 휘몰아쳐 갔다. 미리 알았을까? 관객의 대부분은 젊은층이었고 때문에 한승석과 푸리의 새로운 해석에 대해 무척이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수용의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한승석, 그는 푸리의 원일과 함께 현재 국악의 새롭고 또 전통에 기준한 많은 젊은 국악도들과 함께 향후 국악계의 훌륭한 재목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를 가져도 좋을 소리꾼이라 생각된다. 또한 그것이 그를 아껴 기꺼이 제자삼아 준 쟁쟁한 스승들의 고마움과 의의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 이동훈의 해금연주
ⓒ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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