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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적어도 나는 졸병으로 군대에 간 것을 가지고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총을 들고 보초를 서면서도 '내가 조국을 지키고 있다. 그래서 내 부모가 편히 주무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나는 보병부대 병장으로 제대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나는 170cm, 52kg 체격에 갑종 1급을 받아 34개월 15일을 현역으로 보병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대학에서 교련을 받았다고 두 달씩이나 일찍 제대하는 이들을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전문학교에서 받은 교련은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 군에 갓 입대한 신병들이 기본 야외훈련을 받고 있다
ⓒ 국방홍보원
1973년 5월, 입영할 때 나는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겉으로는 큰소리쳤지만 속으로는 군에 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훈련소에서는 힘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루에 몇 차례씩이나 코피를 쏟았습니다. 밥 먹다 코피가 쏟아지면 코를 잡고 그 밥을 먹었습니다. 구보를 하다 발작을 하여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죽음에 아주 가까이 까지 갔던 것 같습니다. 그때 내가 죽었다면 모든 책임을 내 스스로 지고, 보상도 없이 어딘가에 아무도 모르게 한 줌 재로 뿌려졌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하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요즘 새롭게 알려지고 있는 여느 사건들과 같이 진실을 묻어두고,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렇게 갔을 것입니다. 아마 나 같은 경우는 한 점 의혹도 없이 말끔히 해결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말하는 의문사류의 명단에도 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우리 부모는 이 자식을 오늘까지 가슴에 묻고 살고 계시겠지요?

내가 군에 복무한 3년 동안 나는 우리 군에 보병 소총수 1명의 머리 수를 채우는 것 외에 어떤 역할도 한 일이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작은 보람도 찾을 수 없는 아픈 세월이었습니다. 고참이라는 이들의 밥그릇을 치우던 졸병 시절 배가 고파 그 국그릇에 남은 두부를 남몰래 손으로 집어먹던 기억은 아직도 나를 한없이 초라하고 왜소하게 합니다.

이유 없는 단체 기합과 구타에 '나'라는 인간이 깡그리 무너지던 아픈 기억을 언제까지나 가지고 가야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생각나는데 내가 군대에서 배운 것은 도둑질이었습니다. 한밤에 민가에 가서 고추장 단지나 김치 단지를 업어오는 것을 기본으로, 가을에는 과수원에 가서 배를 따오고, 겨울에는 돼지를 잡아다 먹기도 했습니다.

▲ 육군 장병 자율 배식 장면
ⓒ 국방홍보원
입대하기 전에 나는 내심으로 군에 가는 것에서 빠질 수만 있으면 빠졌으면 했습니다. 빠진 이들을 보고 부러워했습니다. 입대를 하고도 좀 안전한 곳, 좀 편한 곳으로 배치되기를 바랬습니다. 심지어는 훈련받는 것보다 양파 껍질 까는 식당 사역을 가는 동료들과 함께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들은 그랬습니다.

예비군 훈련이라는 것도 그랬습니다. 일 년에 한 번은 동원훈련을 일 주일씩 부대에 들어가 받았습니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학기 중에 그렇게 한 5년간 한 것 같습니다. 싫었습니다. 왜 이 짓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곳에 갇혀 있는 것이 싫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내가 쪼잔하게 살았다는 생각에 그것이 또 싫습니다.

88년에 그 지겨웠던 예비군이 끝나고, 89년부터 민방위 대원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89년에 전교조가 결성되고 해직교사가 되었습니다. 잊고 있었는데, 해직되고 일 년이 지나도 민방위 훈련통지서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민방위 교육장에서 말썽을 부릴까봐 그랬는지, 직장민방위대에서 지역민방위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행정착오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내심 좋아했습니다. 동사무소에 왜 민방위 훈련에서 빠졌는지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이사를 하기도 했지만 학교에 복직할 때까지 민방위 소집 통지는 받지 못했습니다. 복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마저도 끝나버리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빠지고 싶었지만 빠질 능력이 없어서 빠지지 못했습니다. 그때 생각으로는 나중에 내가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벗어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혹시 빠진 것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을 내기도 했습니다.

나는 신체검사에서 현역에서만이라도 빠지기를 바라는 마음과 '빠지면 사회적으로 손해를 입지나 않을까?' 또, '아는 이들에게 창피한 일이 아닌가?' 두려워하는 두 갈래 마음이 있었습니다.

나를 너무 나무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국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 군에 간다'는 사람 앞에 기가 죽습니다. 군에 복무한 사실을 자랑하는 이들이 부럽습니다. 그것이 싫습니다. 병역을 면제받은 이들을 너무 나무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온 우리 사회는 세무와 함께 병역은 기피와 혐오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른바 대통령 후보 병역면제에 관한 논란으로 나라가 들썩입니다. 법치제도 아래서 말로써 진실을 가려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스럽게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세상이 그런 세상이 아니었습니까? 나는 몰라도 우리 부모는 우리 친척이 아니라도 어떻게든 아는 사람 중에 판사가 하나만 있다면 자식을 군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 탐색격멸 작전을 펼치고 있는 육군
ⓒ 국방홍보원
문제의 대통령 후보나 장상 전 총리서리가 한 일들이 우리 사회 가진 자들의 보편적 행태였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아들만이 아니고 그들 가까운 젊은이들이 다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5년 전에 이미 진실을 알았습니다. 나만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었지 않습니까?

'체중을 달아보지도 않고 그냥 45kg이라 써넣었다' 이것이 사실 아닙니까? 설사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온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그 후보 내외가 하는 말이 다 사실이라면, 멀쩡한 젊은이 체중이 55kg이었다가 군에 갈 무렵에 45kg이 되었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겠습니까?

병원에 데려가서 진찰을 하고 원인을 알아보고, 보약을 먹인다고 야단법석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허약하여 할머니는 늘 걱정을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하실 수 있는 어떤 일이라도 하시려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할머니가 하실 수 있었던 일은 동네 앞 개울에서 젊은이들이 잡은 자라를 얻어다 고아서 나에게 먹이는 것뿐이었습니다. 나는 아직도 체중이 54kg에 머물고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애초에 그 후보가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그랬다, 그때는 세상이 그래서 그랬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잘못 되었다. 진심으로 사죄한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겠다." 이렇게 했다면 이 문제는 5년 전에 끝난 일이 아니겠습니까? 표가 좀 떨어지더라도 그때 치고 나갔어야 했습니다. 그걸 막으려니 거짓말을 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이제 헤어날 수 없는 곳까지 들어와 버렸습니다. 표는 더 떨어지지 않았습니까?

백 번을 양보해 그가 현역으로 가려고 했는데 체중이 모자라서 가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인정하는 국민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을 못한다면 억울하고, 또 그가 대통령이 못되는 것이 국가와 민족에 손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척 안쓰럽습니다. 당사자가 받고 있는 고통이 안쓰럽습니다. 몇 달이나 계속되는 여론으로부터 받는 그들의 고통이 안쓰럽습니다. 면제를 받은 당사자나 그 가족들이 불법을 저질러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고, 그들이 저지른 불법이 없다면 벌을 받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받고 있는 고통은 마땅한 처벌과 무관한 고통이라 안쓰럽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 같이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성에 휘둘려야 하는지 안타깝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미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하겠습니까?

뻔한 사실을 왜 아니라고 하는지 답답합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짓인 줄 왜 모릅니까? 당사자는 아니라고 우겨볼 수도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후보의 정당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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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부터 2014년까지 전교조 2005년부터 615남측위원회 대구경북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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