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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운동회 철이다.

우리는 어린 날 초등학교 운동회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다. 피곤한 운동회 연습 때문에 유쾌하지 않았던 기억도 있다. 달리기 한 두 번 하고는 하루 종일 응원석에 앉아서 내키지 않는 응원을 했던 적도 있다.

▲ 3, 4, 5, 6학년 14명 전원이 풍물공연을 했다
ⓒ 배용한
경상북도 의성군 탑리 금성산 기슭, ‘의성제오리 공룡발자국화석’이 있는 동네의 상천초등학교(교장 이윤탁) 운동회가 18일 이 학교 운동장에서 열렸다.

이 학교의 운동회는 경로잔치를 겸하여 열린다. 전교생 열일곱명과 본교 교직원, 학부모, 면장 등 면내 기관장, 지역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 지역 주민이 함께하는 잔칫날이다. 다른 학교에서는 운동회 연습을 하느라 분주하지만 이 학교 학생들은 연습하지 않은 운동회를 한다. 대신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잔치를 위해 여러날 준비한다. 행사 전날에도 젊은 학부모들이 모여 돼지를 한 마리 잡았다.

전교생 17명 전원은 운동회에서 하는 모든 경기에 선수로 나선다. 학생들이 시합을 할 때는 학부모와 내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응원단이 되고, 할머니 아버지들이 투호를 할 때는 아이들이 응원단이 된다. 피구는 학생들과 학부모, 교직원 및 내빈들도 함께 했다. 내빈석에 앉으셨던 면장님을 비롯한 면내 유지들도 공받기 놀이를 같이 하였다.

선생님이 3명 뿐이니 달리기를 할 때는 내빈석에 계시던 분이 나와 결승 테이프를 잡아준다. 교장선생님은 내빈과 학부모 경기 진행을 맡았다.

▲ 학생 수의 세 배가 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셨다
ⓒ 배용한
바구니 터뜨리기 다음은 점심시간이었다. 어머니들은 전날 아버지들이 잡은 돼지고기와 손수 지은 밥과 국을 내왔다. 전교생의 3배가 넘는 수의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내빈과 학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맛있는 식사를 했다.

이 학교는 1999년 9월 1일 경상북도교육청이 학생 수가 적다는 이유로 폐교시키려던 것을 학부모들과 지역주민이 힘을 모아 투쟁으로 지켜낸 학교이다. 그 뒤로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과 교직원들은 힘을 합하여 이 학교를 지역 공동체로 키우고 있다.

상천초등학교는 전교생 모두가 선수이고, 전교생 모두가 주인공인 학교다. 아마 ‘전교생 17명인 학교가 무슨 학교냐?’ 할 수도 있겠고, ‘학생 수가 너무 적어서 교육을 제대로 하겠나’ 싶기도 하겠지만 도시에 있는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다.

또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이 학교에 있다. 그래서 이 아이들의 부모들은 이 학교를 지키고 있다. 이 학교는 학생들만의 학교가 아니라, 5살 아이부터 80대 할머니까지 같이 어울리는 지역 공동체가 살아 있는 곳이다. 그 옛날 공룡들이 모여 살았듯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이날은 비가 많이 내릴 것이라는 일기 예보가 있었지만 즐거운 운동회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하늘도 이들을 위하여 비를 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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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부터 2014년까지 전교조 2005년부터 615남측위원회 대구경북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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