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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 효순이네 집 앞의 자전거. 주인잃은 자전거가 외로움에 떤다.
ⓒ 노순택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목도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에게 극심한 좌절감을 안긴다. 이러한 무력감은 삶을 허탈하게 하고, 존재의 이유를 되묻는다. 대저 삶이란 '살만한 것'이 아니라, 이 따위가 산다는 것인가 하는 회의이자, 낭패인 것이다. 내가 삶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삶이 나를 질질 끌고 다니는 형국이다. 반복되는 좌절감은 슬픔을 자아내고, 누를 수 없는 분노가 울컥 북받쳐 오른다.

1940년대 독일 젊은이들의 반나치 투쟁과 희생을 담은 <백장미>(한글 번역본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죽음>)가 198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필독서가 되어 좌절감을 안기고, 결국 누를 수 없는 분노를 폭발케 한 작은 원동력이 된 데는 우리에게 1980년 광주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죽음'을 목도한 원죄의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좌절했던 목도자들의 죄는 87년 6월에야 겨우 씻길 뻔했다.

목도자들의 숨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효순이와 미선이가 숨진 그 자리에 누군가 작고 붉은 꽃을 심어 놓았다
ⓒ 노순택
목도자들은 1992년 10월 기지촌에서 벌거벗기고 항문에 우산이 꽂히고, 세탁세제가 허옇게 뿌려진 채 죽은 윤금이를 목도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던 윤금이를 주한미군 케네스 마클이 미워했다.

목도자들은 1997년 4월 이태원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칼에 맞아 난자당한 조중필을 목도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던 조중필을 주한미군의 아들 아서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가 미워했다. 놈들은 재빨리 제 나라로 도망하고, 한국 사법부는 국가배상신청마저 기각함으로써 조중필을 두 번 죽였다.

목도자들은 2000년에서야 반세기 동안이나 폭탄을 맞아 제 몸의 절반을 덜어낸 매향리 농섬의 처참한 죽음을 목도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던 아름다운 섬을 주한미군 제7공군의 A-10폭격기가 미워했다. 멀리 괌과 오키나와의 미공군기마저 섬을 미워했다.

목도자들은 불평등한 소파의 개정을 외치다 경찰에 쫓겨 쓰레기차 위에 올라간 늙은 신부를 목도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노 신부님을 주한미군이 증오했다, 한국경찰이 미워했다.

끝내 목도자들은 2002년 6월 10일 '대-한민국'을 외치는 월드컵 함성 속에서 미군 고압선에 팔다리를 모두 잘린 채 죽어간 건설노동자 전동록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고, 꼭 사흘 뒤 54톤 장갑차에 짓뭉개진 어린 소녀들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효순이와 미선이를 숨지게 한 사고 부대 앞에는 한국경찰이 철통같은 경계태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 노순택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던 전동록을 죽이고 주한미군은 60만원의 더러운 돈을 던져줬다. 5백원짜리 껌 1200통을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사람 목숨이 껌 값이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던 효순이와 미선이를 죽이고 주한미군은 '공무수행 중 사고'라고 발뺌했다. SOFA 규정에 따라 한국경찰은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람들 '공무'라는 게 원래 사람 죽이는 일이다. 그러니 틀린 말은 아니다. 공무수행 중이라는 게….

봉건정부에 저항하다 처형당했던 근대 스페인의 교육자 프란시스코 페레는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고 했으나, 그들은 저 아이들을 54톤 장갑차로 짓눌러 죽였다. 그들이 죽이고, 우리가 죽였다.

효순아,
네가 찰랑거리는 생머리를 날리며 저었을 집 앞 자전거는 외로움에 몸을 떤다. 'Be the Reds!'가 적힌 붉은 옷을 입고 대한민국 파이팅을 연호했을 너희에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월드컵을 보면서 애국심이란 걸 느끼게 됐어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게 자랑스러워요"라고 씩씩하게 말했을 너희에게 어른들은 54톤 장갑차의 궤도를 던졌다.

8월 7일, 억수 같은 장마비를 맞으며 문정현 신부를 비롯한 원로 종교인, 시민단체 대표들은 미국의 재판권 포기를 촉구했다. 저 노인네들이 빗물 반, 국물 반이 되어버린 짬뽕을 미대사관 앞에서 먹는 비참함이란...
ⓒ 노순택
이곳이 그 자랑스런 대-한민국이란다. 월드컵 승리에 눈물을 흘리며 가슴 터질 듯한 애국심에 잠 못 이루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 갔을까? 밤을 지새우며 카퍼레이드를 벌이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국민은 1등인데, 정치는 꼴등"이라고 욕하던 1등 국민들은 풀뿌리 선거도 저버리고, 차마 꽃으로도 때리지 못할 너희들이 살이 찢기고, 뇌가 터져나와 죽었는데 어디에 있는 것일까? 1등이 되기 위해 공부만 하는 건가?

2년 전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미군의 여중생 성폭행 사건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일어나 결국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를 했더란다. 침묵하는 이 어른들이 참 야속하지?

나치에 저항하다 끝내 사형대에 올라야 했던 '백장미' 단원들의 두 번째 삐라는 이렇게 외친다.

"저항의 물결이 온나라에 퍼져 분위기가 이루어지며 많은 이들이 어우러지면 그때는 마지막 힘을 다하여 이 체제를 엎어버릴 수 있다."

우리에게 '이 체제'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들의 죽음을 끊임없이 지켜봐야만 하는 연옥(煉獄)의 체제... 너의 온 몸을 푸욱 감싸 안아버리는 안락한 소파(SOFA)의 체제...

8월 7일, 미대사관 옆 공터에선 '여중생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천주교 시국미사'가 열렸다. 미사에 참석한 4살박이 서민영 어린이가 평화를 위한 꽃바구니를 들고 있다.
ⓒ 노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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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교육의 선구자 프란시스코 페레 평전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라'는 박홍규 교수의 저서로 '우물이 있는 집'에서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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