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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뜨르비행장 노순택 작가
 알뜨르비행장 노순택 작가
ⓒ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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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알뜨르는 과거 비행장이었다. 그리고 이 평야에 드문드문 있는 시멘트 구조물들은 비행기를 숨겨놓는 격납고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처음 계획, 1945년까지 2차에 걸쳐 비행장으로 조성되었다.

크고 작은 밭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이곳의 돌담을 허물고 땅을 메워 이처럼 넓은 평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를 위해 인근 마을 주민은 살던 집터를 잃고 강제이주를 당하고, 지역민들은 노역에 동원되어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럼, 왜 일본은 이곳에 비행장을 만들었을까?

1937년 겨울, 이곳 알뜨르 비행장에서 출격한 비행기는 순식간에 중국으로 날아가 난징을 점령한다. 본격적인 중일전쟁의 시작이다. 이 기세를 몰아 진주만을 공격하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남태평양의 섬들을 공략해 나간다.

이처럼 제주는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요한 거점이다. 대륙을 향한 중간거점이기도 하고, 태평양을 향한 전초기지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과거 몽골은 제주를 점령하여 일본으로 진출하고자 했다. 그리고 현재 강정 해군기지를 통해 동북아의 패권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알뜨르 비행장 노순택 작가
 알뜨르 비행장 노순택 작가
ⓒ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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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 비행장의 동남쪽으로 긴 아스팔트를 따라가면 움푹 파인 땅 위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예비검속에 의해 희생당한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전쟁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전투를 하다 겪는 희생은 물론, 비전투 지역에서의 살상과 폭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예비검속은 지금의 블랙리스트처럼 사상이 의심스러운 이들에 대한 리스트를 작성하고 전쟁이 발발하면 이들을 일제히 잡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전세가 악화되면 즉결처형을 해 버린다.

1950년 섯알오름 자락으로 끌려온 예비검속자들은 음력 칠월칠석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그 날에 가족들과 영원한 이별을 하고 만다. 위령비가 세워진 이곳은 억울한 죽음의 현장이다. 일제강점기 화약창고였던 곳을 미 군정이 들어와 무장해제를 시키며 폭파시킨 후 움푹 팬 지형이 되자 예비검속자들의 사형집행 장소가 되었다. 지금은 어렴풋이 당시의 흔적이 남아 처참했던 그 날을 기억하게 한다.

공권력은 유가족들의 시신 수습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6년이 지난 1956년에야 뼈를 수습하여 묘지를 만든다. 하나 세월이 너무 많이 흐른 탓에 희생자들의 시신은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이에 132명의 뼈를 맞추고 묻은 후 백여 명의 조상에 대한 제사를 한날한시 한마음으로 올려 한 자손이 되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地支)'라는 묘비를 세운다. 사계리 공동묘지 안에 이 묘가 조성되어 있다.

올레10코스를 따라 걸으면 섯오름 고사포 진지를 만나게 된다. 이 역시 일제강점기의 유적으로 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여전히 견고히 남아있다. 이곳에 오르면 인근 송악산과 알뜨르 그리고 모슬포의 지형을 시원스레 내다볼 수 있다. 날씨마저 좋다면 멀리 마라도와 가파도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을 쓴 조미영 기자는 제주4·3 연구소 이사·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편집위원입니다. 이 글은 제주4.3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에서 발행한 <4370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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