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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순택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몸은 세상의 길 위로 흘러나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과 길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결되는데, 몸과 길 사이에 엔진이 없는 것은 자전거의 축복이다. 그러므로 자전거는 몸이 확인할 수 없는 길을 가지 못하고, 몸이 갈 수 없는 길을 갈 수 없지만, 엔진이 갈 수 없는 모든 길을 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바퀴를 굴리는 몸은 체인이 매개하는 구동축을 따라서 길 위로 퍼져나간다.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 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 길은 저무는 산맥의 어둠 속으로 풀려서 사라지고, 기진한 몸을 길 위에 누일 때, 몸은 억압 없고 적의 없는 순결한 몸이다. 그 몸이 세상에 갓 태어난 어린 아기처럼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길 앞에서 곤히 잠든다. - 김훈


코흘리개 시절의 어느 날입니다. 초등학교에나 겨우 입학했을까요. 아버지께서 내게 오시더니 자전거 뒤에 올라타라고 하시더군요. 이게 웬 횡재냐 싶어 얼른 올라탔지요. 당시 아버지는 납품회사의 연쇄부도로 어려움을 겪고 계셨습니다. 속된말로 사업을 '말아드셨던' 게지요.

아들을 태운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는 답십리를 지나, 군자동과 자양동을 거치더니 잠실대교를 건너 가락동을 지나 성남까지 내달렸습니다. 지금이야 성남 가는 길에 논밭이 별로 없지만 당시만 해도 잠실만 지나면 세상은 온통 푸른 물결이었지요. 성남 사시는 외삼촌댁을 갈 때마다 차멀미로 고생을 했는데, 아버지께 올라타니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습니다. 울렁거리는 시외버스와는 비교가 안되었지요.

자전거를 저어 가는 길에 작은 비를 만나기도 했지만, 개의치 않고 성남의 뚝방길을 달렸습니다. 뚝방 아래 모래톱에는 땅콩이 자라고 있었는데, 땅콩이 땅 속에 묻혀서 자란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아침에 떠난 자전거는 쉴 줄을 몰랐고, 아버지는 어린 자식의 점심끼니도 챙기지 않았지만 별로 배고픈 줄 몰랐습니다. 사실 은근히 아버지 눈치를 보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아버진 너무 무서웠거든요. 저녁이 다 돼서야 성남 외삼촌 댁에 들렀더니, 외숙모께서 "어딜 갔다가 애를 이렇게 비 맞은 생쥐로 만들었냐"고 핀잔을 던지더군요. 따뜻한 저녁을 먹은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어떻게 다시 집으로 돌아갔는지는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아마도 졸았거나, 어두운 밤길이어서 인상깊은 기억이 남아있질 않나 봅니다.

어른이 되고, 한 꼬마녀석의 아버지가 되고서, 어쩌다 속상한 일이 생길 때면 그때의 아버지가 생각나곤 합니다. 하지만 자전거가 없고, 또 아이가 아직 너무 어린 탓에 아버지를 따라해 본 적은 없지요. 한편으론, 그때 어머니는 또 얼마나 속이 탔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처럼 휴대폰도 없을 시절인데 말이죠.

사진은 다시 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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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의 시발점이었던 텐진(天津)의 어느 초등학교 앞. 부슬비가 내리는 이날 초등학교 앞에는 저마다 비옷을 입고, 우산을 든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 엄마로 북적댔습니다. "행여나 우리 강아지 비 맞을까" 애태우면서 말이죠. 인구가 자그마치 13억이 넘는 중국땅에서는 1979년부터 한 가정, 한 자녀 갖기 운동이 반강제적으로 시행됐습니다.

그저 '놓아 기르면 알아서 컸던' 아이들이 부모의 과보호를 받으며 '샤오황띠(소황제/小皇帝)'로 '등극'하기 시작했던 시점이 바로 이때입니다. "공자가 죽어서 한국으로 건너갔다"는 농담이 오갈 정도로 요즘 중국의 젊은 아이들은 대체로 버르장머리가 없습니다. 조금은 놀랄 정도로요.

그래도...

여기 할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아이의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하겠지요. 장마가 시작되었다는데, 비 피해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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