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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와 현실의 괴리

범죄수사에 관한 한 우리나라 경검관계는 상명하복이라고 하는 제도가 확고하게 제도화되어 있으며 검찰은 사실상 자기 역량을 훨씬 넘어서는 이런 제도의 운영을 현실적으로 관철하기 위해 기회 있을 때마다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실제로 공안사건이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 강력사건 등 중요 사건에 대해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하거나 경찰에 대한 검찰의 지휘통제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 밖의 대부분의 범죄수사의 경우 검사의 지휘권이 명문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구체적인 지휘 여부와 상관없이 경찰 자체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말하자면 경찰의 범죄수사 중 97%는 검찰의 사전 수사지휘를 받지 않고 있어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검찰이 수사지휘를 모든 사건에 대해 하고자 해도, 그리고 그렇게 하도록 법제도화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바 이용호 사건

이번 이용호 사건 수사에서 경검이 모두 수사 담당 검사나 그 지휘를 받는 경찰이나 검찰에게까지 파견요청을 받고 근무하던 경찰이 수사조직에 관여되어 있다고 하는 사실은 기본적으로 경검이 모두 정치적 중립이 안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경검의 정치적 중립은 정치권의 외압에 의한 요인이 가장 큰 것이지만 이것 역시도 실제로는 수사 경검 자신의 가족관계나 돈관계 등과 같은 수사윤리 그 자체가 박약한 것도 커다란 요인이 아닌가 생각된다.

영국의 경우 이런 사건은 영국의 사직동팀이라 할 만한 중대사기범죄수사처(SFO)라고 하는 경찰기구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대검 중수부 정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기관이다.

특검제 논란

그리고 경찰이나 기소 문제만을 담당하는 공공기소국 그 자신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비리에 대해서는 자체적인 감찰기관에서 담당하지 않는다. 그것은 별도로 민간에 의해서 운영되는 경찰비리민원조사처(PCA)라는 기관이 담당한다.

사실상 영국은 일종의 특검제가 상설화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권력형 비리범죄가 터질 때마다 개별 특검제를 운영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영국의 경우 형사범죄에 관한 모든 수사권은 전적으로 경찰에게 있다.

기소는 공공기소국이 독점하고 있지 않다. 영국에서는 경찰의 범죄수사에 관한 기소 여부에 대한 결정과 공소 유지에 대해서만 책임지는 것이 공공기소국이며, 그외에도 다양한 범죄 수사기관이 있으며 다양한 기소기관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그때그때마다 특검제 실시 여부를 논란의 대상으로 삼기 보다는, 차라리 검찰의 기소독점주의 그 자체의 폐기 문제에 대해 논의를 집중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특검제 상설화의 또다른 가능성을 열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일반 민생범죄 수사

그런데 우리나라 검찰의 경우 중범죄수사나 권력형 비리 수사는 물론, 절도, 폭력, 교통사고, 기타 각종 행정법규 위반사범에 대해서도 검찰이 일일이 사건처리에 관한 일반적 기준을 하달하여 경찰은 그러한 검찰의 지침에 따라 수사토록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경찰이 법률상의 문제점이나 범죄피의자를 구속할 것인지에 관하여 사전에 지휘 받을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경찰이 사전에 검사의 지휘를 받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발 범죄에 대해서는 경찰은 개개 사건이 송치된 이후에서야 비로소 검사가 그 사건을 알게 되고 송치전 수사는 거의 경찰에 일임되어 있는 상태이다.

이런 민생범죄 수사에서조차도 경찰은 검찰에 대하여 갖는 여러가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어 있다. 이때 경찰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불만을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

○ 검찰이 사건처리 결정을 내리기 전에 경찰과는 전혀 협의가 없다.
○ 사건처리결정과 그 이유에 대하여 경찰에서 환류 정보를 제공해 주지 않는다.
○ 경찰이 필요로 할 때 검사들과 면담할 수 없다.
○ 검찰이 경찰의 업무나 문제점들 및 업무의 우선순위에 대하여 이해가 없고 또 별로 평가하려 하지 않는다.

거리의 상황과 범죄세계 인식차

한마디로 경찰은 검사들이 "거리의 상황"을 잘 모르며 그렇기 때문에 범죄의 실질세계에 대하여 나약하게 생각하고 경찰의 활동에 대하여 불신적인 선입관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검찰이 경찰에 대해 가지는 불만은 경찰이 검사들이 필요로 하는 충분한 정보 및 증거를 제공하지 않는 탓에 수사와 사건의 보고가 기소목적을 위하여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경찰이 너무 체포에만 치중하며 체포와 동시에 경찰의 역할이 끝나기 때문에 사건이 체포로 종결되면 수사를 계속하도록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은 경찰관 중에는 검찰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잘 모르며, 이에 대한 동기유발도 없는데 있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인식차는 고사하고 현행 우리나라 경검관계 역시 왕과 시녀 관계를 연상시킬 만큼 불합리한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경검관계가 악화되는 경우에도 그리고 검찰이 경찰의 사정을 잘 모른다고 생각하고 주장하면서도, 그 시정을 위하여 한번도 검찰이 경찰에 파견근무한다는 소릴 들어보질 못했다.

왜 경찰은 기소여부나 공소유지 결정은 물론이며 모든 수사에 대한 지휘권까지 갖고 있는 검찰에 대해 경찰파견근무를 한번도 요청하지 못했는가?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영국의 경우 수사권은 전혀 없는 공공기소국 기소담당자나 사건처리 실무자가 경찰서에 와서 근무토록 제도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효율성과 법원의 기소기각율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이런 상명하복이라는 비합리적이며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우리나라의 경검 관계가 근본적으로 시정되지 않은 채, 경찰의 수사권독립 요구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채 그런 관계의 반작용으로서 이를 해소시켜내고자 하는 자질구레한 숙원사항 정도로나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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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기자는 성균관대 정치학박사로서, 전국대학강사노조 사무처장, 국회 경찰정책 보좌관, 한국경찰발전연구학회 초대회장, 런던정치경제대학 법학과 연구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경찰정치학>, <경찰도 파업할 수 있다>, <경찰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삼과 사람> 상하권, <옴부즈맨과 인권> 상하권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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