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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1년도 선배들은 새내기 후배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하루하루가 잠못 이루는 밤이었지. 어쩌면 그 어느 때 보다도 너를 기다리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고등학교 시절을 벗어나 대학이라는 공간에 들어서는 너에게 선배는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었을 게야. 하지만 결코 그 욕심은 나 개인을 위한 욕심은 아니었다라고 이야기 하고 싶구나.

벌써 한학기가 지나가 버렸다. 짧다고 보면 짧지만 대학 2년동안의 삶을 생각한다면 결코 짧지만은 않은 시간이었던 것 같구나. 그래, 넌 방학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니? 선배가 무얼하며 방중을 살아갔는지 조금이나마 이야기 해 줄게.

그보다 먼저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됐지? 동아리 방문을 열며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민 너의 첫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구나.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롭기만 했던 너에게 동아리는 또 다른 기대와 설레임으로 가득찼었지. 어색하게 동아리 들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그 모습이 선배들은 어찌나 기쁘고 좋았던지, 넌 기억나니? 그때 너의 모습을 말이야.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만나게 됐고 앞으로도 그 설레임으로 만나야 하는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구나.

"이 동아리는 무슨 동아리인가요?" 처음 문을 열고 들어온 동아리라서 너에게는 수많은 의문들이 너의 머리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을 게야. 솔직히 선배들은 그때 당시 왜 그렇게 동아리를 설명하는데 자신감이 없었는지 부끄럽기도 하단다. 참 대학 생활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여행도 하고 함께 공부도 하는 동아리라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솔직히 선배는 그런 생각을 했단다.

요즘 새내기들에게 과연 우리 역사가 얼마나 관심을 던져 줄까? 작년 남과 북 두 정상이 만나서 6.15공동선언을 발표했다고 하는데 통일이라는 것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살아갈까? 그런 의구심에 자신 없는 모습들이 분명히 있었단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함께 동아리 생활을 열심히 해보고자 했단다. 때로는 선배들의 강제적인 모습으로 낯선 집회현장에도 가보고 처음으로 듣는 민중가요를 접하고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한총련 학생들을 만나게 되면서 선배 역시 걱정을 많이 하게 되었단다.

거부감을 일으키면 어쩌나. 혹시 동아리를 탈퇴한다고 하며 어쩌나 하는 생각으로 더더욱 조심스러워지고 편안하게 다가가기가 어려워 지는 게야. 참 우습다. 하지만 난 그랬다. 너에게 그리고 후배들에게 더 많은 것을 이야기 해 주고 싶었고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그런 맘은 늘 한결 같았다.

사람의 마음이 똑같지는 않지만 세상을 참 아름답게 살아가고픈 맘은 누구나 같지 않았을까? 지금도 변함없다. 늘 너와 함께 대학생활을 만들어 가고 싶다. 8월 이 선배는 너가 잘 아는 동기와 선배들과 함께 노근리에서부터 매향리까지의 역사기행도 갔었단다.

노근리는 너도 잘 알다시피 미군의 양민학살지잖아. 어린꼬마아이부터 노인까지 그들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참히 미군의 총에 맞아 죽어갔었지. 터널이 피로 넘쳐나고 옆에 있던 내 누이가 내 부모님이 그렇게 죽어가면서도 아무런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숨죽이며 며칠동안 그렇게 주검과 함께 지내야만 했던 생존자들은 그때의 상처를 무엇으로 되돌려 받을 수 있겠니.

내 땅에서 내 고향에서 맘놓고 농사를 짓지 못하고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매향리 주민들의 삶은 또 어떠하겠니. 바다 곳곳에 포탄이 널려 있고 동네꼬마아이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불발된 화약을 가지고 놀다가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임신부가 유산을 하는 우리 땅 매향리에서 그들은 주한미군은 주인처럼 50년 넘게 살아왔다던 그 곳 매향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 해야하는지 참으로 막막했단다.

그리고 처음으로 분노했다고 한단다. 분노라, 아직 젊은 나이이기에 순수한 청년이기에 분노를 하나보구나. 명동성당에서 500여일 가까이 국가보안법으로 인하여 장기수배자의 몸이 되어 내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내 형제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형들과 함께 국가보안법 철폐 일일캠페인도 함께 했었단다. 몇 명 되지는 않지만 8년, 5년이 넘게 수배자의 몸으로 살아가는 형들의 따뜻한 그 마음, 순수하게 살아가는 그 형들의 모습은 다시 한번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해 주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단다.

국가보안법이 중요하고 주한미군철수도 중요한 것이었지만, 우리가 이렇게 분단된 조국에서 살아가야 하는 청년의 마음은 어떠해야할 지를 밤늦도록 더욱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단다.

그래, 며칠전이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연세대학교로 모여들었단다. 8.15통일대축전. 왜 그리도 비가 많이 쏟아지던지 그래도 난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단다. 그 많은 사람들이 비가 오면 올수록 더욱 서로서로를 부대끼며 챙겨주는 그 모습들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단다. 통일- 통일을 이야기 하고 통일을 꼭 하자라고 이야기 하는 그 사람들을 몇 년전까지만 해도 폭도로 빨갱이로 매도 했던 지난날들이 떠오르더구나.

이제는 정부와 정당 그리고 7대 종교단체까지도 저마다 통일을 하자고 이야기하며 통일대축전 행사를 함께 하게 되었단다. 이렇게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서 감옥에서 통일을 외쳤을까-생각해 본다. 선배들은 2학기를 준비하고 있단다. 대학에서의 통일축전도 있을테고 가을농활도 있을 게야. 방학중이라 만나지 못하고 함께 하지 못한 일이 있겠지만은 다시 해야하지 않겠니?

편지를 쓰고 있는 한밤중이 차다. 가을은 어느 새 오고 있었던 게야. 가을이라고 시기가 규정되기 전에 우리들 맘속에 이미 오고 있었던 것이 분명한 것 같아. 왜냐구? 가을엔 편지를 쓰세요라는 노래가사가 있잖아^^ 이제 며칠후면 건강한 너의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우리 다시한번 첫마음 가지고 힘차게 2학기를 살아가보자. 이 선배는 너와 함께 라면 그 어디라도 함께 간다. 힘내자.

2001년 개강하기 며칠전에 선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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