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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역(국철 1호선) 외대앞에서 내려 외대 들문 쪽으로 가노라면 오른편 길가에 자그맣게 자리한 <최교수네 헌책방>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녁 늦게 열고 밤이 되기 앞서 닫는 자그마한 곳. 어느덧 이 자리에서도 열 해 안팎 헌책방 장사를 하는 셈이고 이 앞을 지나가는 외대생만 해도 하루에 수천이지만 이 안까지 들어와 책을 보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조그마한 곳에 무슨 책이 있겠냐 싶기도 할 테고, 술 마시러 가고 집에 가느라 바쁜 대학생들이 이 곳까지 굳이 들어오겠습니까. 체육사와 가구점 사이 틈에 낀 헌책방 앞엔 문을 여는 때 앞서까지 옆집에서 바깥에 내놓은 물건이 가득합니다. 이웃가게는 <최교수네 헌책방>이 문을 열고 있지 않을 때는 자신들 물품을 바깥에 되도록 많이 늘어놓을 수 있어서 좋겠더군요.

외대생들이든 다른 누구든 찾아가기 쉬운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해도 마음먹고 찾아가지 않으면 잘못 가게 마련. 저 또한 어제 참 오랜만에 <최교수네 헌책방>에 들어갔습니다. 아저씨(교수님)는 신문을 읽고 계십니다. 둘레둘레 책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얼마 걸리지 않아 책방 안에 있는 책을 다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책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사람들 눈에 띌 만한 책이 없다 할 수도 있지요.

지난 1995년에 찾아왔을 때 있던 <현대문학> 창간호부터 100호까지 100권은 그 동안 그만한 세월의 먼지만 더 묵은 채 그대로 고스란히 있습니다. 잡지 앞에 늘어뜨린 `귀중한 책이니 함부로 만지지 말라'는 갱지에 적은 쪽지도 그 자리에 그대로 빨간 빛 펜자국이 조금씩 빛바래 가며 자리를 지키고 있고요.

92년도 중학교 문제모음 몇 권은 사둔 뒤 팔리지 않은 듯 그대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오히려 이렇게 안 팔리고 여러 해를 묵고 보니 앞으로 이대로 여러 해 더 묵는다면 이 녀석들은 귀한 대접을 받겠다 싶습니다.

<최교수네> 아저씨는 `자연 그대로' 책을 둔다면서 자기들 모냥대로 쌓이면 쌓이는 대로 둔답니다. 어차피 다른 책손님들이 와서 이리 뒤적 저리 뒤적하면 흐트러지게 마련이기에 그렇게 흐트러지면 또 그대로 둔다고요.

<최교수네> 열린 문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달력에 적은 `좌우명'입니다. 올바르게 살려는 아저씨 생각을 적어서 잘 보이는 자리에 붙여 두셨습니다. 70년대 끝물에 나온 교양서적 한 권과 사격지도책 한 권, 1978년에 나왔음직한 <실제출제문제해설집, 법전출판사> 세 권을 고르고 셈하려 하니 `무슨 책을 그렇게 심각하게 보면서 다 고르냐'며 당신이 요즈음 축구를 보며 느낀 이야기를 들려 주십니다.

오늘(4.26)도 밤에 축구를 보려면 밤새야 한다면서, 당신이 젊었을 적에 운동장에 가서 경기를 보고난 뒤 느낌도 이야기해 주십니다. `사람들이 다 빠져 나가고 텅빈 그라운드에 먼지가 휘익 날리고 휴지조각도 날리는데... 그 커다란 운동장 안에서 나 혼자만 있는...' 그런 고독감을 요즘 사람들은 모른다면서 이젠 운동장에 가서 경기를 보고난 뒤 그런 고독감을 맛볼 수는 없지만 그런 게 있다는 이야기도 해 주십니다.

일본이 스페인에 가서 친선경기를 하는데 연장전에서 0-1로 졌지만 참 잘했다고, 하지만 아쉬운 건, 친선경기를 갔는데 전반전에 그렇게 완전수비만 할 게 무어 있느냐고, 친선경기로 하고, 배우러 갔으면 지면 어떻고, 나아가 크게 지면 어떻냐고, 마음껏, 실력을 다 내서 뛰고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하십니다.

이제 나이도 많이 잡숫고 책을 모으던 젊었을 적 취미를 이어서 살리기 어려운 만큼 텔레비전으로 보는 운동경기가 `방송국 피디 이론'을 전공하고 가르친 최교수님 말년 일감이 되지 않나 싶습니다.

책방 문을 열고 자리에 앉아서 가게 앞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바라보노라면 저마다 걸음걸이가 다 다르다며, 그런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더라는 말씀도.

지나가며 이 헌책방 안을 들여다보는 이도 드물고 바깥에 늘어놓은 책이나마 거들떠보며 지나가는 사람도 드뭅니다. 하지만 안에서는 바깥을 늘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할까요. 당신이 꾸리는 헌책방으로 찾아와 한 권이라도 볼 만한 책이 있나 하고 휘 둘러보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면 누구라도 반가이 맞이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날 찾아왔을 때 책값을 다 드리지 못하고 외상을 했다고 아저씨에게 늦게나마 외상값을 드린다며 오천 원을 드리니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허허허 하고 웃으시더니 `내가 그냥 보낼 수 없지' 하며 `선물을 뭐 하나 주고 싶은데' `뭐 볼 만한 책 있으면 하나 골라 보라' 하십니다. `에휴, 뭔 선물이요' `굳이 선물을 주시고프면 가게 사진이나 멋지게 한 번 찍지요 뭐' 하고 살짝 말을 돌렸습니다.

1994년에 처음 찾아온 뒤 가게 안 모습을 한 번도 사진으로 담아 보지 못했는데 1995년에 <톨스토이 인생론>을 사며 진 빚(외상) 오천 원을 뒤늦게 갚으면서 소중한 사진을 여러 장 담았습니다. 그때는 그 책이 제게 그다지 쓸모가 없으리라 보았지만 <최교수네> 아저씨가 젊은이가 꼭 한 번 읽어 보면 도우이 될 거라고 추천해 주셔서, 돈이 없는데 어쩌냐고 하니, 그럼 돈 있을 때 와서 주라 하셨지요. 당신이 보던 책이라 하면서 추천해 주시기에 그저 고개 한 번 숙이며 인사하고 나왔던 일이 있습니다.

그 <인생론> 한 권이 여섯 해 지난 오늘에 와서 그 동안 쌓인 세월이란 먼지를 더 묵은 <최교수네 헌책방> 사진을 조촐하게 담도록 이끌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진이 잘 나올지는 모르겠군요. 잘 나오면 우리 최교수님에게도 사진 하나 사진틀에 곱게 담아 드려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홈페이지) http://freechal.com/tobagi

[최교수네 헌책방] 전화 따로 없음 / 저녁 여섯 시 즈음 문을 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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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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