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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과연 미국을 제대로 알고 있는가.

이번 미국의 대선공방 정국은 이런 의문을 우리에게 다시금 던져주고 있다. 우리 눈에 비쳐지고 있는 미국은 과연 제대로 된 것인가. 우리의 미국보기는 얼마나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것인가.

이같은 물음에 대한 대답은 불행하게도 여전히 부정적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우리는 여전히 미국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이번 대선공방은 우리의 미국보는 눈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경직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였다.

국내 언론이나 인터넷 매체들의 의견란에는 미국에 대한 찬양이나 비판일변도가 주류이다. 한쪽은 "역시 미국은 미국"이라는 식이고 다른 한쪽은 "봐라, 이게 미국이다"라는 식이다.

언론매체의 성격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나마 기성언론은 그 양분적 인식마저도 결여된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들은 다분히 일방적이다. "보라, 역시 미국이니까 다른 것 아닌가?"라는 투의 감동 설파조가 주류였다. 물론 이것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데 있다.

그 반대쪽 입장에 선 이들도 이런 식의 경직성을 보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것 봐라. 결국 미국도 별 것 아니지 않은가. 미국이란 원래 그렇고 그런 나라이다."

흑백논리가 횡행하고 중간적인 입장이 자리할 틈이 없다. 오직 미국은 선이 아니면 악이라는 양분논리가 주종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미국관으로는 아직 미국을 극복하거나 우리의 이익을 챙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과연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런 단순논리에 의해 규명되어질수 있는 나라인가.

나는 이런 논리는 미국이라는 대상을 제대로 보려는 노력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인 취향과 이해관계에 따라 사물을 해석하려는 편의주의적 감상법이라고 본다. 물론 나 자신도 마찬가지이지만 사람은 자기성향의 범주를 벗어나긴 힘들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그런식으로 쉽게 이분법적으로 구분지어 버리기에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너무나 중요한 존재이다.

미국에 대한 흑백논리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그놈이 그놈'이라는 증후군이다. 심지어는 의식의 진보를 자처하는 젊은층마저 상당수가 "고어나 부시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도그마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부시가 되건 고어가 되건 미국의 정치와 패권주의적인 세계 정책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또 이런 시각은 어쩌면 국제현실의 역학상 미국이라는 중심부 국가의 정책이나 노선에 극단적인 주장이 아니고서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혀 반영할 수 없는 주변부 국가 성원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의사개진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당연한 반응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말은 한번 뒤짚어놓고 본다면 미국인들은 '그놈이 그놈'을 놓고 처절한 사투를 벌이는 사람들이란 해석이 나온다. 이런 논리라면 미국인들은 같은 제품을 2개 놓고 "이것 고를까 저것 고를까"하면서 광기어린 사투를 벌이고 있는 셈이 된다. 이것이 과연 "정권이라는 먹이를 놓고 이성까지 저버린 어리석은 미국인들의 난리법석"정도로 치부될 수 있을까. 과연 미국인들은 그렇게 순진한 사람들일까.

내가 알기로는 아니다. 이들에게 있어서도 공화당과 민주당은 물과 기름이다. 밖에서 보기엔 별반 차이 없어 보일지는 모르지만 미국인들 입장에서는 반대편에 서로 알레르기를 느끼는 정도이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공화당이 국내정책에서 가진 자들의 이익과 세계정책에서 미국의 이익을 거의 맹신적으로 추구하는 당이라면 민주당은 그래도 설 곳 안 나설 곳을 가리는 열린 정당이다.

현재 기득권 구도의 변화를 원치않는 일본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구미선진국들이나 남미, 동구와 러시아, 중동국가 등이 은근히 민주당 고어가 당선됐으면 하는 바램도 이같은 이유이다.

이것을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미국이 아니라 그 어떤 나라라도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외교정책을 포기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하물며 초 강대국 입장에 있는 미국에 대해 기득권을 버리라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소리이다. 이들에게는 마치 어떤 사람에게 "그 좋은 집과 직장 다 버리고 훌훌 떠나라"라고 충고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소리다.

더구나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는 두 진영의 입장이 엄연히 다르다. 그것을 무시하고 억지로 '그놈이 그놈'이라는 논리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남북화해기류라는 역사적인 대사건도 민주당 8년 집권기에 이루어진 성과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한국을 보는 시각에 대해 우리의 미국 보는 눈은 아직 순진하기 짝이 없다. 우리는 미국을 입체적이고 유동적으로, 종합적이고 구체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하려하기 보다는 여전히 단선적이고, 평면적이고, 고정불변 하는 대상으로 파악하려 하려는 과거지향적 경향이 지배적이다.

이런 흐름은 정보의 부재와 미국에 대한 자신감의 결여에서 나오는 측면이 강하다. 상대를 모르면 자신감이 나올 수 없다. 이래서는 미국을 결코 당해낼 수 없고 우리의 이익을 보호할 수 없다. 소파협정 개정이나 노근리 양민학살문제 등에 있어서 이런 논리로는 우리의 국익을 지켜낼 수 없다. 무조건 미국탓만 하고 있어서는 문제해결이 안 된다.

미국은 양쪽의 극단론이 규정하는 것처럼 결코 '영원한 우방'도, '마의 제국'도 아니다. 그저 미국은 미국일 뿐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는 유동적인 상대일 뿐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선과 악, 나름대로의 진보와 보수가 동시에 공존하는 지극히 역동적인 사회이다.

요는 그중에서도 우리가 필요한 부분은 섭취하고 그렇지 않는 부분은 내뱉으면 되는 것이다. 흑백으로 규정을 해 버리면 더 이상은 활용해볼 공간이 보이질 않는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선별해 낼 수 있는 역량과 자신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데 있다.

미국은 그 영향이 긍정적이고 부정적이고를 떠나 우리 삶의 양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상대이지만, 정작 우리는 아직도 그 대상을 너무 모르고 있다. 우리로서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게임이다. 미국은 그저 단순한 흑백논리로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이렇게 해서 어찌 미국을 '타도'할 수가 있으며, 이렇게 해서 어떻게 미국에 대한 '흠모'에 제대로 한번 푹 빠져 볼 수가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좀 더 영악해질 필요가 있다. 짝사랑을 하건, '양키 고 홈'을 외치건 알건 제대로 알고 해야 한다. 그래야 효과가 난다.

견원지간이던 북한과 미국도 서로를 보는 눈을 바꾸고 있는 마당이다. 우리도 미국보는 기존의 눈과 귀를 업그레이드 해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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