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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은 그간 냉전시기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지해온 군사전략과 정책이 한국에서 더 이상 그대로 통용되기에는 어려운 상황에 도달하고 있다. 미국이 그간 자신의 군사전략과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희생시켜온 지역의 주민들이 이러한 미국의 자세와 입장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묵살하면서 자신의 군사전략을 밀고 나가게 되면 미국은 날이 갈수록 더욱 거센 저항에 직면하여 어려운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다.

40년 전 한국은 이승만 체제의 독재에 항거하여 4.19 학생혁명이 일어나고 이에 따라 시대는 매우 새로운 민주주의의 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열림은 바로 1년 뒤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일대 타격을 입었다.

군부가 중심이 된 정치체제는 냉전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고, 그러한 상황아래 국민들은 경제적 성취를 명분으로 내건 정치적 압박을 견뎌내어야 했다.

인간의 기본권리와 그 존엄성을 바탕으로 하며 그 공동체의 진정한 필요를 채워주는 체제가 아니라, 물질적 이해관계를 토대로 하는 이기적이며 경쟁적인 체제를 만들어 가는 일에 주력한 시대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날 한국사회를 삭막하고 몰인정하며 이기적인 모습으로 만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60년대 당시 미국은 자신의 냉전체제 유지에 일대 도전에 처하고 있었다.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고 이것은 미국으로 하여금 자신의 냉전체제 방어에 군사적 성격을 강화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히게 했다.

쿠바의 카스트로 혁명은 케네디 정권에게 심각한 충격이었으며, 이러한 상황이 다른 지역에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한 정책적 과제로 등장한 것이다.

한국은 미국에게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핵심적인 군사기지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따라서 미국의 입장을 반영하고 그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정치체제의 유지가 매우 긴요했다.

이승만 체제의 붕괴는 일단 한국사회의 벽혁기를 친미적인 장면정권으로 이행하도록 했으나 한국사회내부에서 들끓은 각종 요구를 장면체제가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냉전체제를 겨냥한 통일운동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이에 대하여 제동을 걸지 않으면 안된다고 여기게 되었다. 4.19 학생혁명의 주체중 일부가 남북통일의 발판을 마련하는 작업을 주도하고 이것이 국민적인 호응을 얻는 양상을 보이자, 미국은 당황하게 되었고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장면정권에 대한 신뢰를 거두어들이기 시작했다. 대체세력의 등장이 필요해졌던 것이다.

4.19 학생혁명에게 이승만 체제 붕괴의 선수를 빼앗긴 군부는 당시 정세가 매우 혼란하고 냉전체제을 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인식하에 기회를 노리고 있었으며 이러한 움직임과 미국의 요구는 서로 들어맞게 되었다.

서울 운동장에서 남북 통일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기로 되어 있던 바로 직전인 5월 16일, 군의 일부가 미명의 시각에 무장병력을 이끌고 한강을 건넜고 이들은 서울의 주요지점을 점거, 장악하여 쿠데타의 시대를 열었다.

이들 쿠데타 세력이 반공을 제1의 국시로 내건 것은 바로 당시 통일논의가 꽃을 피웠던 상황을 겨냥한 것이었으며, 미국의 냉전정책을 수행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 그리고 이들 군사쿠데타의 주역들은 통일논의를 주도했던 당시 혁신세력들을 일대 검거, 이들의 정치사회적 활동을 봉쇄해버렸다.

미국의 동북아 전략과 남북대결을 중심으로 지탱되었던 냉전체제에 대한 도전은 일시에 진압되었고, 이후 한국은 냉전유지를 위한 폭력체제의 강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80년 광주학살은 이러한 체제의 연장선 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미국은 이들 5.16 쿠데타 세력을 적극 지원, 군부의 육성과 강화에 막대한 지원을 하게 된다. 이러한 미국의 제3세계 군부지원정책은 사실 한국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경향이었다.

이후 제3세계의 민주화 투쟁의 과정은 국제사적으로 볼 때에 바로 이러한 미국의 냉전정책의 소산물과의 대결을 의미했고, 그러한 정책의 점진적인 동요와 소멸을 뜻하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미국의 군사정책이 이렇게 도전에 처해있는 것도 미국이 내세운 군사주의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이 급속하게 줄어들었고, 미국 군사정책이 가지고 있는 실상이 보다 확연하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일어나게 된 변화라고 하겠다.

이제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재정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점점 처해 있다고 하겠다. 주한미군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해져가고 있고, 이에 대한 주권적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면 집권세력으로서도 자신의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 어떻게든 행동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생명과 권리, 그 존엄성을 허물고 이루어지는 안보란 없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위해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난 시기의 역사를 보아도 그렇고, 오늘날 미국이 한국에서 유지하고 있는 정책의 성격을 보아도 이는 의문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의문을 짚어내는 작업은 흔히 언론들이나 일부 보수적인 인사들이 말하듯 반미운동의 차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고 나라의 주권을 방어하는 일에 속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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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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