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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꾸준한 관심 속에 진행되어온 오마이뉴스의 <열린 인터뷰>가 5월 3일 의정부 환경미화원 노조 파업 현장을 찾았습니다.

의정부 환경미화원 노조는 미화원들에게 당연히 지급됐어야 할 야간 수당 및 경운기 기름 값과 수리비 지급을 요구하며 한달 넘게 파업 중입니다.

앞으로 오마이뉴스 <열린인터뷰>는 유명인 뿐 아니라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도 함께 담아낼 예정입니다. <편집자>


노동절 행사가 있었던 지난 4월 29일.
그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한 늙은 노동자'를 기억할 것이다. 연단에 올라와 어눌한 말투로 그날 모인 사람들에게 가슴 찡한 뭔가를 던져줬던 그 늙은 노동자.

그 늙은 노동자를 찾아 오마이뉴스는 의정부역 동부광장으로 떠났다.

늙은 노동자, 환경미화원들의 파업

의정부역을 빠져나온 광장 앞에는 파업을 벌이고 있는 경기도 노조 소속 환경미화원 노동자들이 머리에 빨간띠를 두르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농성장으로 들어가 노동절 그 행사장의 주인공이었던 '늙은 노동자'를 만났다. 홍희덕(51). 경기도 노조 위원장 직무대행, 그가 바로 주인공이다.

파업 농성장이라서 그런지 한쪽 귀퉁이에는 쌓아놓은 이불이, 또 한쪽에는 쓰다만 대자보 용지가 보였다. 앞쪽에는 '파업 수칙'이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어서 오라"며 홍희덕씨는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경기도 노조 김헌정 위원장이 경찰에 연행되는 바람에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게 됐다며 노란색의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민주노총 공공연맹 경기 노조 사무장 홍희덕'이란 글씨가 박혀 있었다.

"노동절 행사때 아주 멋있었다"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자 그는 상당히 쑥쓰러워했다.

-파업 농성장 들어오다 보니 나이 드신 분들이 꽤 많은 것 같던데

"평균 나이가 52세쯤 될 겁니다. 그 중에 40대 초반이 제일 젊은 축에 속하죠. 10년전만 하더라도 청소부라는 직업 천시했잖아요. 혹시라도 일하다가 아는 사람 만나면 쭈빗쭈빗 피하고... "

-환경미화원 노조라고 하면 일반인들이 듣기에 좀 생소합니다.

"늙은 사람들이 노조를 만든다고 하니 그렇기도 할 겁니다. 저희도 맨처음에는 민주노총 하면 매번 각목 휘두르고, 던지고 패는 단체인 줄 알았으니까요.

작년 6월에 의정부 시청 소속으로 있다가 정부의 민영화 방침에 의해서 시설관리공단에 위탁운영권이 넘어갔어요.

시청 소속일 때는 정년이 61세였는데 시설관리공단으로 운영권이 넘어가면서 아주 일방적으로 정년이 57세로 정해졌어요. 그러다 보니 함께 일하던 11명의 동료가 퇴직하게 됐죠. 그게 첫 번째 사건이었어요.

거기다 시설관리공단으로 운영권이 넘어가더니 월급이 40만원 넘게 깍여 나오는 거예요. 시청에서 이야기할 때는 임금도 이전과 다름 없이 나올 거라고 했지만 사실과 달랐던 거죠"

홍씨는 환경미화원들의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이전에 일하는 작업 방식이 시설관리공단으로 운영권이 넘어오면서 완전히 바꿨기 때문이었다.

"청소하다 보면 쓰레기가 많은 지역이 있고, 그렇지 못한 곳이 있잖아요. 그런데 시설관리공단에서는 일률적으로 거리를 재서 작업을 배치하는 거예요.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기 맡은 구역을 청소할 수 없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 거죠.

능력을 넘어선 작업량을 주고 자꾸 왜 못하냐고 불러서 '시말서'를 쓰라고 하고, 잘 안하면 내보내겠다고 협박을 하는 거예요. "

이쯤 되자 환경미화원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 7명이 모여 노조라는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야겠다며 모임을 가졌다. '열심히 해보자, 아무한테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각서도 작성했다. 그리고 99년 8월 9일 시설관리공단 노조를 결성했다.

노조를 결성한 후, 의정부 시청 앞에서 시위도 벌이고 협상도 진행해 결국 삭감된 임금도 돌려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가로수 청소를 하는 환경미화원 이외에 의정부에는 일반 가정이나 상가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주)의정환경개발(대표 김재수) 소속 환경미화원들이 있었다. 이들의 상황은 더 열악했다.

-그렇다면 파업은 왜 시작하게 되신 거지요?

"올 1월에 의정환경개발에도 노조를 설립했어요. 이를 계기로 시설관리공단 노조와 의정환경개발노조가 합쳐지면서 경기도 노조가 결성되게 됐죠.

그런데 위탁업체인 의정환경개발은 의정부시에서 받은 환경미화원들의 각종 수당들을 가로채고 있었어요. 행자부 지침에 따라 월급을 받고 있는 시설관리공단 노조 조합원들에 비해서 월평균 30만원 이상 임금을 적게 받고 일하고 있었던 거죠.

의정환경개발 소속 조합원들은 개인 돈으로 쓰레기 수거를 위해 경운기를 사서 기름값과 수리비를 부담했는데 사실은 의정환경개발이 시로부터 경운기 운영비와 수리비를 받아 한푼도 지급하지 않았던 거예요. 이뿐입니까? 야간근로수당도 지급하지 않았어요. 3년 동안 미지급된 수당을 계산하면 8억은 될 겁니다.

거기다 어용노조를 내세워 법에도 금지돼 있는 복수노조를 설립해 주고 조합원들을 전환배치 시키고... 그런 의혹들의 시정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하게 된 거죠"

홍희덕 위원장 직무대행과 인터뷰 중에 옆 자리에서는 환경미화원 노조원들의 '분임토의'를 위한 조장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파업을 시작한 지 39일째.

지난 달 받았던 월급이 서서히 고갈될 시점이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조합원들이 누구인지 중앙에 알려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각 조별 토론에서 생활이 특히 어려운 분들은 말씀을 해주세요. 개인적인 사정을 좀 자세하게 이야기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투쟁할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아주시구요"

"이제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게 떳떳해요"

파업 39일째. 조합원들이 조금씩 힘들어 해 걱정이라고 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올해 연세가 얼마나 되었냐는 기자의 물음에 "49년생인데 너무 늙어보이지요. 흰 머리도 많고요. 이 직업이 원래 그래요"라며 말했다.

-언제부터 환경미화원으로 일하셨습니까

"93년에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우유보급소 총무도 하고, 행상도 하고요. 맨처음 환경미화원 시작할 때는 아는 사람들 만나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시청 소속으로 있으니까 안정될 거라는 생각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게 벌써 7년이 됐네요"

-환경미화원으로 일하시면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새벽에 일어나 일하는 게 참 힘들었어요. 항상 간선도로 옆에서 일하다 보니 매연으로 인해 가래침을 뱉어도 시커멓고. 코를 풀어도 시커먼 먼지가 묻어나오고.

작년 7월에는 함께 일하던 김영경 씨가 새벽에 일하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새벽에는 차들이 교통신호도 안 지키고 과속을 하니까 사고 위험이 아주 높아요. 의정부에서 청소하는 환경미화원들이 사고로 한 해에 한 명꼴로 사망을 한다고 보면 맞을 거예요.

그리고 하루 종일 쉴 수 있는 날은 일년에 구정, 추석, 자기 생일 날이다 보니 집에서 장남인데 사람 구실을 제대로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일요일, 국경일도 오전에는 근무해야 하니까요."

그는 노조가 생기고 처음으로 집단적으로 작년 추석에 2박 3일 동안 쉬었다가 업무방해로 고발당하고 월급이 깎였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가족들이 걱정이 많을 것 같은데.

"집사람하고 23살, 21살 된 딸이 있어요. 딸들은 파업하면서 구속되는 사람도 생기고 하니까 걱정이 많이 되나 봐요. 그런데 아내는 달라요. 차라리 파업으로 일자리를 잃더라도 같이 있는 사람들 배신하지 말고 열심하라고 하더군요. 살아봐야 얼마나 살겠냐구요.

저야 아이들도 다 컸고, 집사람이 일을 하니까 그래도 걱정이 없지만, 당장 생계가 어려운 조합원들은 참 힘들거예요."

그는 파업을 하고 그래도 인간답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시청에 근무하는 과장이나 계장을 보면 괜히 기가 죽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누구보다 당당하게 부당한 것들에 대해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고.

-환경미화원으로써 시민들에게 부탁이 있다면 한 마디 해 주시죠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는데 그래도 담배꽁초나 휴지들을 길거리에 버리는 분들이 많은데 조금만 배려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가정에서 분리 수거 좀 잘해주세요. 음식물 쓰레기가 비닐에 담겨 있으면 괜찮은데 압축기에 들어가면 국물이 터져나와서 환경미화원들 옷 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환경미화원들의 파업을 있는 그대로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임금 올려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예산이 낭비되고 있는 점을 시정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경상도 상주가 고향이라는 그는 환경미화원으로 있으면서 남들의 시선에 주눅들어 살았다.대부분의 환경미화원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남들이 안하는 일 하고 있고, 내 생계는 내가 책임진다는 자부심도 생겼어요. 노조하면서 인간답게 사는 것도 배웠고요. 그게 저에게 가장 큰 보람이라면 보람입니다."

생전 처음 해보는 집회며, 파업이라서 그런지 '투쟁가'를 배우는 것이 참 어렵다고 말하는 홍희덕씨.

"'파업가'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 '철의 노동자'는 이제 완전히 마스터했는데 아직 '늙은 노동자의 노래'는 잘 안 되네요. 열심히 부르긴 하는데..."

농성장 밖에서는 그가 완전히 마스터 했다는 '철의 노동자'가 엠프를 타고 흘러나왔다. 분임토의를 마친 조합원들의 노래 배우기 시간인 듯했다.

"민주 노조 깃발 아래 와서 모여 뭉치세. 빼앗긴 우리 피땀을 투쟁으로 되찾으세... 단결만이 살길이요... 내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고, 투쟁가를 부르는 늙은 노동자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철의 노동자'가 의정부 동부광장에 힘차게 울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의정부 환경미화원노조 홈페이지 개설 
http// my.dreamwiz.com/somy.
투쟁기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성원 부탁드립니다. 
농협 201019-52-109204 (조명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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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 정신을 신뢰합니다. 2000년 3월에 오마이뉴스에 입사해 취재부와 편집부에서 일했습니다. 영국에 잠시 살다가 돌아와 오마이뉴스 정치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