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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중앙정보국 CIA가 지난 냉전시기에 헐리우드의 영화계를 비롯, 예술계를 거대한 자금을 기반으로 배후 조정하여 냉전문화를 만들어내는 일에 앞장 선 역사를 한 영국 언론인이 폭로, 책으로 출판했다.

이 소식을 전한 <뉴욕 타임즈>지는 미 CIA가 미국과 유럽 문화계에 침투, 영화의 내용을 비롯, 문학과 미술 등의 작품의 방향에도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당시 소련에 대한 비판과 함께 미국식 가치관을 옹호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왔었다고 지적했다.

프랜시스 스토우너 선더즈(Frances Stoner Saunders)라는 한 영국 언론인이 지난 해 출간한 책 "문화의 냉전: 미 중앙정보국 CIA와 예술의 세계 The Cultural Cold War: The C.I.A. and the World of Arts and Letters"는 다음 달이면 미국의 진보적 출판사 "뉴 프레스(New Press)"에서 나올 예정으로 있다.

이 책은 미국 헐리우드 영화계가 세계영화시장에 내놓은 일부 영화들이 사실은 미 CIA가 냉전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서 지원한 것이라는 점을 드러냄으로써 미국 문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이 책이 문제삼은 영화 가운데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나 "1984년" 같은 작품은 자본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 모두가 지니고 있는 비인간적 면모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임에도 불구하고 CIA는 이들 작품에서 자본주의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은 삭제해버리고 소련을 겨냥한 내용으로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동물농장" 같은 경우에는 그 내용을 변조하기 위해서 조지 오웰의 미망인으로부터 판권을 사들여 영화제작의 과정에서 이 작품이 소련을 비판하는 것처럼 해버렸고 한다.

전후 유럽의 경제를 복구하기 위해 지원한 마샬 플랜의 예산에서도 진보적인 유럽 지식인들을 회유하고, 미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하는 언론이나 작업들을 봉쇄하기 위해 이들 지식인들을 포함하여 주요 언론과 잡지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냉전체제의 정당성을 홍보해나갔음을 지적했다.

예술에 있어서도 가령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의 사회주의적 현실주의가 고된 현실의 모순을 폭로하면서 대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게 되자, 미 CIA는 현실과는 상관없는 추상주의를 지원, 미국의 "관념적 표현주의" 예술을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콜럼비아의 여사학 교수인 앨런 브링클리는 지식인들이 정부기관의 지원을 받아 활동을 하게 된다는 것은 이미 그 지식인의 고유한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라면서, 지식인들에 대한 공신력이 이로써 추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비판했다.

실로 미국 역사를 돌아보면, 냉전시기에 헐리우드 영화계를 장악하려는 미 CIA와 정부의 작업은 치열했다. 이른바 <비 미국인 활동 조사 위원회>가 미 의회 내에 설치되어 각 분야에 걸친 빨갱이 잡기 광풍을 만들어 냈던 1950년대 미국은 헐리우드에도 소련의 첩자들이 침투해 있다면서 다소간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배우나 인사들을 인민재판과 다를 바 없는 사회적 공개지탄을 통해 매장시켜나갔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이 동료 배우들을 고발하도록 하는 사태가 일어났고, 대통령을 지냈던 배우 출신의 레이건의 경우 당시 미 CIA의 요구에 순응하여 헐리우드 내의 진보적인 배우들의 명단을 넘기는 등의 역할을 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헐리우드는 냉전문화의 제조장으로 변화했고, 미국의 외교정책을 은연중 옹호하든가 또는 소련을 위시한 사회주의권을 악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추진해나갔다.

이들 영화의 대중적 영향력은 막강해서 미국내의 사회경제적 모순이나 대외정책상의 문제 등에 대한 관심을 소멸시켜 버렸으며, 제 3세계 지식인들과 대중들도 이러한 영화 등 미국 문화에 접촉하면서 미국에 대한 환상을 길러나갔다.

어린아이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고 영특하게도 온갖 장치를 만들어 집안에 들어온 도둑을 잡는다는 내용의 <나 홀로 집에서(Home Alone)>의 경우, 최근 판은 그 내용이 바뀌어 미국 안보에 관계되는 일급 비밀이 수록된 컴퓨터 칩을 이 어린아이가 북한과 연계된 국제 테러리스트들로부터 지켜낸다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북한을 세상에 못된 테러국가로 일단 상정해놓고, 이 아이가 집안 곳곳에 장치해놓은 여러 가지 방어수단을 미국 군사안보체제를 정당화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영화의 재미 속에 미국의 대외정책과 군사정책을 옹호하는 메세지를 교묘하게 배합시켰다. 이렇듯 미국 문화의 일부는 순수한 문화적 양식과 내용을 담고 있다기 보다는 고도로 계산된 의도와 정책적 메세지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안목으로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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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기자는 경희대 교수를 역임, 현재 조선학, 생태문명, 정치윤리, 세계문명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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