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의 본질은 이영학과 조주빈 사건의 결합이다. 그 상황까지 오게된 맥락과 변화의 지점들, '학습된 무기력'이 다가온 순간들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저 사람은 정말 이 일을 좋아하나봐' 그렇게 볼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과연 진실일까? 사실이기는 하지만, 여러 조각의 사실들중 하나만 들여다보고 이것이 전체인 양 오인하고 오해한다면, 그것은 사건을 제대로 보지않는 것이다." -  SBS 시사고발 <그것이 알고 싶다> 중

 
지난 2023년 12월, 남편의 강요로 인터넷 성인방송을 진행하던 37세 여성 임모씨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놀랍게도 전직 군인 출신의 남편은 자신의 아내에게 강요와 협박으로 음란물을 촬영시키고 변태적인 행각들을 요구하여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았던 사실이 드러나 국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남편은 대체 왜 이런 엽기적인 행각을 벌었으며 아내는 왜 남편의 비정상적인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남편이 몸담았던 군은 이런 사실을 진작에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왜 제대로 된 수사나 처벌없이 전역시키는 것으로 사건을 덮으려고 했을까.
 
3월 23일 방송된 SBS 시사고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남편의 기이한 주문'을 통하여 성인방송을 강요당해 비극적 선택을 했다는 한 여성 사망사건을 둘러싼 진실과, 가해자인 남편의 과거를 추적했다.
 
2023년 12월 8일 오전 7시경, 임진호 씨는 딸 임민지 씨(가명)로부터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다. 민지 씨는 남편 이준혁(가명)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이혼하고 싶다고 울먹였다고 한다. 진호 씨는 당장 딸을 만나러 가겠다고 하자, 민지 씨는 다음날 오라며 아버지를 만류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진호 씨는 딸이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유족들은 민지 씨의 친구들을 통하여 딸의 죽음과 관련된 놀라운 비밀을 듣게 된다. 남편 이씨가 민지 씨의 삶을 철저히 통제하며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게 하고, 하루에 12시간씩 일주일 내내 성인방송을 촬영할 것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민지 씨가 가족들에게 남긴 유언장에 따르면, 남편의 강압과 감시로 인하여 밖에도 나가지 못한채 강제적으로 방송을 해야했으며, 노출이 심한 옷을 입히고 야외에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고 한다. 아내는 남편의 계속되는 협박과 금전요구를 더 이상 견디지못해 삶을 포기한다고 고백하여 안타까움을 줬다.
 
민지씨가 남긴 유품인 휴대폰과 사진들에서는 고인이 유언장에서 밝힌 내용들이 진실임을 드러내는 증거들이 다수 발견됐다. 남편은 민지 씨와 주고받은 메시지에서 집안에서 가전제품들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귀가하지않으면 촬영한 민지 씨의 영상들을 장인에게 보내겠다고 협박하는 내용도 담겨있었다. 민지 씨의 친정가족들은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씨와 만난 지난 7년간, 대체 민지 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민지 씨는 2017년 당시 한 스키동호회에서 한 살 연하의 직업군인이었던 남편을 처음 만났고 2020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지인들은 원래 민지 씨가 활달한 성격에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남편 이씨를 만난 이후로는, 매사에 자기 의지대로 행동하지못하고 남편이 요구하는 기준과 스케쥴에 맞춰서 살아야했다고 폭로했다. 이씨는 언쟁이 벌어지면 민지 씨가 수긍할때까지 자신이 원하는 답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민지 씨가 이씨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서 두 사람은 결국 결혼에 이르렀다. 하지만 결혼 이후 주변인들은 어째서인지 민지 씨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이씨는 민지 씨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친정 가족들마저도 집에 오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민지 씨의 부모조차 2년간 딸을 직접 만나지못하고 전화통화만 해야했고, 지인들과는 관계가 단절되다시피했다.

남편 이씨는 군복무를 하면서도 SNS에서 활동하며 인플루언서로 유명세를 얻었다. 이씨의 취미는 아내 민지 씨를 모델로 삼아 얼굴만 모자이크로 가리고 야외에서 야한 사진을 찍어서 올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주변 지인과 목격자들은 민지 씨가 무조건 남편 이씨가 시키는대로 따랐다고 증언했다.
 
또한 이씨의 지인은 그가 유료구독 플랫폼을 운영하고 아내를 이용하여 수익을 낼수 있다는 것을 알게된 이후로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음란물 촬영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새 차와 명품을 구입한 것을 자랑하기도 했다.
 
결국 이 사실이 군에 적발되며 이씨는 불명예 강제 전역조치를 당했다. 하지만 이씨는 전역 후 오히려 본격적으로 돈벌이를 위하여 성인방송 기획사와 출연계약을 맺고 아내를 BJ로 데뷔시켰다.
 
그런데 이 사건에 알려진 이후, 민지 씨 부부에 대하여 잘알고있다는 일부 성인방송관계자들은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언론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이씨의 강요가 아니라 오히려 민지 씨 본인이 적극적으로 성인방송 출연에 의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민지씨가 사망하기 두달전부터 남편과 불화가 심해져서 부부가 이미 별거 중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심지어 민지 씨는 남편과 별거한 후에도 본인의 의지로 성인방송 출연을 계속했다고. 이를 두고 성인방송 기획사 대표는 민지 씨가 남편과의 갈등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할 정도는 아니었으며, 민지 씨의 죽음은 이 씨와 무관하다며 옹호하기도 했다.
 
민지 씨가 사망한 당일날, 함께 동석했던 신아라씨(여성, 가명)와 박연호 씨(남성, 가명)라는 두 목격자가 있었다. 이들은 BJ와 방송관계자로 민지 씨와 함께 활동하면서 자연히 친분을 쌓았던 사이였다. 이들은 방송이 끝나면 민지 씨의 집에서 종종 술자리를 같이했다고 한다.

사건 당일날도 두 사람은 민지씨와 함께 당일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먼저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민지 씨가 보이지않아서 찾다보니 화장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상황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다급히 119에 신고했지만 민지 씨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더구나 유언장은 민지씨가 사망한 당일날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이미 이전에 작성된 것이라는 제보가 나왔다. 민지씨 부부의 일부 지인들은 남편 이씨가 아니라 신씨와 박씨가 민지 씨의 죽음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민지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결과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박씨가 민지 씨에 보낸 SNS 메시지중에 유서에 남겨진 것과 동일한 문구가 발견된 것이다.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한 박씨는, 해당 문구에 대하여 "유서를 대신 써준 것은 아니고 민지 씨가 쓰고싶어했던 이야기를 논리정연하게 정리해준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경찰 역시 조사결과 민지 씨의 죽음에 타살의 흔적은 보이지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며, 박씨와 신씨는 혐의가 없음이 입증됐다.

박씨의 주장에 따르면 남편 이씨가 민지 씨와 동료들과 식사하는 자리까지 찾아와 강제로 끌고가려해서 말리기도 했다고. 이씨는 집안에 있는 현금과 자동차까지 챙겨서 집을 나갔음에도, 이후로도 아내에게 매달 생활비를 달라고 협박을 했다고 한다.

또한 민지 씨에게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방송에다가 그녀의 신상과 과거 행적을 모두 폭로하겠다고 협박을 계속해서 민지 씨가 상당한 스트레스와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는게 박씨의 증언이었다.

실제로 이씨는 지난해부터 민지 씨에게 메시지를 통하여 협박을 일삼았고, 민지씨가 진행하는 온라인 방송에 익명의 아이디로 참여하여 악플과 의미심장한 글을 연이어 남기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나의 비밀이나 신분을 누군가 노출하겠다는 것은 온라인상에서도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한 위협이 된다"고 설명하며 "특히 가슴 아픈 것은 여성들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아니라 너도 공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의 주장을 누가 이해해줄까라는 주변의 싸늘한 시선이 본인 스스로 너무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범죄심리전문가인 박지선 사회심리학 교수는 남편 이씨의 행동에 대하여 "앞으로도 경제적인 착취가 이루어질 것에 대한 예고와 협박은, 피해자로 하여금 결국 죽는 날까지 가해자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생각을 가지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라고 분석했다.

이 씨는 7년에 걸쳐 민지 씨의 삶과 일상을 철저히 통제해왔고 먹는 음식 관리에서부터 사전에 알리지않고 휴대폰 위치추적까지 일삼았다. 민지 씨는 이 씨와 결혼한 이후 항상 마른 몸매를 유지하는데 신경을 써야했고 옷을 입은 스타일도 달라졌다고 한다.

또한 이 씨는 민지씨의 컨텐츠가 수익이 떨어질 조짐을 보이자, 성형수술을 시키고 얼굴을 공개하여 방송을 진행하게 했다. 이를 알게된 지인들이 이씨의 행동을 비판하자 그는 아랑곳하지않고 "아내도 좋아해서 하는 것"이라고 변명했다고.
 
표창원 범죄분석 전문가는 "이 사건의 본질은 조주빈 사건과 이영학 사건의 결합"이라고 일갈했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자신의 아내에게 성매매를 강요하여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간 인물이고, 조주빈은 텔레그렘에서 아동청소년을 비롯한 여성피해자들을 협박하여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판매한 N번방 사건의 주범이다,

표창원은 "이씨의 행동은 자신의 배우자인 여성 대상으로 성착취물을 위한 협박, 강요, 노예화를 시도했으며, 결국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는 점에서 두 사람과 흡사하다"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민지 씨는 남편과 이미 별거한 이후에도 왜 성인방송 출연을 계속한 것일까. 박지선 교수는 "본인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대로 행동하지못하고 남편에 의해서만 강요받는대로 생활하는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이걸 받아들기 내가 덜 불행해질 수 있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려고 노력하게 된다. 심리학적으로 인지부조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다른 전문가인 박경은 심리학 교수는 민지 씨의 심리상태를 '매맞는 여성층후군(B.W.S)'으로 분석하며 "폭력의 사이클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왔던 여성들은, 심리적으로 수치심에 대한 보상심리로 왜곡된 형태의 성적 친밀함을 보이려는 행태가 나올 수 있다. 이상 성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씨는 사망 2주전부터 민지 씨와 연락하지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사망 4일전까지 지속적으로 협박문자를 보낸 것이 확인했다. 그는 민지 씨가 사망한 이후 유족들의 연락은 피하면서 SNS 활동은 계속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대체 어떤 인물이었을까. 동창들의 증언에 따르면, 축구부였던 이씨는 자신보다 약하고 만만해보이는 사람에게는 이유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직업군인 시절에도 병사들을 폭행하여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전력도 있었다. 동료들과도 친밀한 인간관계가 거의 없어서, 민지 씨를 만나기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제대로 증언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다만 이씨가 불법음란물을 공유하여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던 '소라넷' 등에서 활동해왔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가 오래전부터 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가져왔음을 짐작케한다. 민지 씨를 처음 만나는 과정 역시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현재 이씨는 음란물유포와 감금, 협박혐의로 기소-구속되었으며 27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이씨를 만난 유족들은 그가 한마디의 사과나 반성도 없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씨의 변호사는 그가 혐의 일부는 인정하고 나머지는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다고 대신 전했다.

한편으로 유족과 지인들은 이씨가 몸담았던 군의 책임도 지적한다. 이씨의 성범죄 사실을 진작에 파악했음에도 법적인 진상조사보다는 내부 징계에 가까운 전역 조치로 사건을 대충 마무리하고 덮어버린 탓에, 사회에 나가서 더 큰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을 방치했다는 것이다.
 
이에 군은 '사건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의도는 없었고, 조치에는 절차상 하자가 없었다'라고 해명하면서도 '형사적 처벌 가능성이 면밀히 살피지못한 부분은 아쉬움이 있기에 관계자들에게 합당한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는 "법률전문가도 아닌 군사경찰이 섣불리 판단했다. 이건 입건했어야하는 사안이다. 필요한 절차를 모두 외면한 것"이라고 질타했다.
 
또한 당시 상황을 알고있던 제보자는 이 씨 사건이 알려진 이후 군 내부에서 부대 지휘관 회의 한번을 끝으로 졸속처리되었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유례없이 신속하게 처리됐다. 한달도 소요가 되지않았다. 군생활하면서 그렇겍 빠르게 전역처리시키는 것을 처음 봤다"라고 주장했다.
 
군은 왜 이씨 사건을 빨리 덮으려고 했던 것일까. 이씨가 불명예 전역하기 두달전인 2021년 5월, '이예람 중사 성추행 사망사건'이 발생하며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상황이었다. 전문가들은 군 기강에 대한 사회적 비판 여론이 고조되어 있던 분위기에서 이씨 사건까지 확대되는 것을 군 내부에서 부담스러워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민지 씨는 2022년 기획사와 계약을 맺은 이후 2년간 일주일에 5-6회, 하루에 길게는 6시간 이상씩 방송을 해야했다고 한다. 이렇게 몸을 혹사하며 일해야 했던 민지 씨에게, 정작 자신의 성착취 영상을 가족에게 보내겠다는 남편 이씨의 협박은 엄청난 속박의 도구로 다가왔을 것이다.
 
민지 씨가 자신의 목숨과 맞바꾸어 남긴 유서와 증거들로 이씨의 악행이 뒤늦게나마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재판을 통하여 한 사람의 인생을 짓밟고 파괴한 가해자의 행적이 낱낱이 밝혀지고, 그에 합당한 처벌이 내려지는 길만이 피해자의 한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그것이알고싶다 그알 성인방송강요사망 성착취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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