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금융그룹이 삼성화재를 꺾고 연승을 달리며 2위로 올라섰다.

석진욱 감독이 이끄는 OK금융그룹 읏맨은 13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0-2021 V리그 남자부 3라운드 삼성화재 블루팡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세트스코어 3-2(25-17, 25-22, 21-25, 23-25, 15-13)로 승리했다. 3라운드 들어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삼성화재를 꺾고 2연승을 달린 OK금융그룹은 KB손해보험을 세트득실률(1.458-1.346)에서 앞서며 2위로 올라섰다(승점 29점).

OK금융그룹은 외국인 선수 펠리페 알톤 반데로가 46%의 공격 점유율을 책임지며 25득점을 올렸고 최홍석이 12득점, 심경섭이 9득점으로 뒤를 이었다. 교체선수로 투입된 조재성은 서브득점 4개로 삼성화재의 리시브라인을 흔들었다. 한편 삼성화재는 이번 패배로 팀 최다 연패 타이기록인 7연패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승점 1점을 추가해 현대캐피탈을 제치고 최하위에서 탈출했다는 사실이 그리 기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엄청난 자본 앞세워 배구계 생태계 파괴한 포식자
 
 삼성화재의 오랜 독주시대는 '괴물' 시몬의 등장과 함께 허무하게 마감됐다.

삼성화재의 오랜 독주시대는 '괴물' 시몬의 등장과 함께 허무하게 마감됐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1995년에 창단한 삼성화재는 창단과 함께 남자배구계의 새로운 포식자로 등장했다. 삼성화재는 90년대 초반 현대자동차가 그랬던 것처럼 압도적인 자본력을 바탕으로 김세진, 신진식, 장병철, 석진욱, 김상우, 신선호 등 대학배구의 스타선수들을 싹쓸이했다. 거포 위주의 영입으로 포지션 불균형이 있었던 현대자동차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컴퓨터세터' 최태웅(현캐캐피탈 감독)를 영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국가대표나 다름 없는 화려한 멤버에 IMF 금융위기로 삼성화재의 대항마 중 하나였던 고려증권이 해체되면서 삼성화재에게는 사실상 적수가 사라졌다. 삼성화재는 슈퍼리그 77연승과 함께 겨울리그 8연패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면서 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 남자배구를 지배했다. '숙명의 라이벌'이 돼야 할 '월드스타' 김세진과 '갈색폭격기' 신진식이 같은 편이라는 건 사실 반칙이나 다름 없었다.

프로 출범 후 삼성화재는 잠시 주춤하는 듯했다. 프로 원년 우승을 차지한 삼성화재는 2005-2006 시즌과 2006-2007 시즌 숀 루니라는 외국인 선수와 압도적인 높이를 앞세운 현대캐피탈의 기세에 밀려 두 시즌 연속 우승을 놓쳤다. 여기에 삼성화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쌍포' 김세진과 신진식이 차례로 은퇴했고 신인 드래프트와 연봉 상한선(샐러리캡) 제도로 인해 과거와 같은 '폭풍 영입'도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삼성화재는 외국인 선수에서 길을 찾았다. 2007-2008 시즌 안젤코 추크의 대활약으로 우승컵을 되찾아 온 삼성화재는 가빈 슈미트와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로 이어지는 괴물 외국인 선수들의 맹활약으로 다시 7연속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프로 출범 후 10번의 시즌 동안 8번의 우승을 휩쓸어간 삼성화재의 시대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레오를 뛰어넘는 '괴물' 로버트 랜디 시몬을 앞세운 OK저축은행에 의해 2014-2015 시즌 삼성화재의 시대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여기에 삼성화재의 '믿는 구석'이었던 외국인 선수마저 자유계약에서 드래프트 제도로 변하면서 예전처럼 외국인 선수에게 의존하기도 힘들어졌다. 결국 삼성화재는 신치용 감독(진천훈련원 선수촌장) 사퇴 후 우승은커녕 챔프전에도 진출하지 못한 평범한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14경기에서 단 2승, 창단 후 최악의 시즌 보낼까
 
 프로 2년 차 신장호는 삼성화재를 이끌어갈 '토종거포'로 활약하기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프로 2년 차 신장호는 삼성화재를 이끌어갈 '토종거포'로 활약하기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 한국배구연맹

 
삼성화재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신진식 감독 체제로도 반전을 만들지 못한 삼성화재는 프로에서만 8번의 우승을 차지했던 고희진 코치를 4대 감독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고희진 감독의 선임이 발표되기 이틀 전, 신치용 전 감독의 사위이자 팀의 정신적인 지주로 활약하던 오른쪽 공격수 박철우(한국전력 빅스톰)가 FA 자격을 얻어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삼성화재에 부임한 고희진 감독은 삼성화재 고유의 팀 컬러를 지키되 수직적인 문화를 수평적으로 바꿔 젊고 능동적인 팀으로 바꾸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송희채와 류윤식을 우리카드 위비로 보내고 황경민, 노재욱(사회복무요원) 등을 대형 트레이드를 단행한 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비대면으로 진행된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는 폴란드 출신의 공격수 바토즈 크라이첵(등록명 바르텍)을 지명했다.

박철우와 송희채가 팀을 떠나고 황경민, 신장호 같은 20대 중반의 젊은 선수들이 중심이 된 삼성화재는 과거에 비해 한층 젊어진 라인업으로 시즌을 맞았다. 207cm의 장신 공격수 바르텍 역시 득점 순위 2~3위를 오가며 외국인 선수로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하지만 주전 선수들의 평균연령이 낮아졌다고 해서 팀에 갑자기 부족한 경험을 뛰어 넘을 만한 패기가 생길 리는 없었다.

삼성화재는 13일까지 14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2번의 승리 밖에 없다. 22번의 세트를 따내면서 승점 12점을 따내긴 했지만 .143에 불과한 승률은 남자부 7개 구단 중 최하위다. 끈질기게 상대를 물고 늘어지긴 하지만 승부처에서 경기를 가져오는 능력이 크게 떨어진다. 대한항공 점보스와 OK금융그룹, KB손해보험이 3강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이번 시즌, 삼성화재의 목표는 봄 배구가 아닌 '탈꼴찌'로 잡는 게 더욱 현실적이다.

이번 시즌은 코로나19라는 불안한 시국에 시즌을 치르고 있다는 특수성이 있고 감독 경력이 전무한 고희진 감독의 첫 시즌이라는 점도 정상참작(?)이 될 것이다. 하지만 삼성화재 배구단은 1995년 창단 후 지난 25년 동안 주요대회에서 한 번도 최하위를 기록한 적이 없는 남자부 최고의 명문팀이다. 지금의 삼성화재에게 연패탈출은 단순히 순위상승을 위한 것이 아닌 '명가의 자존심'과 직결된 문제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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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배구 도드람 2020-2021 V리그 삼성화재 블루팡스 7연패 바토즈 크라이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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