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일은 시작보다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 시대를 풍미했던 별이라고 할지라도 마지막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느냐에 따라 훗날의 평가는 천차만별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야구의 한 시대를 지배했던 '삼성 왕조'의 주역들이 팀을 떠나는 방식은 야구팬들을 씁쓸하게 만든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가 지난 16일 '프랜차이즈 최다승 투수'인 베테랑 윤성환을 전격 방출했다. 윤성환은 200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전체 8번)로 지명받아 입단한 이래 오로지 삼성의 푸른 유니폼만 입고 17년을 활약한 원클럽맨이다. 정규시즌 개인 통산 성적은 425경기 135승 106패 1세이브 28홀드 평균자책점 4.23이고,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이 4시즌 연속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차지하는데 기여하며 주축 선발투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세월은 속일 수 없듯이 최근 몇 년 간은 기량이 급격히 저하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2020시즌은 대부분을 2군에서 보냈고, 1군에선 불과 5경기에 출전하여 승수 없이 2패 평균자책점 5.79라는 초라한 성적만을 남겼다. 퓨처스리그에서도 6경기에 나와 3승3패 평균자책점 3.60에 그치며 8월 21일 SK전 이후로는 2군에서도 공식 경기 등판 기록이 없어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나이와 성적을 감안할 때 재계약은 당연히 어려워보였고 은퇴를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팀에 누구보다 오랜시간 공헌한 레전드를 하루아침에 매몰차게 내칠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타이밍이 공교롭다. 같은 날 오전에 한 매체에서 '삼성 선수 도박설'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야구팬들 사이에서 큰 파장을 일으킨 상황이었다. 비록 실명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누가봐도 윤성환을 지칭하는 정황이 뚜렷했다. 그리고 삼성 구단은 보도가 나온 지 하루도 안 되어 윤성환을 자유계약선수로 전격 방출했다. 기량이 떨어진데다 친정팀에서도 좋지 않은 모양새로 밀려난 선수를 다른 구단에서 영입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을 때, 사실상의 강제 은퇴 수순이다.

현재 윤성환 측은 도박 연루설을 부인하고 있으며 구단도 방출은 그와 별개의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 '은퇴식'을 열어주는 예우까지 고민했다던 프랜차이즈 선수를,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꿔 단호하게 내친 것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다.

더구나 야구팬들이 이 사건을 더 심각하게 주시하는 이유는, 윤성환을 둘러싼 도박 논란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윤성환은 지난 2015년 당시 팀 동료였던 임창용, 안지만, 오승환 등과 함께 한 해 전 마카오에서 원정 도박을 벌였던 것이 뒤늦게 드러나며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이 사건으로 구단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고 당시 한국시리즈를 앞둔 상황에서 윤성환-임창용-안지만(오승환은 당시 일본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즈 소속이라 징계 유예)은 모두 출전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주력 투수들을 모조리 잃어버린 삼성은 그해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패하여 5년 연속 통합우승에 실패했다. 이듬해부터 삼성은 더 이상 가을야구에 나가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나비효과를 불러온 사건이었다.

사건의 여파로 팀을 떠나거나 은퇴까지 해야했던 다른 선수들과 달리, 윤성환은 곱지않은 여론 속에서도 여전히 삼성의 원클럽맨으로 남았다. 그랬던 윤성환이 말년에 이르러 또다시 비슷한 문제로 도마에 올랐다는 것을 두고 야구팬들은 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삼성은 윤성환을 빠르게 방출시키는 대처를 통하여 이번 사건과는 분명하게 선을 긋는 모양새지만 향후 수사결과에 따라 어떤 후폭풍이 따라올지는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더 안타까운 것은 최근들어 '삼성 레전드'들의 잇단 불명예스러운 퇴장 사례가 윤성환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KBO리그 통산 최다홀드(177개) 기록 보유자이자 역시 삼성에서만 14년을 뛰며 특급 계투로 활약했던 안지만은 지난 2015년 도박 파문에 이어 2016년 이후 복귀했지만 그해 7월에 다시 인터넷 도박 사이트 개설 연루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고 결국 팀으로부터 방출됐다. 당시 KBO는 안지만에게 1년 유기실격 처분을 내렸고, 제재 기간이 만료된 이후에도 그에게 손을 내미는 프로구단이 나오지 않아 사실상 강제 은퇴 수순을 밟았다.

2019년 5월에는 베테랑 야수 박한이가 음주운전 사고로 불명예 은퇴를 당했다. 2001년 삼성에서 데뷔한 이후 19시즌간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한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한순간의 잘못으로 그동안의 선수 커리어는 물론 당연해보이던 은퇴식과 영구결번까지 모두 날아가버렸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했다. 묘하게도 삼성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올해까지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악의 기록인 '5년연속 가을야구 진출 실패'로 암흑기를 보내고 있다. 설상가상 한때 왕조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주역들은 2017년에 은퇴한 '국민타자' 이승엽 정도를 마지막으로, 나머지는 대부분 구단과 좋지 않은 모습으로 결별하고 있다. 

최형우(KIA), 박석민(NC), 채태인(전 SK)과 임창용(은퇴) 등은 모두 팀을 떠났다. 정작 프랜차이즈 스타로 끝까지 남았던 선수들은 다수가 말년에 잇단 사건사고에 휩쓸리며 구단 이미지에 먹칠만 했다. 안지만-박한이-윤성환 모두 삼성에서만 10년 이상을 활약했고 야구로서는 KBO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큰 족적을 남긴 선수들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야구인으로서 지켜온 명예를 스스로 날렸다.

이는 곧 이들의 전성기와 함께했던 삼성 왕조의 영광스러운 역사에도 오점을 남긴 셈이다. 2010년대 삼성 왕조의 주역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핵심 선수는 이제 오승환 정도 뿐인데 그 역시 구단 최대의 흑역사인 2015년 도박 파문의 주역 중 하나라는 주홍글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야구인으로서 모범을 보여야할 팀내 스타플레이어이자 베테랑급 선수들이 연이어 이기적이거나 무책임한 행동으로 구설수에 휘말리는 상황에서, 과연 삼성의 자라나는 젊은 선수들은 누구를 멘토로 생각하며 본받아야할까. 개인의 일탈을 떠나 삼성으로서도 이번 기회를 팀내 문화와 기강, 인성 문제 등 선수단의 프로의식을 다시 점검하는 뼈아픈 계기로 삼아야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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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환 안지만 박한이 원클럽맨 삼성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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