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북카페 트립티에서 영화를 해설한 차성수 전남대학교 교수

여수북카페 트립티에서 영화를 해설한 차성수 전남대학교 교수 ⓒ 오문수


지난 19일 오후 2시, 전남 여수북카페 '트립티'에서 영화감상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트립티'는 산스크리트어로 식후에 말하는 '참 좋다', '맛있다'라는 감탄사이다. 트립티는 공정무역을 통해 들여온 유기농 커피를 맛있게 마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네팔이주노동자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차성수 전남대학교 교수가 작품해설을 맡은 영화는 상영시간이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영화였다. 하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1895년 프랑스 남부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작가 '장 지오노'의 말이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살아가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매일 하고 있다. 따라서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일이 진정한 삶의 목표라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하루하루는 과일이며, 우리의 역할은 그 과일을 따 먹는 것이다."

1953년 미국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 지에 발표된 책 내용은 한 늙은 양치기의 외로운 노력으로 프로방스의 황무지가 새로운 숲으로 탄생하고, 그로부터 자연이 회복되어 희망과 행복이 되살아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 차성수 교수가 입을 열었다.

"제집이 순천입니다. 기차를 타고 여수역까지 오는 동안 차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습니다. 20년 전에 신문을 배달했던 분(75세)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50년 동안의 스토리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한 분의 얘기도 이렇게 의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차이

 여수북카페 트립티에서 행사가 진행되는 모습

여수북카페 트립티에서 행사가 진행되는 모습 ⓒ 오문수


차 교수가 참가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졌다. "시드니 세튼, 프란체스코 스케티노, 이준석,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참석자들이 공통점을 알지 못하자 차 교수가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며 세 사람에 관해 설명했다.

1852년 영국 해군 수송선 버큰헤이드호는 남아프리카로 가던 중 케이프타운 66km 전방에서 암초에 부딪혀 침몰했다. 사고 당시 승객은 630명이었지만 구명보트는 단 세 척뿐. 180명밖에 구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선장이자 사령관 시드니 세튼 대령은 "여자와 어린이부터 태워라"라고 명령하면서 병사들에게 부동자세로 갑판에 서 있게 했다. 이어 여자와 아이들은 3척의 보트에 나눠탔다.

세튼 대령의 명령에 군인들은 끝까지 부동자세로 움직이지 않았고, 구명보트가 버큰헤이드호를 떠났다. 결국, 세튼 대령 포함 436명의 군인은 그대로 배와 함께 수장됐다. 이후 '버큰헤이드호 전통'은 각종 해상 사고에서 불문율로 자리 잡았다.

2012년 1월 13일, 치비타베키아 항구를 출발해 승객 3216명 및 선원 1013명, 총 4229명을 태우고 항해하던 코스타 콩코르디아호가 티레니아 해의 토스카나 제도의 질리오 섬 인근에서 암초와 충돌한 뒤 선체가 점점 기울기 시작하다가 전복되어 침몰했다.

선장 프란체스코 스케티노를 포함한 일부 선원들은 승객들을 배에 남겨둔 채 승객들과 배를 포기한 후 먼저 대피하려고 시도하다가 이탈리아 경찰에 체포됐다. 세월호 침몰 사고로 먼저 탈출한 선장 이준석은 말할 필요가 없다. 차 교수가 세 사람을 언급한 이유를 말했다.

"똑같이 비슷한 상황에 부닥쳤지만 한 사람 리더십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줄 수 있는가를 시사하기 위해서 이 수수께끼를 던졌습니다."

37년 동안 씨앗을 심어 이룬 기적

 영화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황무지에 혼자서 1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엘제아르 부피에 노인의 모습

영화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황무지에 혼자서 1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엘제아르 부피에 노인의 모습 ⓒ 오문수


이어서 1987년 프데데릭 백 감독이 제작해 1988년 아카데미 최우수 단편 애니메이션 앙시 페스티벌 그랑프리를 수상한 영화를 감상했다. 이 영화는 나무가 사라져 황량한 사막으로 변모한 베르공 마을에 주인공이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숯을 구워 생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던 마을은 떠나지 못한 주민 몇 명과 12채의 가옥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주인공은 그곳에서 양을 키우는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노인을 따라 황무지로 나갔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황무지에 매일 같이 너도밤나무 씨앗을 심고 있었다.

그가 1910년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 37년이 지난 후 황폐했던 마을에 향기롭고 부드러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 기간 마을은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하지만 그가 심었던 10만 그루의 나무 중 2만 그루가 살아났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나무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양 4마리만 남기고 대신 벌을 키우기 시작했다.

 엘제아르 부피에가 황무지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지 37년이 지난 후 마을에는 1만명의 주민이 돌아오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행복한 마을이 되었다

엘제아르 부피에가 황무지에 나무를 심기 시작한 지 37년이 지난 후 마을에는 1만명의 주민이 돌아오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행복한 마을이 되었다 ⓒ 오문수


시간이 지나며 마을에는 물이 흐르고 주민 1만 명이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게 됐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말대꾸해줄 상대가 없어 말하는 법도 잊었던 엘제아르 부피에는 신이 내린 일꾼이었다.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행복을 찾아준 그는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냈다.

황무지에 푸른 숲을 남기고 평화로운 고독 속에 눈을 감는 엘제아르 부피에는 물질의 노예가 된 현대인들에게 참된 행복과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되새겨보게 하는 영화다.

차 교수는 "인간이 인간에게 늑대인 존재(Homo Homini Lupus)인 이 시대의 3가지 화두는 이기심과 잔혹한 폭력, 비도덕"이라며, "돈과 이기심, 출세, 집단이익, 행복만 추구하면 공동선은 누가 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강의를 끝맺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화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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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인권, 여행에 관심이 많다. 가진자들의 횡포에 놀랐을까? 인권을 무시하는 자들을 보면 속이 뒤틀린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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