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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의 여행 중 애로사항, 그 마지막 이야기 시간이다. 겨우 2박 3일 일본 다녀와서 일본을 다 아는 것처럼 글을 쓴다고 가자미눈으로 보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원래 서울 안 가본 사람이 서울을 더 잘 아는 법이다. 마지막 글에서는 일본에 대해 아는 척 그만하고 유쾌하고 명랑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시민기자가 여행 중 받는 세 번째 압박감, 바로 순간을 포착해야 하는 부담감이다. 경치를 감상하는 순간에도, 음식점에서 밥을 떠 넣다가도, 수족관의 상어를 보다가도 뭔가 떠오른다면 바로 그 상황을 잡아내야 한다. 그런 와중에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고, 그러다 보면 순간을 놓치기 십상이다.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식당 발견한 사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숨어 있는 맛집 고수의 요리장면 찍기. 오키나와와 관련된 많은 맛집 정보를 무시하고, 현지인들이 찾는 숨은 고수의 음식점을 무작정 찾아 나섰다. 까막눈 일행들과 눈에 불을 켜고 다녔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곳이 없었다. 한창 국제거리 시장 안을 헤매고 있을 때였다. 막내 녀석이 갑자기 화장실이 급하다는 것이다. 배를 문지르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토일렛, 플리즈"를 외치자 점원 한 명이 어느 방향을 가리킨다.

위기상황인 막내를 둘러업고 점원이 가리킨 방향으로 냅다 뛰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장 골목을 구석구석 누비기 시작했다. 점점 외지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들어갔다. 이미 밤 깊은 시각, 머릿속엔 야쿠자의 용 문신과 칼날이 번뜩이는 일본도가 떠올랐다. 장기 밀매, 오키나와 한국인 실종 사건…, 생각은 화산 폭발처럼 어둡고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화장실이 급한 막내를 위해 시장 구석구석을 다니다가 운좋게 발견한 장인의 집
▲ 나하시 국제거리 시장 내의 허름한 식당 화장실이 급한 막내를 위해 시장 구석구석을 다니다가 운좋게 발견한 장인의 집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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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간신히 화장실 안내판을 발견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뛰었다. 절대 무서워서 뛴 게 아니다. 그저 절로 다리가 움직였을 뿐이다. 잠시 후 아이의 속을 비우고 나니 한시름 놓였다. 이제는 돌아갈 길이 막막했다. 온 길에 대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머리를 스치는 뭔가가 있었다. '아까 등이 몇 개 달린 작은 집이 하나 있었지, 그래 메뉴판도 본 듯하고.' 바로 거기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숨은 고수가 초밥을 뭉치는 곳일 거라는 직감이 왔다.

뭔가 특종을 발굴한 기분이 들자, 두려움도 사라졌다. 등을 밝힌 식당 앞에서 안을 기웃거려보니 범상치 않은 장인의 모습이 보였다. 때마침 우리를 찾아 나선 일행들과 합류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대머리가 거의 확실한 주방장을 앞에 두고 시민 두 명이 앉아 사케 잔을 홀짝거리고 있다. 여기가 바로 내가 찾던 토착민 전용 일본 식당이었다.

일본에 가는 이유중 하나가 아마 초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 비주얼부터 환상적인 장인의 초밥 일본에 가는 이유중 하나가 아마 초밥을 먹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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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나 인터넷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장 뒤편 후미진 골목의 현지인들이 찾는 초밥집. 그토록 찾던 이곳에는 장인의 아우라가 넘치는 주방장 아저씨가 계셨다.
▲ 어색한 웃음의 주방장 아저씨 책이나 인터넷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시장 뒤편 후미진 골목의 현지인들이 찾는 초밥집. 그토록 찾던 이곳에는 장인의 아우라가 넘치는 주방장 아저씨가 계셨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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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음식이 나왔고, 맛 또한 장인의 기운이 철철 넘쳐흘렀다. 기자의 순간 포착 욕구는 바로 이럴 때 고개를 든다. 고수가 저울처럼 정확한 밥알의 개수를 움켜쥐는 순간, 혹은 눈을 감고 동일한 두께로 사시미를 써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달랐다. 나온 음식도 찍어야 하고, 식기 전에 먹어야 하고, 맥주도 한 잔 마셔야 하고, 아이들까지 챙겨 먹여야 하는 대단히 복잡한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더구나 우리나라 같으면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너무 멋져서요"라고 말하면 될 텐데, 일본어라고는 '스미마셍'밖에 모르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포토, 오케이?" 였다. 결국, 계산대 앞에 서서야 그 말을 꺼냈다. 인상 좋은 주방장 아저씨는 TV를 보다말고 매우 어색해하며 포즈를 취했고, 나 또한 '이게 아닌데' 하면서 셔터를 눌렀다. 그렇게 순간포착은 힘 조절에 실패한 풍선껌처럼 뻥 터져버렸다.

아름다운 노부부의 모습과 먹거리 사이에서

요리 과정을 보는 것 만으로도 침이 고일 정도다
▲ 익어가는 스테이크 요리 과정을 보는 것 만으로도 침이 고일 정도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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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들이대고 찍을 수가 없어서 배경삼아 찍었지만, 이 사진의 주인공은 사실 뒷편의 노부부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챙기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무척이나 애틋했다.
▲ 아름다운 노부부의 점심식사 모습 직접 들이대고 찍을 수가 없어서 배경삼아 찍었지만, 이 사진의 주인공은 사실 뒷편의 노부부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챙기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무척이나 애틋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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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렀던 아메리칸 빌리지의 한 스테이크 하우스에서였다. 말 그대로 '필'(Feel)이 왔다. 우리가 자리 잡은 옆 테이블에 노부부 한 쌍이 이른 점심을 들고 계셨다. 약간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챙기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다정해서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였다. 일본에 와서 보았던 그 어떤 장면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무언가, 글로 남기고 싶은 충동과 더불어 이 순간을 1초만이라도 뽑아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생각뿐이었다. 다소곳이 식사하는 두 분께 카메라를 들이민다는 건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우리가 할 짓이 아니었다. 자연스러운 장면을 담아내야 하는데, 사진 촬영을 부탁하면 괜히 어색한 장면이 나올 게 뻔했다.

더구나 앞에서 직접 철판에 요리해주는 스테이크 집이어서, 시선은 나도 모르게 자꾸 거기로 갔다. 숙련된 손놀림으로 코앞에서 지지고 볶아대는 모습이 난생처음이라 신경이 자꾸 분산됐다. 마침내 우리 일행들을 찍는 척하면서 배경으로 두 분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자꾸 찍어대면 눈치채시고, 식사에 방해가 될 듯해 몇 장 찍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만족할 만했다.

팽팽한 압박감... 나를 또 다른 곳으로 보내겠지

군침 도는 음식을 앞에 두고, 눈과 코는 음식을 향하면서 머릿속은 다른 생각을 해야 한다는 건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다. 괜찮은 한 장면을 순간 포착하고, 그에 관련된 글을 머릿속에서 썼다 지웠다 하며, 동시에 밥도 먹고, 술도 먹고 하는 여행이 시민기자만이 느끼는 입체적인 여행인 것이다.

이 밖에도 편의점에서 사진을 찍다가 거부당한 일이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을 정리하기 위해 오키나와 팔경 중에 하나라는 만자모 관광을 포기한 일 등, 여행인 듯 여행 아닌 여행 같은 일들이 많았지만 지면 관계상 이쯤에서 줄이려 한다.

이상으로 시민기자가 여행 중에 느끼는 압박감에 대해 정리해봤다.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사물과 교감하며, 문화를 이해하는 그런 여행의 참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대해 손해배상이라도 청구해야 한다고? 글쎄, 이건 비밀 아닌 비밀이지만, 실은 이러한 압박감들을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즐기고 있다. 예전 같으면 '아, 좋다!' 하고 집에 오면 잊힐 것들도 기자의 눈으로 보려고 노력하다 보니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된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삶의 원동력이라 하지 않던가? 시민기자로써 받는 팽팽한 압박감은 나를 또 다른 여행지로 보낼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각하고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내 시야는 조금 더 넓어질 것이다. 결국, 시민기자의 여행 기록이란 넓어진 시야의 흔적들이다.


태그:#아메리칸 빌리지, #오키나와 여행, #스테이크 하우스 포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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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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