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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무엇인가? 혹자는 준비 기간 동안의 설렘이란다.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는 유명한 명언도 있다. 여행에 대한 수많은 명언들 중에 요즘 내 가슴을 파고드는 글이 있다.

'여행은 그대에게 세 가지 유익함을 준다. 첫째는 타향에 대한 지식, 둘째는 고향에 대한 애착, 셋째는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위의 명언을 일부 수정해 본다. 시민기자로서의 여행은 그대에게 세 가지 압박감을 준다. 첫째는 기록에 대한 의무감, 둘째는 기삿거리를 발굴해야 하는 책임감, 셋째는 순간을 포착해야 하는 부담감이다. 짐작했겠지만, 이 글은 오키나와 여행기가 아니다. 여행을 순수한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고, 어떻게든 기사 한 줄이라도 뽑아내려 전전긍긍하는 한 시민기자의 하소연이자 분투기다. 이제 본격적으로 그 이야기를 풀어본다.

어디 기삿거리 없나...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지난 12월 24일 오후 성탄 연휴와 연말을 해외에서 보내려는 여행객들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붐비고 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던 지난 12월 24일 오후 성탄 연휴와 연말을 해외에서 보내려는 여행객들로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이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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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연휴. 수개월 전부터 준비했던 일본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김해공항 오전 8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오전 3시에 일어났다. 졸음을 간신히 참아가며 공항에 도착했으나 이럴 수가…. 오전 6시의 공항 주차장은 '만차'였다. 국내선이든 장기주차장이든, 하다못해 인근의 사설 주차장까지 모두 꽉 들어찼다. 마치 어느 거인이 블록 맞추듯 차를 한 대씩 끼워 놓은 듯, 깻잎 한 장의 여유도 없었다. 운전자들의 주차 실력에 경외감이 느껴졌다.

그랬다. 나 같은 사람이 외국여행 나갈 정도면 우리나라 국민의 절반은 나가고도 남는다. 나는 신혼여행 때 외국 땅을 처음 밟아본 사람이다. 아내 될 사람이 여권도 만들어주고, 계획도 짜고, 현지 통역까지 했으니 따라나섰지, 섣불리 조국을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격이다.

남들 다 배낭 메고 떠나는 대학생 때도, 곰팡이 핀 지하 동아리방에서 쥐덫으로 쥐를 잡아가며 연극 연습에 바빴다. 여행 갈 돈이 없었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사회에 나와서는 파울루 코엘류의 '여행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라는 말처럼 말이 안 통하는 외국에 나간다는 걸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나이 마흔이 넘었지만 여전히 외국여행은 경쾌한 발걸음보다는, 뭔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서 따라가는 입장이 됐다. 주차장에 빼곡히 들어찬 자동차를 바라보자니 새삼 국민들의 용기에 감탄이 나오면서도 불경기가 맞나 싶은 의문도 들었다. 여기서 기자 정신은 좀 더 의문을 가지라고 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12월 25일 하루에만 인천공항을 통해 해외로 나간 인원이 8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김해공항까지 포함하면 10만 명은 족히 한국을 떠나지 않았을까.

소바집을 찾아냈다, 사명감이 발동한다

나하시에 위치한 소바집으로 국물이 일품이며 오전 11시30분에 시작하여 60그릇이 팔리면 문을닫는다.
▲ 수리소바의 소바 나하시에 위치한 소바집으로 국물이 일품이며 오전 11시30분에 시작하여 60그릇이 팔리면 문을닫는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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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시미 사진을 찍기위해 일행 모두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이 자리를 빌어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 1인용 모듬 사시미 한 장의 사시미 사진을 찍기위해 일행 모두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이 자리를 빌어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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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서만 마실 수 있다는 오리온 맥주. 그 중 식당에서 파는 얼음낀 생맥주가 단연 최고다.
▲ 오리온 생맥주(나마비루) 오키나와에서만 마실 수 있다는 오리온 맥주. 그 중 식당에서 파는 얼음낀 생맥주가 단연 최고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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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파헤치고 싶지만 공항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든다. 주차 공간을 찾은 지 거의 1시간 만에 간신히 주차했다. 공항 내부 역시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어찌어찌 출국심사를 마치고, 간신히 비행기에 올랐다. 따뜻한 남쪽 나라 오키나와로 드디어 출발!

내가 비행기를 잘 안 타는 이유 중의 하나는 기압의 변화로 인한 귀의 통증 때문이다. 이번에도 좁은 공간에서의 귀의 통증은 공포로 다가왔다. 침을 삼켜라, 껌을 씹어라 등등의 민간요법도 먹히지 않는다. 도저히 참기 어려워 죽어가는 사람의 표정과 몸짓을 하며 스튜어디스를 불렀다.

응급상황을 기대(?)하고 온 그녀의 답변은 매우 단순하지만 프로다웠다. "하품을 크게 자주 하세요." 확실히 고기도 먹어 본 놈이 잘 먹는다고,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비행기를 처음 타시는 분들에게 나름 유익한 정보가 될 수 있을 듯하다. 비행기 탈 때는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든지, 비행기에서는 소변용 요강을 준다든지 하는 낭설에 속지 말고 '귀 아플 땐 하품'을 기억하시라.

2시간이 조금 못된 시간에 일본에 도착한다. 오키나와 본토의 나하시에 있는 국제공항이다. 오키나와는 여러 개의 섬으로 구성돼 있다. 17세기 초 일본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는 '류큐'라는 독립된 왕국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메이지 시대에 오키나와현으로 강제 편입된다. 그 이후의 슬픈 역사 이야기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미 책으로도 나와 있고, 인터넷에 자료도 풍부하니 궁금하면 찾아보시길.

따뜻한 남쪽 나라를 기대하며 공항 출구를 나서자 우리를 반기는 건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손팻말 대신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이었다. 어찌어찌하여 렌터카를 타고, 유명하다는 소바집으로 향할 때까지 빗방울은 그치지 않았다. 세 바퀴를 돌고 돌아(일본에서의 운전은 무척이나 힘들다) 드디어 하루에 60그릇만 한정 판매한다는 그 소바집을 찾아냈다. 이제부터 시민기자로서의 사명감이 서서히 발동을 건다.

분노 폭발 아내 "카메라 부숴버린다!!!"

뿌리가 다 드러난 고목으로 오키나와에서 어렵지 않게 볼수 있는 나무
▲ 수리성내의 고목 뿌리가 다 드러난 고목으로 오키나와에서 어렵지 않게 볼수 있는 나무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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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에서 어딜 가든 볼수 있는 상징인 샤샤. 늘 암수가 한쌍으로 있는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수컷이고, 암컷은 다문입에 이빨이 두개 나와있다.
▲ 오키나와의 상징 샤샤 오키나와에서 어딜 가든 볼수 있는 상징인 샤샤. 늘 암수가 한쌍으로 있는데,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수컷이고, 암컷은 다문입에 이빨이 두개 나와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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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첫 번째, 어디에 있든지 누구와 있든지 시민기자는 기록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기록에는 메모나 녹취가 있고, 가장 기본적으로는 사진이 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찍으려는 자와 먹으려는 자의 숨 막히는 신경전. 특히 나처럼 가족여행 말고는 여행 갈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여행 내내 가족과의 마찰을 감수해야 한다.

"고만하고 좀 먹자고!" "사진 찍으러 왔냐?" "아빠, 배고파" 등등 가족의 원성에도 굴하지 않고 기사에 쓸 만한 수준의 사진을 뽑아내야 한다. 하지만, 나의 실력은 맛집 파워 블로거의 발끝도 못 따라간다. 나름의 수준을 위해서는 음식이 식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기사 쓰라고 응원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음식 앞에 두고 장난 좀 치지 말자"라면서 분노의 수위를 높였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식당에서 나와 나하시의 명소인 수리성을 찾아갔다. 시민기자에게 지역의 명소는 글쓰기의 좋은 소잿거리다. 하지만 내겐 천방지축 두 아들이 있다. 아내와 한 명씩 맡아서 감시해야 한다. 시민기자와 아버지 사이에서 역할 갈등을 해보지만, 어느 순간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나를 발견한다. 그러다 아이를 시야에서 놓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 날은 아내의 억눌린 감정이 폭발한다.

"한 번만 더 애 잃어버리면 카메라 부숴버린다!"

아이 딸린 시민기자의 여행기란…, 고난과 역경 속에 피어난 한 떨기 연꽃과 같다.

(* 중편에 계속)

이 사진을 찍는 동안 큰 아들 녀석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앞으로는 줄로 묶고 다녀야겠다.
▲ 수리성 풍경 이 사진을 찍는 동안 큰 아들 녀석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앞으로는 줄로 묶고 다녀야겠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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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키나와 여행, #류큐, #수리성, #수리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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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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