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철 선수 곰두리 축구단의 오른쪽 공격수 박해철 선수는 한 골을 기록하고 10분만에 바로 교체가 되었다. 왜 이렇게 빨리 교체 되었을까?

▲ 박해철 선수 곰두리 축구단의 오른쪽 공격수 박해철 선수는 한 골을 기록하고 10분만에 바로 교체가 되었다. 왜 이렇게 빨리 교체 되었을까? ⓒ 김귀현



전반 10분, 뇌성마비 축구팀 곰두리 축구단의 박해철 선수(20)가 골대 정면 오른쪽에서 가볍게 밀어 넣은 슛이 골네트를 갈랐다. 선제골로 기선을 제압한 곰두리 축구단.

첫 골의 기쁨이 다 가시기도 전에, 곰두리 축구단의 김은희 감독(39)은 오른쪽 공격수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박해철 선수를 교체했다.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팀 곰두리 축구단은?
19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에 참가했던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 국가대표 선수(당시 4위)를 주축으로 1988년 11월에 국내 최초로 구성된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단이다. 당시 뇌성마비 축구 국가대표팀의 신철순(62) 감독이 팀을 해체하지 않고 계속 맡아 운영해 왔다. 올해로 20년이 됐으며 신 감독의 아들 신상국(32) 씨가 팀의 코치를 맡고 있다.

2002년 제8회 부산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이하 아태대회)에서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으며, 2006년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9회 아태대회에서는 5위를 차지한 강팀이다.

선수들은 20여명의 뇌성마비 장애인들로 구성 되어 있으며, 연령은 20세부터 48세까지 다양하다. 현재 한국여자축구 1세대인 김은희(39)씨가 감독을 맡고 있으며, 작년부터 김성일(59) 전 공군 참모총장이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경기가 시작된 지 10분밖에 되지 않은 시각, 교체 되어 들어온 박해철 선수의 숨소리는 가빴다. 10분만 뛰었을 뿐인데, 아주 힘들어보였다.

그렇게 녹초가 되어 들어온 박해철 선수에게 곰두리 축구단의 모든 선수들은 수고했다고 안아주었다. 선수들은 활짝 웃으며 박해철 선수를 반겼다. 살갑게 볼을 비비는 선수도 있었다.

다른 축구 선수단에서 볼 수 없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선제골을 넣은 선수를 10분 만에 교체한 것도 이상하고, 10분만 뛰었을 뿐인데 매우 힘들어하는 박해철 선수도 이상하다. 그리고 그렇게 금방 들어온 선수를 수고했다고 안아주는 선수들도 이상하다.

김은희 감독에게 '왜 이렇게 빨리 교체 했냐'고 물었다.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는 일반 축구장의 절반만 한 구장에서 해요. 이렇게 큰 경기장에서 풀타임을 뛰기는 정말 힘들죠. 10분 뛴 것도 정말 잘한 거에요."

열 살, 갑자기 찾아온 장애... 스무 살, 새롭게 시작한 축구

박해철 선수 곰두리 축구단의 박해철 선수가 드리블 하고 있다.

▲ 박해철 선수 곰두리 축구단의 박해철 선수가 드리블 하고 있다. ⓒ 김귀현


곰두리 축구단은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단이다. 이 곰두리 축구단은 10월 25일 오후 3시 30분, 충북 청원 공군사관학교 주경기장에서 공군의 초청으로 공군 장군단과 친선경기를 했다.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는 일반 축구장 규격(105m×68m)의 3분의 2정도인 75m×55m의 작은 구장에서 7인제로 한다. 골대도 2m×5m로 유소년 규격이다.

선수 대기실에서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박해철 선수는 "일반 축구장에서는 처음 뛰었다"고 한다. 또 "처음 큰 경기장에서 뛰어 긴장도 많이 했지만, 한 골을 넣어서 정말 기분 좋다"고 말했다.

박해철 선수의 플레이는 남달랐다. 오른쪽 공격수로 뛴 박 선수는 공간 침투 능력이 탁월했고 볼 다루는 능력도 프로 선수 버금갔다. 원래부터 이렇게 운동을 잘했을까?

"열 살 때인 1997년, 갑자기 장애가 왔어요. 어릴 적부터 운동에 소질이 있어 학교의 여러 체육부에 속해 있었어요. 하지만 운동을 너무 심하게 하는 바람에 과로로 쓰러졌었어요. 그리고 일어나보니 몸의 왼쪽을 쓸 수 없더라고요. 그렇게 10년을 장애를 안고 살았습니다."

뇌병변 3급 장애 판정을 받은 박해철 선수는 그 후로 운동에 대한 미련을 모두 버렸다고 한다. 오히려 장애를 안긴 운동을 증오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지금 다시 축구 선수로 뛰고 있다.

"올해 초, TV에서 뇌성마비 장애인 축구 세계선수권대회 경기를 보았어요. 거기엔 저보다 더 몸이 불편하신 분들도 축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축구 중계를 보며 저도 축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며칠 후 곰두리 축구단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올해 봄부터 바로 합류했습니다. 축구를 하고 있는 지금, 정말 행복합니다."

박해철 선수는 현재 경남 남해전문대학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이다. 지금 학교 공부보다 축구가 더 좋다는 박해철 선수의 꿈은 무엇일까?

"장애인 올림픽에 나가서 꼭 금메달을 따고 싶습니다. 장애인도 축구를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 사람에게 꼭 알려주고 싶어요."

"비겼으면 좋겠어요!", 곰두리 주장 맞나요?

곰두리 축구단은 1-0으로 전반을 마쳤다. 후반 경기가 시작되자 또 한 골을 추가했다. 전 공군 참모총장인 김성일(59) 곰두리 축구단 후원회 명예회장이 골대 정면 왼쪽을 돌파해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이번 경기는 7인제로 진행되는 뇌성마비 축구경기를 감안해 후원회 회원 몇몇이 곰두리 축구단의 선수로 참가했다.)

점수는 2-0, 곰두리 축구단의 승리가 눈앞에 보였다. 다들 즐거워했지만, 유독 기뻐하지 않는 곰두리 축구단의 한 선수가 있었다.

'노심초사' 곰두리 주장 곰두리 축구단의 주장 김형수 선수(맨 오른쪽)가 심각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노심초사' 곰두리 주장 곰두리 축구단의 주장 김형수 선수(맨 오른쪽)가 심각한 표정으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김귀현



이 선수는 경기 내내 서있었다. 다른 선수들은 다들 앉아 있는데, 경기 시작 전부터 계속 서있었다. 계속 서 있는 이유를 묻자, "주장이라서…"라는 짧은 한마디만 남겼다. 이 선수는 곰두리 축구단의 주장 김형수 선수(33)다.

지난 연습 경기 도중 무릎을 다쳐 선수로 뛰지 못한 김형수 선수는 경기 내내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2-0으로 이기고 있어도 그랬다. 김형수 선수는 "친선 경기인데 경기가 비겼으면 좋겠어요. 이기면 공군팀에게 미안하잖아요"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주장인 김형수 선수는 곰두리 축구단에 들어온 지 8년이나 됐다. 중앙 수비수로 뛰고 있는 그의 직업을 묻자, 그는 유니폼의 왼쪽 가슴 부분을 가리키며, "이거 내가 디자인 한 거에요"라고 말했다.

곰두리 축구단 마스코트 웹디자이너인 김형수 선수가 디자인 했다.

▲ 곰두리 축구단 마스코트 웹디자이너인 김형수 선수가 디자인 했다. ⓒ 김귀현


곰 두 마리가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팀의 로고를 김형수 선수가 디자인했다고 한다. 자기가 디자인했다고 자랑하고 있는 김형수 선수 옆의 다른 선수들은 "마스코트가 너무 귀엽기만 해, 패기가 없어"라며 놀리기도 했다.

김형수씨의 직업은 '웹 디자이너', 곰두리 축구단의 대부분 선수들은 직업을 갖고 있다. 축구만 해서는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형수 선수는 "평소에는 일을 하다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만 합숙 훈련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대표팀에 뽑혀야만 축구협회에서 한 달에 50만 원 정도 받는다"고 말했다. (김형수 선수는 현재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장을 맡고 있다.) 또한 "대부분 선수들이 돈 때문에 축구를 그만 둔다"며 아쉬워했다. 

어렸을 때부터 뇌성마비 장애를 얻었다는 김형수 선수는 "축구 하면 몸이 건강해져 좋다"고 말했다. 또한 "나중에 나같이 장애를 가진 선수들을 지도하는 것이 꿈"이라며 활짝 웃었다.

활짝 웃는 김형수 선수 김형수 선수의 꿈은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 활짝 웃는 김형수 선수 김형수 선수의 꿈은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 김귀현



하늘 날씨는 '흐림', 곰두리 날씨는?

그 사이 경기는 공군 장군팀이 만회 골을 터뜨려 2-1로 바짝 추격해 왔다. 그리고 후반 종료 직전, 장군팀은 또 한 골을 성공했다. 다른 선수들은 모두 아쉬워했지만, 김형수 선수는 작은 미소를 띠었다.

경기는 김형수 선수의 바람대로 2-2로 끝났다. 정말 아쉬운 무승부, 안타까워 할 만도 한데 다들 기뻐했다. '장애인은 축구를 할 수 없다'라는 편견의 벽을 뛰어 넘은 선수들은 아쉽게 비겼더라도 행복해 했다. 그리고 서로 꼭 안아주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려 하늘은 무척 흐렸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한 웃음은 어떤 쾌청한 하늘 보다 맑았다.

"와! 비겼다!" 오현석 선수(왼쪽)과 황인률 선수(오른쪽)가 경기를 마치고 서로 안아주고 있다.

▲ "와! 비겼다!" 오현석 선수(왼쪽)과 황인률 선수(오른쪽)가 경기를 마치고 서로 안아주고 있다. ⓒ 김귀현



승려도 목사도 곰두리와 함께 하나 되다
[경기 이모저모] 이회택 부회장, 조광래 전 감독도 경기에 참가
"스님도 뜁니다" 곰두리 축구단 후원회 승려 현문(법명)이 필드를 누비고 있다.

▲ "스님도 뜁니다" 곰두리 축구단 후원회 승려 현문(법명)이 필드를 누비고 있다. ⓒ 김귀현

'함께 가자 우리,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하여'

곰두리 축구단의 표어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바라는 곰두리 축구단의 기조에 맞게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이 친선경기에 함께 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사람은 바로 법복을 곱게 차려입고 온 승려들이다. 승려들도 벌써 몇 년째 곰두리 축구단을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법복을 입고 있을 때는, '과연 승려들이 축구를 잘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승려들의 움직임은 축구 선수를 방불케 했다.

"승려 생활을 하기 전부터 축구를 쭉 해왔다"는 법명 정안 스님(45·경기도 안성 호국사)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 곰두리 팀의 공격을 진두지휘 했다.

기독교계에서도 함께 했다. 헤브론축구선교회의 류영수 목사(55)는 "좋은 일에는 종교의 장벽이 없다"며 승려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다. 경기 후 뒤풀이에서도 승려와 목사는 같은 자리에 앉아 친분을 과시했다.

종교계 인사 이외에도 낯익은 축구계 인사들의 얼굴이 보였다. 대한축구협회 이회택(63) 부회장도 축구화를 신고 필드에 섰다. 이 부회장은 현재 곰두리 축구단 후원회장이다.

조광래(52) 전 FC 서울 감독도 미드필더로 뛰었다. 현역 시절 '자로 잰 듯한 패스'로 '컴퓨터 링크'라는 별명을 얻은 조광래 전 감독은 현역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날카로운 패스를 선보여 곰두리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그리고 감독도 뛰었다. 곰두리 축구단의 김은희 감독은 후반 10분 경 선수가 부족하자 직접 경기장을 뛰었다. 이날 유일한 여성 선수였다.

승려도, 목사도, 감독도, 왕년의 축구스타도, '더불어 사는 세상을 향하여' 곰두리 축구단과 함께 비를 맞으며 뛰었다.

곰두리 뇌성마비 공군 김형수 박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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