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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작 특집극 <그라운드 제로>
ⓒ mbc
<그라운드 제로>는 폭탄이 떨어지는 지점이란 뜻이다. MBC가 11, 12일 2부작 특집극으로 마련한 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삶 속에서 폭탄을 맞는다.

주현(김남진)은 9.11테러로 사랑하는 약혼녀를 잃어야 했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Let it be'를 부르며 그냥 이대로 행복해 하던 주현은 마지막 순간, 약혼녀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그 후 주현은 상처를 안은 채 약혼녀가 좋아하지만 자신은 못 먹게 하던 커피를 만들며, 마시며 살아간다.

또 다른 주인공 천수(김갑수)는 뇌물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것도 모자라 아내의 불륜까지 알게 된다. 아내에게 "당신은 무슨 낙으로 살어?"라고 묻는 천수에게 삶의 낙이란 건 없어 보인다. 아내와 불륜 관계인 친구 일갑의 차를 향해 돌멩이를 집어 들지만 차마 던지지 못하는 그는 평범해서, 소심해서, 악하지 못해서 슬픈 소시민이다.

가진 것도, 배운 것도, 부모 복도 없는 택시기사 동선(박철민)은 기사식당에서 만난 미숙에게 진심을 고백한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미숙은 자신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로 거절하려고 하지만 동선은 여기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지금, 행복해야 한다.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진실한 고백에 미숙은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고 동선은 미숙과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동선이 개인택시를 마련한 날, 미숙은 쓰러지고 만다.

이 드라마는 옴니버스식 구성으로,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 세 주인공이 어느 한 순간 얽힌다. 개인택시를 마련하고 첫 손님으로 주현을 태우고 가던 동선은 죽으려고 뛰어든 천수를 어쩔 도리 없이 치고 만다. 세 남자는 그렇게 인생의 한 순간, 한 공간에서 만났다.

모든 것은 우연이지만 또한 모든 것은 필연인 걸까. 천수의 심장은 동선의 아내 미숙에게 이식된다. 누군가는 죽었지만 누군가는 새 삶을 얻었다. 주현 역시 약혼녀 유진의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유진에게 선물했던 목걸이를 돌려받는다. 유해는 못 찾았지만 목걸이를 발견했으니 이제 그만 유진이를 놔 주라고, 놓아 주자고 말하는 유진의 어머니. 주현은 유진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 목걸이를 처제에게 돌려준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이지만 어려운 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서 주현은 이제 천수의 딸이자 자신의 가게 아르바이트생인 소영을 마주보며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주현은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갈 것이다. 아마도 천천히, 오고 있을 사랑을 하면서.

사람들은 늘 무언가를 무너뜨리고 무언가에 무너져 내린다. 처음 시작할 때 나오는 이 내레이션은 마지막에 다시 일어나고 일으켜 세운다는 말로 마무리된다.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살기보다 무너지는 순간, 다시 일어서는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불륜과 불치병이라는 뻔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삶이 무너지는 순간과 그 이후의 희망을 담담하게 그려낸 것 같다. 저조한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시청자게시판에 호평이 넘치는 이유일 것이다.

1부는 다소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2부는 코끝을 시큰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새로운 희망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은 주현과 동선의 이야기에 비해 죽음을 택한 천수의 이야기는 깊이나 비중이 좀 적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불륜을 저지른 아내에 관한 이야기도 너무 부족하지 않나 싶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천수가 죽은 후에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스타배우가 나오진 않았지만 연기력을 인정받은 명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 드라마였다. 특히 천수가 펑펑 우는 장면과 동선이 심장 이식을 받고 누워 있는 아내에게 뇌사 상태에 빠진 천수를 보며 당신을 떠올렸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마음을 짠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스타배우를 앞세운 초대형 블록버스터급의 드라마가 많이 나오는 요즘에 앞으로도 이런 형식의 드라마가 종종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티뷰 기자단


태그:#그라운드제로, #특집극, #김남진, #김갑수, #박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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