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셉션>의 흥행을 보며 한국 영화 다 어디갔나 싶었습니다. 나오는 것마다 참패를 하니 참 마음이 아팠지요. 또 마침 안젤리나 졸리가 직접 방한하면서까지 영화 <솔트>를 홍보하는 걸 보며 한국 영화의 부진이 더욱 쓰리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때 혜성처럼 개봉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영화 <아저씨>입니다. 오랫동안 볼 수 없었던 원빈을 내세운 <아저씨>는 개봉하자마자 돌풍을 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그 후 한국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흥행 바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두 영화를 참 재밌게 보면서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유는 "잔인함" 때문이었습니다.

갈수록 잔인해지는 한국 영화와 우리의 현주소

아저씨 스틸컷

▲ 아저씨 스틸컷 ⓒ 오퍼스 픽쳐스


제가 잔인함을 얘기하는 건 이것 자체가 주는 느낌도 있습니다만, 최근 한국 영화가 잔인함을 빼고 성공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말하자면 영화 <아저씨>만 그런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어떤 카페에서 조사한 걸 보니 <텔미 썸딩>, <섬> 등 제법 오래된 것부터 잔인한 영화의 순위가 정리될 수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아저씨>나 <악마를 보았다>는 잔인함 그 자체를 주제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빼놓고 영화를 얘기하기도 굉장히 어렵지요. 그만큼 잔인함이 영화에 잘 녹아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저는 미디어 자본이 관객의 코드를 따를 수밖에 없음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즉, 관객의 욕구에 반응을 해야 영화가 성공하고, 이를 반대로 말하면 우리 안에 내재한 의식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잔인함에 점점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왜 잔인한 영상과 내용을 욕하면서도 보게 되는가

우리가 이렇게 자극적인 영상과 액션에 호응하는 건 우리 안에 내재된 분노와 폭력성의 대리만족 때문이라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얼마나 분노와 폭력성에 매몰되어 있는지 알 수 있지요(사실 잔인함뿐 아니라 갈수록 선정적으로 변하는 영상미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신호 앞에서 3초를 못 기다리고 경적을 울려대며 욕을 합니다. 어깨만 부딪쳐도 죽일 듯이 쳐다보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아이들은 욕이 안 섞이면 대화가 안 되고, 새벽녁 도심을 가보면 술에 취해 여기저기서 싸움이 일어나곤 합니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익명성에 자신을 숨기며 마구 악플을 달며 자신을 달래지요.

즉, 이러한 우리 안에 내재된 분노와 폭력성의 대리만족 욕구와 미디어 자본의 확장에 따른 향상된 영상미와 액션이 잘 부응하고 있는 것이 지금 영화 흥행의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근 잔인함이 잘 물들어 있는 한국 영화의 흥행이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입니다.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 먼저 치유해야

아저씨 스틸컷

▲ 아저씨 스틸컷 ⓒ 오퍼스 픽쳐스


저는 우리가 이렇게 된 데에 여러 원인이 있다고 보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이유로 전쟁경험,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 및 살해 경험, 양극화에 따른 무기력감 및 상실감 등을 들고 싶습니다. 어느 것 하나 결코 쉬운 얘기가 아니지요. 또 매우 장기간에 걸쳐 눈에 보이지 않게 내면화되는 것들입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이를 인정하고 나가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 트라우마를 온전히 치유하지 못하고는 결코 하나될 수 없을 것입니다. 늘 뭐든지 공격적으로 하게 되겠지요. 싸움도 공격적으로, 공부도 공격적으로 심지어 종교에서의 선교마저도 공격적으로.

또 지금도 계속되는 억압 기제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런 잔인함이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 되는 것이지요. 마음껏 자기 소리를 낼 수 있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요즘 우리는 오히려 더 후퇴한 모습을 갖고 있지는 않나 싶은 걱정마저 듭니다.

두 딸을 가진 아빠의 마음은 늘 그렇습니다. 기왕이면 좀 더 좋은 세상, 행복한 세상에서 두 딸아이를 살게 하고 싶지요. 그러니 잔인함이 스며든 영화를 보면 늘 안타까운 것입니다.

갈수록 영상과 액션이 발달해져서 남자인 제가 봐도 섬뜩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독특한 역사적 상처의 경험을 치유하고, 지금도 어디선가 계속되는 억압기제를 잘 찾아내어 풀어갈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란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라이프]하늘바람몰이(http://kkuks81.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저씨 악마를 보았다 잔인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