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의자 X> 포스터

영화 <용의자 X> 포스터 ⓒ K&엔터테인먼트

성공한 원작을 각색한 영화는 사람들을 기대에 부풀게 한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오가는 수많은 추측과 기대가 영화의 막이 오르기 전까지도 계속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용의자X의 헌신>이 가진 탄탄하고 치밀한 구성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이 영화 <용의자X>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비교해보며 영화를 관람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며 생각의 얼개를 정리하려 했다. 나아가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용의자X의 헌신>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석고(류승범 분)의 안타까운 눈물이 스크린 화면을 가득 메우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 모든 생각이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예상하지 못했고, 정확한 수신자가 없는 '연애편지'를 받은 기분에 어지러운 상태가 한동안 계속됐다. 영화 <용의자X>는 내 기대를 벗어난 지점에서 감성의 영역을 건드리고 있었다.

'숭고한 사랑'이라는 화두 던진 <용의자 X>

 당신은 석고의 행동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가.

당신은 석고의 행동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가. ⓒ K&엔터테인먼트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사건의 진상을 감추려는 이와 들춰내려는 이의 두뇌싸움이 시작된다. 천재 수학자 석고와 뛰어난 관찰력·수사 능력을 지닌 형사 민범(조진웅 분)은 이 두뇌 싸움의 출발점인 동시에 종착점이다.

민범의 추리력으로 석고가 계획한 사건의 전모는 밝혀지고, 관객들은 모든 정황을 파악하게 된다. 정황의 핵심은 석고가 옆집에 사는 화선(이요원 분)의 살인죄를 스스로 덮어쓰기 위해 다른 살인을 계획했다는 것. 이로써 영화 속 사건은 종결된다. 하지만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어떻게'에 대한 답은 영화 속에서 이미 나왔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왜'에 대한 궁금증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단지 옆집 사람에 불과했던 석고가 무엇 때문에 화선을 도우려했는지, 다른 살인을 계획하는 것이 석고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길임을 알고 있음에도 왜 그는 묵묵히 그 길에 걸어들어갔는지, 관객은 영화가 끝이 난 후에야 이에 대한 답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질문의 끝에는 화선에 대한 석고의 숭고한 사랑이 있었고, 민범이 그토록 찾고자 했던 완벽유일의 단서는 화선이었다.

하지만, 당신은 석고의 행동을 완벽히 이해할 수 있는가. 석고가 절망에 허덕이고 있을 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가 화선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것을 내놓고 또다른 절망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일까. 이 모든 것이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설명 가능한 것일까.

원작의 치밀함은 기대하기 힘들지만...

 만약 당신이 소설 <용의자 X이 헌신>에서 느꼈던 치밀한 공방과 긴박하게 진행되는 플롯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소설 <용의자 X이 헌신>에서 느꼈던 치밀한 공방과 긴박하게 진행되는 플롯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 K&엔터테인먼트


대개 미스터리물의 마무리는 '개연성 있는 사건 전개'와 '합리적인 해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용의자 X>는 이성적 판단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을 영화 끝자락에 내놓으며 현재진행형의 질문을 남긴다.

많은 이들이 석고의 숭고한 사랑에 안타까움을 표했다면, 그것은 영화의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심정과 동일하다. 어쩌면 감독은 그것을 말하기 위해 영화 <용의자X>를 내놨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는 수학의 아름다움과 같은 본질적 아름다움이 있다"는 석고의 말처럼 인간의 삶에는 구체적인 설명이 불가능하고, 조건이 붙지 않는 숭고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 <용의자X>는 소설 <용의자X의 헌신>과의 비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만약 당신이 소설 <용의자 X이 헌신>에서 느꼈던 치밀한 공방과 긴박하게 진행되는 플롯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용의자 X>는 독자가 소설에서 지레짐작 넘어갈 수 있는 것들, 미처 드러나지 못한 감정의 영역을 제대로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미묘한 시선과 감정선은 감독의 구성력과 배우의 섬세한 연기를 통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책장을 넘기며 머릿속에 그렸던 장면들은 스크린을 통해 살아 숨쉬고, 종이에 새겨졌던 차가운 공기는 영화를 통해 새롭게 감지된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남겨진 잔상들은 아련하게 당신 주변을 맴돌 것이다.

<용의자X> 방은진 류승범 이요원 조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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