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4강에 진출하고 '배구여제' 김연경(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이 터키리그를 주름 잡으면서 여자배구의 인기는 점점 높아졌다. 이에 배구인들은 하루 빨리 여자부에 7번째 구단을 창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이주아(흥국생명)와 박은진, 박해민, 고의정(이상 KGC인삼공사), 정지윤(현대건설 힐스테이트), 문지윤(GS칼텍스 KIXX) 등 좋은 신입생이 쏟아져 나온 2017년이야말로 7구단 창단의 적기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이 광주를 연고로 여자부의 7번째 구단을 창단하겠다고 한국배구연맹에 창단의향서를 제출한 시기는 2021년 3월이었다. 만약 많은 배구인들과 배구팬들의 바람대로 7구단이 2017년에 창단됐다면 2017, 2018년의 우수한 인재들을 데려간 신생구단은 6번째 구단 IBK 기업은행 알토스처럼 빠른 시간에 신흥강호로 자리 잡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에도 사정이 있었고 창단시기는 기대보다 4년 늦은 2021년이 됐다.

2021-2022 시즌 처음으로 V리그에 참가한 AI페퍼스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시즌이 조기 종료될 때까지 31경기에서 3승 28패로 6위 흥국생명에게 승점 20점이 뒤진 독보적인 최하위를 기록했다. 사실 AI페퍼스는 이번 시즌에도 눈에 띄는 확실한 전력보강은 없었다. 그럼에도 페퍼저축은행의 김형실 감독은 이번 시즌 목표를 정규리그 10승으로 잡으며 또 한 번의 '성장'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많은 숙제와 약점 남겼던 페퍼스의 첫 시즌
 
 이현은 페퍼저축은행으로 이적한 첫 시즌 팬투표를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이현은 페퍼저축은행으로 이적한 첫 시즌 팬투표를 통해 데뷔 후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 한국배구연맹

 
"정규리그 5승". AI페퍼스의 초대감독으로 선임된 김형실 감독이 지난 시즌을 앞두고 밝혔던 첫 시즌의 목표였다. 사실 보호선수 외 특별지명 선수와 신인선수들로 간신히 선수단을 꾸리며 연습경기를 통해 '실업배구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AI페퍼스였기에 정규리그 5승은 꽤나 당돌한 목표로 보였던 게 사실이다. 기존구단들은 막내구단의 리그적응을 위해 승리를 선물할 정도로 무른 팀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AI페퍼스는 정규리그 31경기에서 3승 28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만약 리그가 조기종료 되지 않고 정상적으로 36경기를 모두 치렀더라고 플레이오프에 올라간 기존구단이 주전들을 대거 빼지 않는 이상 AI페퍼스가 잔여 5경기에서 2승을 추가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AI페퍼스의 2021-2022 시즌은 신생구단의 미숙함과 한계를 뼈저리게 깨달은 시즌이었던 셈이다.

실제로 AI페퍼스는 지난 시즌 기존 팀들로부터 영입한 이한비와 최가은, 이현 세터, FA로 영입한 하혜진이 붙박이 주전 선수로 활약했다. 이한비와 함께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로 활약했던 박경현도 현대건설과 실업팀 대구시청에서 6년간 활약했던 선수였고 주전 리베로 문슬기 역시 3곳의 실업팀을 거쳤던 '중고신인'이었다. 2021년 9월 30일 창단식 후 20일 만에 V리그가 개막했으니 AI페퍼스에게는 조직력을 다질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AI페퍼스는 2021년 11월 9일 분위기가 최악이었던 기업은행과의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창단 첫 승을 따냈지만 이후 2, 3라운드 경기를 모두 패하는 등 시즌 중반 17연패의 깊은 수렁에 빠졌다. 4라운드에서 또 다시 기업은행을 상대로 연패를 끊은 AI페퍼스는 지난 2월 11일 흥국생명을 3-1로 꺾고 시즌 3번째 승리를 따냈다. 결과적으로 지난 시즌 AI페퍼스는 상위 4개 팀을 상대로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물론 AI페퍼스로의 이적이 새로운 기회가 된 선수들도 있었다. 특히 흥국생명 시절 이재영(PAOK 테살로니키)과 김미연에 밀려 출전경기가 많지 않았던 이한비는 AI페퍼스 이적 후 팀의 주장을 맡아 31경기에 출전해 데뷔 후 가장 많은 262득점을 올렸다. 이는 외국인 선수 바르가 엘리자벳 이네(인삼공사, 598점)에 이어 팀 내 득점 2위 기록이었다. 주전 세터로 활약한 이현은 프로 데뷔 후 최초로 팬투표에 의해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이고은-리드-어르헝 합류, 10승 목표 이룰까
 
 V리그 3수 끝에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리드는 이번 시즌 AI페퍼스의 주득점원으로 활약해 줘야 한다.

V리그 3수 끝에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은 리드는 이번 시즌 AI페퍼스의 주득점원으로 활약해 줘야 한다. ⓒ 한국배구연맹

 
이번 시즌 AI페퍼스의 최대목표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설펐던 막내구단의 이미지를 지우는 것이다. 이번 시즌에도 언니 구단들에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훗날 대형 FA를 영입하거나 '김연경급' 거물 신인을 지명할 때까지 계속 여자부의 '승점자판기' 신세를 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번 시즌 목표를 지난 시즌보다 2배나 많은 10승으로 잡은 김형실 감독은 비시즌 동안 착실하게 팀의 약점을 보강했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배구에서는 세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시즌 경험이 부족한 세터들로 힘든 시즌을 치렀던 AI페퍼스는 FA시장에서 3년 총액 9억 9000만 원을 투자해 프로에서 9시즌을 보낸 중견세터 이고은을 영입했다. 이고은 세터는 신장(170cm)이 작아 대표팀에서는 번번이 탈락했지만 빠른 토스워크와 동 포지션 최고의 수비력을 갖추고 있어 경험이 적은 AI페퍼스의 새로운 리더로 활약할 전망이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AI페퍼스는 189cm의 신장을 가진 미국 출신의 아포짓 스파이커 니아 리드를 지명했다. 터키와 프랑스, 브라질리그에서 활약했던 리드는 2020-2021 시즌부터 꾸준히 V리그에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시다가 3번째 도전 만에 전체 1순위로 V리그에 입성했다. 리드가 이번 시즌 1순위 지명 선수로 어떤 기량을 선보일지에 따라 AI페퍼스의 운명도 크게 바뀔 수 있다.

지난 시즌 1순위 신인 지명권으로 박사랑 세터를 선택했던 김형실 감독은 지난 9월5일에 열린 신인 드래프트에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목포여상의 미들블로커 염어르헝의 이름을 호명했다. 몽골출신의 어르헝은 배구를 시작한 지 5년 밖에 되지 않아 아직 기본기가 부족하고 스피드가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195cm로 김연경(192cm)과 양효진(현대건설, 190cm)을 능가하는 신장을 가지고 있어 훗날 성장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선수다.

AI페퍼스는 새 외국인 선수 리드와 FA세터 이고은, 역대 최장신 염어르헝까지 가세했지만 김세인(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이 이고은의 보상선수로 팀을 떠났고 하혜진도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시즌아웃이 유력하다. 이처럼 호재와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AI페퍼스는 그만큼 시즌 성적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AI페퍼스 선수들은 지치지 않는 젊은 에너지를 앞세워 지난 시즌과 달라진 '막내의 패기'를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여자배구 도드람 2022-2023 V리그 여자부 미리보기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