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케테 콜비츠 '아가, 봄이 왔다' 전시 일부.

포도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케테 콜비츠 '아가, 봄이 왔다' 전시 일부. ⓒ 이선필

 
'너 그 소문 들었어?'

전시관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문구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각종 소문들로 이루어진 문장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고, 세계 근현대사의 비극들이 여러 모니터를 통해 영상으로 어지럽게 흘러나온다. 이 모든 건 '혐오'와 관련 있는 작품들이다.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에 위치한 포도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두 전시는 우리 사회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 만연한 온갖 혐오 현상을 주목하고, 하층민과 노동자 계급을 대변한 여성 작가를 조망하고 있다. 

제1, 제2 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너와 내가 만든 세상'은 단순한 혐오 양상만 시각적으로 전시하고 끝나지 않는다. 전시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 성별, 계급, 나이 등 사실상 문화 전반에 퍼져 있는 혐오 행위가 곧 우리 자신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암시한다. 어제의 가해자가 내일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고, 그 반대 또한 비일비재하다.

벽에 난 작은 구멍을 들여다 보면 개인 간 나눴던 뒷말, 매스컴에서 숱하게 퍼뜨려 온 불완전한 사실들, 역사적으로 거짓으로 판명 난 특정 인종과 민족에 대한 편견들이 적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제 새벽 또 우물에 독을 풀던 그들이 현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같은 문장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관동대지진 때 벌어진 조선인 학살 사건을 떠오르게 하고, "그들은 모두 간첩이다" 류의 문장에선 수십 년간 한국 및 여러 국가를 비극으로 몰아넣은 레드 콤플렉스를 상기시킨다. 

이같은 '소문의 벽'이라는 작품을 지나면 '삐뚤어진 공감'이라는 미디어 아트를 만나게 된다. 한쪽 벽에 다가서면 나의 온몸이 온갖 혐오 발언으로 채워지는 이색적인 시각 경험을 할 수 있다. 다민족 혹은 다문화 국가, 식민지 문화를 만들어 온 국가에서 주로 등장했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들이다. 은연 중에 동조하거나 공감을 표했던 익숙한 말들을 발견하는 순간 누군가는 등골이 서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패닉 부스'라는 공간에 들어서면 감상자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거울을 향해 펼쳐지는 영상에 놀랄 것이다. 전쟁과 학살, 탄압의 역사적 순간을 기록한 것들이다. 그리고 전시는 '매달린 사람들', '기억의 서랍'으로 이어진다. 마네킹에 옷을 입힌 채 천장에 매단 오브제를 유심히 보다 보면 익숙함과 기괴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강애란, 권용주, 장 샤오강, 쿠와쿠보 료타 등 한중일 중진 작가의 결기가 돋보인다.
  
1층 전시실을 뒤로 하고 2층으로 오르면 우리 눈에 익숙한 작가의 얼굴이 보인다. '아가, 봄이 왔다'라는 제목으로 케테 콜비츠의 여러 작품이 전시돼 있다. 판화 32점과 조각 1점 등 총 33점의 작품들은 총 다섯 개의 소주제로 나뉘어 있는데 노동자 계급의 고통과 고충을 면밀히 관찰하고, 세계 1차 대전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어낸 작가의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포도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너와 내가 만든 세상' 전시 일부.

포도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너와 내가 만든 세상' 전시 일부. ⓒ 이선필

  
 포도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너와 내가 만든 세상' 전시 일부.

포도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너와 내가 만든 세상' 전시 일부. ⓒ 이선필

 
특히 이 케테 콜비츠 전시엔 영화 <레토>로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본인의 자전적 경험을 다룬 다큐멘터리 <로그 인 벨지움>을 직접 연출한 배우 유태오가 오디오 도슨트로 참여해 눈길을 끈다. 깊고 묵직한 유태오의 목소리를 통해 듣는 작품 해설은 이 전시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참고로 오는 3일 포도뮤지엄에선 현악 4중주 콰르텟인 라운드 테이블의 공연과 이진숙 미술 평론가, 장일범 음악평론가의 해설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다. 유태오 또한 깜작 게스트로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너와 내가 만든 세상'과 케테 콜비츠 전시는 2022년 3월 7일까지 진행된다. 
포도뮤지엄 제주 유태오 케테 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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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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