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부터 2013년 6월까지 7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UFC 미들급 챔피언은 벨트의 주인공을 따로 찾을 필요가 없었다. 무려 2457일 동안 챔피언 벨트를 사수했던 '스파이더' 앤더슨 실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바는 리치 프랭클린을 꺾고 5대 미들급 챔피언에 오른 후 총 10번의 방어전을 성공하면서 미들급을 완전히 평정했다. 실바의 독재시대를 끝낸 크리스 와이드먼 역시 900일 가까이 타이틀을 지키며 3차 방어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무결점 챔피언'으로 평가받으며 실바 못지않은 독주가 예상되던 와이드먼이 2015년 12월 루크 락홀드에게 덜미를 잡힌 이후 미들급은 확실한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가 됐다. 락홀드를 꺾고 챔피언에 오른 '미들급의 터줏대감' 마이클 비스핑은 웰터급에서 올라온 조르주 생 피에르에게 무너졌고 1990년생의 젊은 챔피언 로버트 휘태커 역시 700일 가까이 벨트를 소유하면서 타이틀전을 단 두 번밖에 치르지 못했다.

하지만 작년 10월 '미들급의 존 존스' 이스라엘 아데산야가 휘태커를 KO로 제압하고 미들급 11대 챔피언에 등극하면서 미들급의 장기집권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무패 챔피언' 아데산야가 가진 능력과 체격조건이 워낙 탁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는 8일 미국 네바다주 파라다이스의 T-모바일 아레나에서 열리는 UFC248 메인이벤트에서 아데산야와 격돌하는 '불혹의 도전자' 요엘 로메로의 생각은 다르다.
 
 더블 타이틀전이 열리는 UFC248 공식 포스터

더블 타이틀전이 열리는 UFC248 공식 포스터 ⓒ UFC.com

 
금지약물 적발로 명예 훼손된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출신 레슬러

상대를 붙잡고 그라운드로 끌고 가 상위 포지션을 점령하면 매우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 종합격투기의 특성상 레슬링은 '웰라운드'를 추구하는 모든 파이터가 갖춰야 할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따라서 미 대학 레슬링 올스타(올아메리칸) 출신 파이터들은 UFC에서 확실한 기본기를 갖춘 선수로 평가받고 다니엘 코미어나 댄 헨더슨처럼 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는 파이터는 UFC와 언론에서 엘리트 선수로 대우해준다.

하지만 쿠바 출신의 로메로에게 올아메리칸이나 올림픽 출전 따위(?)는 전혀 대단한 실적이 아니다. 쿠바 레슬링 자유형 -85kg급 대표 선수로 수년 간 활약했던 로메로는 레슬링 월드컵과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은메달에 빛나는 세계적인 레슬러 출신이기 때문이다. 미 대학레슬링(NCAA) 경력만 있어도 UFC에서 엘리트 레슬러 대우를 해주는 것을 고려하면 로메로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특급 레슬러'인 셈이다.

2007년 독일로 망명한 로메로는 2009년 독일의 중소단체를 통해 종합격투기에 뛰어들었다. 화려한 레슬링 경력을 보면 그라운드에서 강세를 보이는 그래플러 타입의 선수가 될 거 같았지만 로메로는 종합 격투기 데뷔 후 4연속 KO 승리를 거두며 의외로 타격에서 높은 소질을 과시했다. 로메로는 2011년 스트라이크포스에 진출해 하파엘 카발칸테에게 생애 첫 패배를 당했지만 이는 오히려 로메로가 더욱 강한 파이터로 각성하는 계기가 됐다.

2013년 UFC에 입성한 로메로는 패배를 모르는 사나이로 승승장구했다. 클리포트 스탁스와의 옥타곤 데뷔전에서 멋진 플라잉 니킥으로 승리를 거둔 로메로는 로니 막스와 데릭 브론슨, 브래드 타바레스, 팀 케네디, 료토 마치다를 차례로 꺾으며 단숨에 강자 대열에 합류했다. 2015년 12월에는 '재야의 강자'로 꼽히던 호나우도 '자카레' 소우자까지 판정으로 꺾으며 타이틀 전선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2016년 1월 로메로는 금지약물 사용이 적발되면서 어렵게 쌓아놓은 경력에 커다란 흠집이 생겼다. 로메로는 UFC에서 금지하고 있는 성장 호르몬 성분 포함 여부가 표시되지 않았던 단백질 보충제를 모르고 사용하다가 도핑 테스트에 적발됐다. 결국 이 부분이 정상 참작되면서 로메로의 징계 기간은 2년에서 6개월로 줄었지만 금지약물 사용 경력은 아직도 많은 격투팬들이 로메로를 진정한 강자로 인정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상위 랭커 부상으로 찾아온 기회, 상대는 리치 203cm의 아데산야

6개월의 징계기간을 끝낸 로메로는 2016년 11월 앤더슨 실바를 2번이나 꺾었던 전 챔피언 와이드먼과 격돌했다. 2라운드까지 팽팽하던 경기는 3라운드 시작과 함께 강력한 플라이 니킥을 적중시킨 로메로의 KO승으로 끝났고 로메로는 UFC 미들급 랭킹 1위에 올라갔다. 하지만 당시 챔피언이었던 비스핑은 로메로 대신 GSP와의 타이틀전을 고집했고 결국 로메로는 2017년 7월 호주의 젊은 강자 휘태커와 잠정 타이틀전을 치렀다.

로메로는 휘태커와의 잠정 타이틀전에서 판정으로 패했지만 5라운드까지 접전을 벌이며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 보너스를 챙겼다. 로메로는 2018년 2월 락홀드와의 잠정 타이틀전에서 체중을 맞추지 못해 감점을 당했음에도 락홀드를 3라운드 KO로 꺾는 위력을 발휘했다. 로메로는 4개월 후 휘태커와의 재대결에서도 2경기 연속 체중을 맞추지 못했지만 휘태커를 KO 직전까지 몰고 가는 등 명승부를 펼치며 아쉬운 1-2 판정패를 당했다. 

로메로는 작년 8월 파울로 코스타와의 경기에서도 난타전 끝에 판정으로 패하며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연패의 늪에 빠졌다. 만으로 40세를 훌쩍 넘긴 많은 나이에 연패에 빠진 데다가 두 번의 계체 실패 전력까지. 로메로는 사실상 타이틀 전선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로메로에게 기회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8일 1차 방어전을 치르는 새 챔피언 아데산야의 상대로 로메로가 낙점된 것이다.

현재 미들급 구도는 랭킹 1위 휘태커가 직전 경기에서 아데산야에게 KO로 무너졌고 랭킹 2위 코스타는 이두근 부상으로 상반기 복귀가 쉽지 않다. 따라서 3위였던 로메로에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동안 로메로를 상대했던 미들급의 정상급 선수들은 로메로전 이후 급심한 슬럼프에 빠졌거나(락홀드) 부상에 시달렸다(휘태커, 코스타). 아데산야 역시 승패를 떠나 '로메로의 저주'에 시달릴지 격투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UFC 248 코메인이벤트에서는 UFC 최초의 동아시아 출신 챔피언 장웨일리와 한 때 스트로급의 '여제'로 군림하던 요안나 예드제칙의 여성 스트로급 타이틀전이 열린다. 작년 8월 제시카 안드라데를 42초 KO로 꺾고 챔피언에 오른 장웨일리가 격투팬들에게 진정한 여성 스트로급의 최강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스트로급의 지배자로 한 시대를 평정했던 예드제칙을 반드시 꺾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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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UFC 248 미들급 타이틀전 요엘 로메로 이스라엘 아데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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