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 본선 경기에 참여하고 있는 우루과이의 루이스 수아레스

러시아 월드컵 본선 경기에 참여하고 있는 우루과이의 루이스 수아레스 ⓒ 연합뉴스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치르면서 진행되는 경기 결과에 따라 새롭게 주목해야 할 점이 떠오르고 있다. 이전까지 월드컵에서 상위권을 독식했던 팀들은 대개 월드컵 우승을 경험한 7팀(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프랑스, 스페인)이나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는 못하더라도 꾸준히 8강이나 4강에 들었던 팀들이 많았다.

물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축구공은 둥글고, 공이 어디로 굴러갈지는 알 수 없다. 조별리그를 무난하게 통과할 줄 알았던 팀들이 예상 외 변수가 발생하여 탈락하는 경우가 있고, 심지어 디펜딩 챔피언이 조별리그 3경기만 치르고 짐을 싸기도 한다.

지난 22일(이하 한국 시각)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조별리그 D조 2차전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의 경기도 그랬다. D조의 다크호스로 예상되었던 크로아티아가 월드컵 우승 2회 이력에 빛나는 남아메리카의 강팀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3점 차 대승을 거둔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이번 월드컵에서 주목해야 할 요소들이 몇 가지 눈에 띈다. 우선 전통적인 강호들이 예상 외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동유럽권에서 열리는 월드컵이라는 점 때문에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출전한 팀들이 상대적으로 부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자력 16강 진출 불가능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본선에 17번 출전하여 도합 우승 2회(1978, 1986)와 준우승 3회(1930, 1990, 2014)를 기록하며 남아메리카에서 브라질(우승 5회, 준우승 2회) 다음으로 월드컵 성적이 좋은 팀이다. 최근 성적만 봐도 이웃 나라 브라질에서 열렸던 2014년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던 이력이 있다.

아르헨티나는 디에고 마라도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리오넬 메시, 곤살로 이과인 등 슈퍼 스타들을 많이 배출했고, 그들의 맹활약에 힘입어 월드컵 본선에 꾸준히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올린 편이었다. 다만 우승이나 준우승을 할 때를 제외하면 8강전에서 고배를 마실 때가 많았다.

아르헨티나가 마지막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던 마지막 시기는 2002년 대한민국/일본 월드컵이었다. 첫 경기에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승리하며 깔끔하게 출발하는 듯 했던 아르헨티나는 2차전에서 잉글랜드에게 0-1로 패하며 먹구름이 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는 한 수 아래였던 3차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간신히 1-1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자력 16강이 좌절됐다.

이번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아직까지 승리가 없다. 1차전에서 월드컵 첫 출전국인 아이슬란드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기록했으며, 크로아티아를 상대로는 득점 없이 패했다. 크로아티아와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일본과 함께 H조에 배정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아르헨티나가 3전 전승 조 1위, 크로아티아가 2승 1패 조 2위로 리그를 통과했다.

1998년에 월드컵에 첫 출전했던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당시에는 아르헨티나가 1-0 승리를 거뒀다.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던 아르헨티나는 데이비드 베컴이 퇴장당한 잉글랜드와 2-2 무승부(승부차기 진출)를 기록했고, 8강전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에게 1-2로 패했다. 2위 크로아티아는 루마니아에 1-0 승리, 독일에 3-0 승리를 거두고 프랑스에 패한 뒤 네덜란드에 승리하여 3위로 대회를 마쳤다.

그런데 지금은 20년 전과 상황이 바뀌었다. 이미 나이지리아에게 승리한 크로아티아는 아르헨티나에게 승리하면서 남은 경기에 관계없이 16강 진출이 확정됐다. 아이슬란드와의 3차전에서 최소 비기기만 하면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여 C조에서 16강 진출을 확정한 프랑스를 피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아르헨티나는 나이지리아와의 남은 경기를 무조건 이겨야 하고, 이기더라도 자력 16강 진출은 불가능하다. 아이슬란드가 23일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다소 희망이 생기겠지만, 나이지리아가 크로아티아에게 승리하거나 비길 경우 경우의 수가 복잡하다.

남미의 부진과 동유럽의 강세, 지리적 영향?

이번 대회에서는 유독 남아메리카(이하 남미)에서 참가한 팀들이 대부분 힘을 못 쓰고 있다. C조에서 페루가 이미 2패로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되었으며, H조에서 콜롬비아는 일본을 상대하다가 경기 초반부터 퇴장 선수가 발생하여 수적 열세로 패했다. 월드컵 개근에 빛나는 E조의 브라질은 스위스와의 첫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한 뒤, 2차전 코스타리카를 상대로 겨우 이겼다.

예외적으로 A조에 배정된 우루과이만이 2승을 거두며 일찌감치 16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우루과이는 월드컵 초창기 시절에는 2번이나 우승한 강국이었지만, 이후 시대가 흐르면서 조별리그 통과나 본선 참가를 장담할 수는 없는 실력권이라는 점에서 확실한 지표라고 볼 수만은 없다.

우루과이가 2승을 거둘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최국 러시아와 한 조에 배정되어 강팀들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점이 작용했다. 가장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개최국과의 경기가 3차전으로 배정되면서 그 전에 미리 승점도 충분히 쌓았다. 이집트는 월드컵 출전 자체가 수십 년에 한 번 있는 팀이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애초에 최하위권으로 분류된 팀이었다.

사실 월드컵이 치러지면서 대회를 개최하는 대륙 출신의 팀들이 다소 유리한 요소가 있다. 같은 대륙에서 대회를 치르는 만큼 다른 국가의 팀들에 비해서 시차 적응부터 유리하다. 이번 월드컵은 역사상 최초로 동유럽에서 열렸는데, 이로 인하여 개최국 러시아(A조)를 포함하여 크로아티아(D조), 세르비아(E조) 등 동유럽권 국가들이 대체로 선전했다.

시차도 다르고 기후도 다른 만큼 다른 대륙에서 참가하는 국가의 팀들은 우선 대회가 열리는 곳에 도착하여 현지 기후와 시차에 적응하는 훈련을 거친다. 짧게는 조별리그 3경기, 4강에 진출했을 경우 최대 7경기까지 치르는 점을 감안하면 최대 1개월 정도는 현지 기후와 시차에 적응해야 하는데, 4년에 한 번 열리는 대회에서 시차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유럽에서 열렸던 대회에서는 유럽 팀들이 많이 우승했고, 남미에서 열렸던 대회는 남미 팀들이 많이 우승했던 것이다. 예외 사례는 2번으로, 1958년 스웨덴 대회에서의 브라질과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의 독일이 그들이다.

아시아(대한민국, 일본)에서 열렸던 2002년 대회(브라질 우승)와 아프리카(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렸던 2010년 대회(스페인)의 경우 개최 대륙팀이 우승한 사례가 아직 없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월드컵 본선의 문이 유럽 팀들에 비하면 턱없이 좁기 때문에 그 만큼 수준 높은 축구를 체험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2년 개최국 대한민국이 4위까지 오른 것이 최고 기록이다.

전통 강호들의 부진

기존에 월드컵에서 우승을 경험했던 팀들 중 현재 자력으로 16강 진출을 확정한 팀은 우루과이(A조)와 프랑스(C조) 뿐이다. 스페인(B조)은 모로코와의 3차전에서 최소 비겨야 자력 진출이 가능하고, 아르헨티나(D조)는 남은 경기를 무조건 이기고 크로아티아에게 운명을 맡겨야 한다.

브라질(E조)과 잉글랜드(G조)는 아직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간신히 1승 1무로 조 1위에 오른 브라질은 세르비아를 꺾은 스위스와 승점에서 동률(4점)을 이뤘다. 골득실에서 앞선 1위에 오른 브라질은 세르비아와 비기기만 해도 자력 진출이 가능하다.

튀니지를 상대로 한 잉글랜드는 다소 가능성이 높다. 월드컵 첫 출전 팀인 파나마가 벨기에를 상대로 후반에만 3실점하며 무너졌기 때문에 잉글랜드로서는 자력 16강 진출의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졌다. 이들 6팀과 별개로 4회 우승에 빛나는 이탈리아는 스웨덴과의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면서 아예 본선에 나오지도 못했다.

월드컵에서 한 번 우승을 맛본 팀은 다시 한 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질이 5번이나 우승할 수 있었고, 이탈리아와 독일도 4번이나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독일은 서독 시절 3회 포함). 브라질과 이탈리아 그리고 독일은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우승 이력을 각각 1회씩 추가하며 전통 강호의 이미지를 지키고 있다.

다만 2000년 전후로는 새롭게 우승을 경험하는 팀들도 생겼다. 1998년의 프랑스가 그랬고, 2010년의 스페인이 그랬다. 프랑스는 3번이나 4강전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가 우승과 준우승을 한 번 씩 경험하는 등 도합 5번의 4강 진출 이력을 갖고 있는 강팀이었지만 우승은 1번 뿐이었다.

스페인은 2010년 우승 시절을 제외하면 4강 진출 이력이 없었던 팀이었다. 19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4위를 기록한 적은 있었지만, 이 때의 4위는 1차 조별리그에서 각 조의 1위들이 결승 리그를 치르는 방식이었다. 토너먼트로 4강까지 올라온 적은 2010년이 유일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의 4강 진출 팀들을 분석해보면, 크로아티아와 네덜란드, 터키, 대한민국, 포르투갈 등 상위권에 꾸준히 진입하기 어려웠던 팀들도 다수 있었다. 크로아티아는 월드컵 첫 출전에 3위를 기록한 이후 기복이 이어졌고, 터키는 1954년과 2002년이 월드컵 본선 경험의 전부다.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역시 월드컵 본선에 항상 진출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던 팀들이다. 대한민국의 경우도 월드컵 본선은 9회 연속 진출하고 있지만, 16강에 들었던 적이 단 2번 뿐일 정도로 꾸준히 상위권에 들어가는 데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세계 축구의 평준화

한 시대를 반짝 풍미하고 사라지는 강호들이 있는가 하면, 꾸준히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강호들이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와서는 전통의 강호들도 4강에 꾸준히 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새로운 팀들의 도전을 받고 있다.

물론 월드컵 조별리그 배정 원칙에 있어서 대륙 간 분배 원칙이 있기 때문에 남미의 강호들은 한 조에 배정되지 못한다. 다만 유럽은 참가국이 많기 때문에 간혹 강호들이 한 조에 같이 배정되는 경우가 생기고, 이 때문에 이른바 "죽음의 조"가 발생하기도 한다.

조 배정 및 토너먼트 대진표의 특성상 결승전에서 명승부를 벌일 듯한 강호들이 중간 단계에서 만날 때도 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력이 미약한 팀들이 대진 상대들을 꺾고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는 사례도 더러 있었다. 토너먼트가 단판 승부인 만큼 대한민국이 이탈리아를 꺾기도 하는 등 이변도 연출됐다.

초창기 월드컵은 유럽과 아메리카 팀들에게 참여 폭이 넓은 대회였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팀들은 한때 지역예선에서 같은 조에 모조리 배정되는 등 월드컵 본선의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1982년 스페인 월드컵부터 본선 참가국이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었고,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는 24개국에서 32개국으로 또 늘었다. 2026년 월드컵부터는 본선 참가국이 48개국까지 확대되기 때문에 캐나다와 미국 그리고 멕시코 3국이 분산 개최하게 됐다. 아직까지 본선 티켓 1장을 온전히 받지 못하던 오세아니아(OFC)가 이 때부터 온전한 본선 티켓을 받게 된다.

본선 참가국이 확대되면서 대한민국은 1986년부터 9회 연속 본선 진출을 이뤘고, 1998년 32개국 확대로 인하여 일본과 크로아티아 역시 월드컵 본선에 참가하게 됐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아시아는 월드컵 본선 티켓 4장이 주어지던 시대였고, 현재는 5장이 주어지고 있다.

그러나 2026년 대회부터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월드컵 본선 참가의 문이 크게 넓어지게 된다. 여전히 유럽이 16장으로 가장 많지만, 국가가 많은 아프리카(9장)와 아시아(8장)가 가장 많은 혜택을 보게 된다. 남아메리카(6장)와 북중미카리브해(개최국 3국 포함 6장)보다도 본선 티켓이 더 많아지는 만큼 세계 축구는 앞으로 더 평준화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 평준화는 아직까지 유럽의 새로운 국가들에게 많이 적용되고 있는 추세다. UEFA 챔피언스리그 등을 통한 국가 간 교류가 활발하기 때문에 이뤄지는 평준화로, 아시아나 아프리카가 이 축구 평준화에 따라가기는 아직 버겁다. 물론 예전에 비해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변들은 세계 축구가 평준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지표이기도 하다. 축구를 보다 많은 나라에서 즐길 수 있게 되고, 월드컵에서 다양한 팀들이 등장하는 것은 분명 축구 팬들에게 더 많은 재미 요소를 찾아낼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2018러시아월드컵 아르헨티나충격패 월드컵각종이변 월드컵본선확대 세계축구평준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퍼스널 브랜더/서양사학자/기자/작가/강사/1987.07.24, O/DKU/가톨릭 청년성서모임/지리/교통/야구분석(MLB,KBO)/산업 여러분야/각종 토론회, 전시회/글쓰기/당류/블로거/커피 1잔의 여유를 아는 품격있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