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필성과 마을 선후배들

주인공 필성과 마을 선후배들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이연우 감독의 신작 영화 제목은 <거북이 달린다>입니다. 느리게 기어다니기만 할 뿐 달리는 걸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거북이가 달린다'는 이 역설적인 표현에는 영화의 주제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영화 제목 속 거북이는 바로 충남 어느 마을의 정직당한 형사 조필성(김윤석)과 그의 친구,후배들입니다. 토끼는 탈주범 송기태(정경호)구요.

 

경찰의 수사력을 비웃으며 도피중인 탈주범 송기태가 어느날 내연녀 경주(선우선)를 만나기 위해 마을로 들어온 날, 조필성(김윤석)은 다른 사건 수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정직 중인 형사였습니다.

 

동네에서 만화가게를 하는 5살 연상의 아내(견미리)에게 구박받고 동료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지만 아르바이트로 짭짤한 수익을 챙기던 시골형사는 우연히, 아니 아주 운명적으로 송기태와 한밤 공터에서 마주서게 됩니다.

 

형사신분을 내걸면서까지 잡으려 했던 송기태는 번번이 필성을 조롱하며 사라지고 동료경찰, 서울에서 내려온 수사대 역시 필성을 믿지 않습니다.

 

공권력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한 조롱섞인 비판이 볼거리

 

 필성과 기태의 대결

필성과 기태의 대결 ⓒ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영화는 여러가지 아이러니가 겹쳐져 있어 관객은 잠시 혼란스럽습니다.

 

시골형사 필성은 가족을 아끼지만 정직하지도 정의를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책임회피에 급급한 동료형사들도, 서울에서 내려온 수사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정의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충성할 공권력이 영화 속에서는 없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상식 속 선한 주인공이 이 영화에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반면에 도피 중인 송기태는 잘 생긴 외모에 구체적인 그의 범죄행위는 영화 속에서 드러나지도 않았고 <추격자> 속 살인마 영민(하정우)처럼 잔혹한 악행을 일삼지도 않습니다. 적어도 영화속에선 사랑하는 내연녀 경주와 해외도피가 그의 목적일 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 속의 악인과 송기태는 좀 다르다는 이야기입니다.

 

적군과 아군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이 영화에서 이연우 감독은 필성과 기태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영화의 주제를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존재하나 기능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공권력은 권위의 상징일 수는 있으나 정의의 상징은 될 수 없습니다. <거북이 달린다>는 정의의 사도 만들기를 포기한 대신, 집중적으로 공권력의 무능과 무책임함을 강조합니다.

 

공권력의 무능과 무책임 사례는 영화곳곳에서 보여집니다. 필성과 경찰서 동료들은 범죄를 없애기 위해 수사력을 강화하기보다는 지자체 주관 소싸움대회 개최에 바쁘고 형사반장을 비롯한 동료들은 사건 해결보다 본인의 앞가림에 열중합니다.

 

서울에서 내려온 수사대는 정작 기태를 잡을 생각보다 걸리적 거리는 필성을 검거하는데 열을 올립니다. 물론 주인공 필성도 무능하고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 번, 두 번,세 번 필성은 탈주범 기태를 잡기위해 뒹굴고 손발이 긁히고 피부가 찢어지지만 기태는 그리 만만치 않습니다. 오히려 필성의 어리숙한 수사에 가족도 등을 돌리고 형사들은 필성을 비난하기 바쁩니다.

 

이제 거북이가 나서야할 때인가요. 공권력은 기태의 뒷꽁무니 따라 잡기에도 벅차고 형사직을 떠난 필성에게는 총도 수사권도 없습니다. 그에게 이젠 마을 선후배가 유일한 지원군입니다. 어수룩한 수사와 매복, 민첩하고 대담한 기태 과연 거북이들은 토끼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신인 감독 이연우가 만든 <거북이 달린다>는 올해 최고의 흥행작 <과속스캔들>처럼 제목을 제외하고는 다 재미있는 영화란 표현이 어울릴 듯 합니다. 주, 조연 캐릭터들의 배합이 절묘하고 배우들의 대사 하나하나에 잔재미가 쏠쏠합니다.

 

과장된 슬랩스틱으로 관객을 웃기려고 하기보다는 주제를 담은 상황 하나하나마다 조금씩 배여있는 웃음이 거북하지 않고 재미있습니다. 웃음과 비애 속에 가장의 애환마저 담아내다니 재주가 많은 감독입니다.

 

<추격자>의 가벼운 버전으로 판단하는 관객이나 평론가들이 있을 수 있지만 무능한 공권력을 다룬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다른 영화입니다.

 

공권력이 범인체포보다는 광장 수호에 열중인 요즘, <거북이 달린다>를 보면 그들의 거울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불현듯 이것저것 느껴지는 게 많은 영화란 생각입니다.

2009.06.13 15:48 ⓒ 2009 OhmyNews
거북이 달린다 한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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