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두번째 대국에서 아마 6단인 아자 황 구글 딥마인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왼쪽)가 알파고 대신 흑돌을 놓고 있다.

10일 오후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두번째 대국에서 아마 6단인 아자 황 구글 딥마인드 리서치 사이언티스트(왼쪽)가 알파고 대신 흑돌을 놓고 있다. ⓒ 구글 제공


"이젠 무섭다."

이세돌 9단의 충격적인 2연패에 여기저기 탄식이 새어 나왔다. 2연패라니. 무섭다. 이세돌 9단은 "어제도 충분히 놀랐지만 오늘은 할 말이 없을 정도다"라며 "완패"를 시인했다. 완패라니. 더 무섭다. 소식을 접한 많은 이들이 알파고로 대변되는 '인공지능'에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중국 바둑랭킹 1위 커제 9단은 "알파고가 나는 이길 수 없을 것", "이세돌은 인류대표 자격 없다"며 독설을 날렸다지만, 세상에나. 커제는 1997년생, 우리나이로 19살. 바둑 실력은 몰라도 알파고라는 '인공지능'과 하는 대결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가늠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니, 우리 모두는 그 두려움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는 있는 걸까.
  
물론, 인공지능과의 바둑이 불공정한 게임이라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이 알파고가 정보를 사용하고 데이터를 복기하는 '정보 훈수꾼'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1대 1202의 싸움, 즉 '인간' 이세돌 개인과 CPU 1202대를 탑재한 알파고와의 대국은 애초부터 전세계적인 이목을 끌고 주가를 올려 보기 위한 '구글의 사기극'이란 주장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번 대국을 지켜보는 이들의 뇌 속에는 이미 '인공지능=두려운 존재'라는 정보가 깊숙이 각인됐을 성 싶다. <커지는 '인공지능'에 대한 공포, 사실은…>이란 제목으로 발 빠르게 '팩트체크'를 내놓은 JTBC <뉴스룸>을 보라. 손석희 앵커는 '우리의 직업을 얼마나 컴퓨터에게 내줄 것인가'라는 2013년 영국 옥스포드대에서 나온 보고서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의 발달로 앞으로 20년 안에 미국 702개 직업 중 47%가 사라질 거라고 전망했다"고 전했다. 직업이 일상이고, 직업이 꿈인 누군가에게는 충격에 가까운 전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영상 텍스트를 통해 이미 두려움과 충격, 그리고 이를 극복해 내려는 비전들을 마주한 바 있다. 고전부터 거장의 걸작은 물론 블록버스터와 TV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우리가 상상한 '인공지능'의 면모를 복기할 때다. 

인공지능과 디스토피아

 <매트릭스> 속 빨간약(현실)과 파란약(가상현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매트릭스> 속 빨간약(현실)과 파란약(가상현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인공지능을 다루는 가장 친근하고도 손쉬운 방법. 근미래를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로 설정하는 것이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들이 일종의 슈퍼컴퓨터 연합체를 만들고, 급기야 진화에 진화를 거듭한 끝에 지구와 인류를 지배한다는 설정이다. 주로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인 전망을 바탕으로 액션이나 SF 장르와 결합해 왔다.

디스토피아 영화의 원형으로 꼽히는 프리츠 랑 감독의 <메트로폴리스>(1927)를 시작으로 정말이지 꾸준히도 제작되고 있다. 이미 고전이 되어 버린 SF영화 <트론>(1982)부터 비교적 근작인 조니 뎁 주연의 <트랜센던스> 역시 이러한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들이다. 그 중 대표작으로는 3편까지 나온 것도 모자라 리부트에 리부트를 거듭하고 있는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를 꼽아야 할 것이다.

인간성까지 완벽히 갖진 못했지만,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미래에서 타임슬립 해 현재로 온 터미네이터가 '착한 로봇 VS 나쁜 로봇'의 대결을 거쳐 미래 저항군의 리더와 인류의 미래를 지켜낸다는 이야기 구조는 지금까지도 회자될 수밖에 없는 요인이다. 그 중 1편(1984)에 이어 2편(1991)을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인류의 몰락 요인으로 '핵전쟁의 공포'를 삽입, 디스토피아적인 비전을 분명히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자매로 거듭난 두 워쇼스키 감독의 <매트릭스>(1999) 3부작은 21세기 SF 장르를 변혁한 혁명적인 작품. AI가 지배하는 세상에 숙주처럼 살던 네오가 혁명군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이 3부작은 가상현실을 깨부수고 실제 AI와 전쟁까지 한다. 인공지능을 다룬 최초의 애니메이션인 <공각기동대>의 영향을 받기도 했던 워쇼스키 자매는 그렇게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완성해냈다.

<매트릭스>는 특히 AI가 지배하는 '파란약' 세계 속 인간들의 상황을 장자의 호접몽에 빗대면서, 디스토피아 세계관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 학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기도 했다. 실제 당신이라면, 알파고가  마련해 놓은 안락한 가상현실에서 살겠는가, 비루하고 힘겨운 AI와의 전투에 나서겠는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한 장면.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한 장면. ⓒ 20세기폭스코리아


인공지능을 다룬 작품들은 필히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바로 휴머니티와 이성 말이다. 알파고의 출현 이전, 인공지능은 그렇게 인간성과 이성에 대한 거울상과 성찰 기제로 동원됐다. 끊임없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와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자문 말이다. 더불어 근대 이후 우리를 강력하게 지배해온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인공지능에 대입하는 것도 가능했다.

인공지능을 그린 최고의 걸작이자 시초로 꼽히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속 'HAL 9000' 또한 이러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2019년을 배경으로 한 <블레이드 러너>(1982) 속 복제인간들이나 <아이, 로봇>(2004)과 <채피>(2015)의 로봇 역시 역으로 그런 질문과 성찰을 가능케 하는 존재들이다.

때로는 인간에게 존재의 의미를 묻고, 때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성의 근원을 반영하는 인공지능의 모습을 우리는 영화 속에서 종종 목격해 왔다. AI를 입양아에 비유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에이아이>(2001)는 이러한 인간성에 대한 스필버그식 가족주의와 휴머니즘의 반영이다.

한편으로 인간을 월등히 뛰어넘는 정보처리 속도와 방대한 데이터, 그리고 냉철한 판단력만이 부각되는 인공지능은 소설과 영화로 끊임없이 재생산된 <프랑켄슈타인>과 유사한 조물주와 피조물주의 관계로 은유되기도 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메테우스>(2012) 속 대화는 그래서 꽤나 직설적이다. 2085년, 우주에서 정체모를 생명체와 조우한 인간이 "단지 조물주를 만나서 대답을 듣고 싶었어, 왜 우릴 만들었는지"라고 말하자 인공지능이 "왜 인간은 저를 만들었을까요?"라고 묻는 대화 말이다.

"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위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한 인간을 방관해서는 안 된다. 제2원칙,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 하지만, 제1원칙에 위배되는 경우에는 예외다. 제3원칙, 로봇은 자기자신을 보호해야만 한다. 그러나 1원칙과 2원칙에 위배되는 경우는 예외다."

2016년에 다시 읽는 아시작 아시모프의 1950년대 SF소설 <로봇> 속 '로봇 3원칙'은 그래서 더더욱 인공지능과 로봇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의지와 바람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듯 보인다. 오로지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공지능 로봇 말이다. 피조물을 정확히 통제하려는 창조주의 의지, 그리고 인공지능의 자가발전으로 인해 통제력을 잃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와 근심. 이야말로 인공지능을 그린 작품들의 핵심적인 갈등 요소였다.  

알파고가 우리에게 던지는 매서운 질문 

 드라마 <휴먼스> 속 '휴머노이드'.

드라마 <휴먼스> 속 '휴머노이드'. ⓒ amc


그리고 처음의 질문. 우리는 인공지능에 얼마나 직업을 내주게 될 것인가. 이에 대한 비근한 답은 영국 채널4와 미국 AMC가 함께 만든 드라마 <휴먼스>(2015)가 실마리를 줄 것 같다. 섹스까지도 가능할 만큼 인간과 유사한 '휴머노이드', 즉 인조인간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근 미래.

자동차 5년 할부 가격이면 구입할 수 있는 이 로봇들은 가사도우미나 환경미화원, 헬스 트레이너나 건강 관리사, 심지어 성노동자 등의 '직업'을 가지고 일반인들의 실생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상태다. 누구는 단순한 일꾼으로, 누구는 삶의 동반자로, 누구는 섹스 파트너로 여기며 함께 살아간다. 마치 아이폰의 시리나 영화 <그녀>(2013) 속 OS 체계의 육신화라고 할까.

그러나 언제나 '버그'가 갈등을 만드는 법. 창조주인 과학자가 자신의 아들을 위해 인간의 감정을 지닌 5명의 특별한 '휴머노이드'를 만들었고, 이들이 자신들의 '자유'와 '인생'을 위해 세상 밖으로 탈출을 감행하면서 혼란이 빚어지게 된다.

과학적인 실증과 디테일에 대한 이견들이 존재하겠지만, 아마도 이 8부작 드라마 <휴먼스>는 현재 알파고를 통해 생긴 궁금증을 얼마간 해소해 주는 작품일지 모른다. 인공지능은 과연 어떤 일을 할까, 또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 하는 간접체험으로서 말이다. 물론, 이 <휴먼스> 또한 평범한 한 가족과 휴머노이드들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애에 대한 성찰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알파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구글 딥마인드의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 데미스 하사비스는 11일 "인공지능은 윤리적으로 책임감 있게 사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인간 수준의 AI는 수 십 년 후의 일이겠지만, 지금 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조되고 또 강조해도 모자랄 '윤리'와 '책임'을 언급한 것이다.

로봇 기자가 등장한 지 오래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이 됐던 2019년이 고작 3년 앞으로 다가온 2016년. 알파고를 직업을 뺏어갈 두려운 존재로 대상화 할 것인가. 아니면 윤리와 책임을 가진 근미래의 창조적인 피조물로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는 결국 이제껏 끊임없이 회의하고 성찰했던 근원적인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져나가며 진화와 진보를 믿을 수밖에 없는 운명일 것이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지구상 어느 생명체도 지니지 못한 인간만의 유일한 능력 아니겠는가. 인공지능 알파고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들이 이렇게 매섭다.

알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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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오마이뉴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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