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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하청 노동자
 삼성 하청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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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안 살림에 보태려 삼성반도체 공장에 들어온 그 여고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19세에 입사한 황유미씨는 4년 만에 갑자기 백혈병을 얻어 죽었다. 같이 일하던 이숙영씨도 병으로 죽었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고교 졸업 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정애정씨는 공장 동료였던 남편 고 황민웅씨를 암으로 잃었다. 그리고 한혜경씨는 뇌종양으로 거동도, 말도 제대로 못하며 투병 중이다. 그 외 20여 명이 죽거나 병을 앓고 있다. 기업과 정부의 외면 속에 노동자들은 생명을 잃고 있다.

2007년 3월 6일,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 황유미씨의 죽음을 계기로 삼성반도체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수많은 유해물질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백혈병 등 각종 조혈계 암, 불임, 각종 질병에 걸렸다는 것이다. 사실 반도체 산업은 가장 위험하고 질병 발병률도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아직 기업들은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종류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산업재해 역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대표적인 기업이 삼성이다.

역학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역학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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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유가족 및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은 이들의 병이 산업재해임을 승인받고자 싸웠다. 이들로 인해 국내 최초로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에 대한 역학조사가 진행됐지만, 결론은 흐지부지 묻히고 말았다.

이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은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역학조사가 부실했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반올림은 다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또 고 황유미씨 3주기를 맞아 3월 2일부터 5일까지를 '반도체 산업 산재 사망 노동자 추모 주간'으로 선포하고 심포지엄, 추모 집회 등을 열었다.

유해물질이 많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많은 노동자들이 병을 얻었다.
 유해물질이 많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 많은 노동자들이 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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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증언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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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삼성 본관 앞에서 지낸 추모제에는 유가족들과 시민들, 삼성의 무노조경영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우화인캠 비정규직 노동자들, 해외 전자산업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삼성 본관을 벽처럼 막아선 전경들의 맞은편에 빈소와 영정이 차려졌다.

왼쪽부터 고 이숙영씨, 고 황유미씨, 고 황민웅씨의 영정.
 왼쪽부터 고 이숙영씨, 고 황유미씨, 고 황민웅씨의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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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등 전자산업이 노동자 건강권과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해외 전자산업 노동자들.
 반도체 등 전자산업이 노동자 건강권과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해외 전자산업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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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노동자인 아캉(57)씨는 "1990년대 타이완에는 RCV라는 기업이 20년간 들어와 있었다. 텔레비전, 반도체 산업 중심인데 기업이 나간 후 심각한 토지 오염이 발생했다. 그뿐 아니라 노동자 30여 명이 병으로 죽었다.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렸고, 지금까지도 매년 한두 명씩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RCA를 고소했다. RCA가 저지른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날까 걱정된다. 우리는 한 지구에서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건강을 지키고 자연을 누릴 권리가 있다"라고 발언했다.

한 미국인 노동자는 "삼성이 참 힘 있는 기업인가 보다. 이런 얘기가 퍼질까 두려워 경찰까지 데려오다니. 미국에서 삼성은 엄청난 돈을 들여 '친환경 기업'이라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런 식으로 노동자를 대하면 미국에서도 책임 있는 기업이라 평가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삼성반도체 노동자 한혜경씨는 뇌종양으로 평생 몸을 못 가누는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혜경씨와 어머니.
 삼성반도체 노동자 한혜경씨는 뇌종양으로 평생 몸을 못 가누는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혜경씨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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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1급 판정을 받아 투병 중인 한혜경씨와, 그가 탄 휠체어를 끈 어머니가 무대에 섰다. 허리도 꼿꼿이 못 펴는 한혜경씨 대신, 어머니는 삼성 본관을 향해 절규했다. "보고 계십니까!? 학교 마치자마자 일하겠다고 온 우리 애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보고 있어요?! 전 너무, 너무 화가 납니다..." 한혜경씨가 힘겹게 팔을 뻗어 어머니의 손을 달래듯 만졌다.

정애정씨(고 황민웅씨 부인) 역시 고교 졸업 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
 정애정씨(고 황민웅씨 부인) 역시 고교 졸업 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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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정씨의 뺨은 추모제 내내 젖어 있었다. "아직 남편에게 할 말이 없습니다. 해 놓은 게 너무 없어서요... 오늘은 사실 우리 애 여덟 살 생일이에요. 뭐라 해야 할지...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 피해 노동자들, 다 가족 같아요. 유미씨가 동생 같고, 숙영씨는 입사를 같이 한 친구예요. 우리 다 가족이에요... 너무 가슴 아파요. (삼성과) 싸우면서 참 많이 맞고 채였습니다. 방송들이 우리 얘기 보도해준대서 차마 꺼내보지 못하던 남편 유품들 꺼내들고 호소했는데, 방송에 제대로 나오지도 않았어요. 그래도 끝까지 싸울 겁니다. 지금도 노동자들을 개처럼 부리는 삼성이 어디까지 갈지 보겠습니다."

참가자들은 각자 소원을 적은 종이를 불태운 후, 고인들의 영정에 꽃을 바치며 추모제를 마무리했다. 앞으로 '반올림'은 '삼성반도체 백혈병 연쇄사망 산재 촉구 국제 청원' 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삼성에 제대로 된 노조만 있었어도 우리 유미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황상기씨(고 황유미씨 아버지)의 소원은 변함 없이 '민주노조'다.
 "삼성에 제대로 된 노조만 있었어도 우리 유미는 죽지 않았을 것"이라는 황상기씨(고 황유미씨 아버지)의 소원은 변함 없이 '민주노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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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황유미씨 아버지 황상기씨에게 3주기를 맞아 딸에게 하고픈 말을 물었다. 3년째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유미야. 아빠가 너한테 약속한 거 있지. 싸울 거라고, 산재 인정 받을 거라고. 삼성에 민주노조 세울 거라고. 아빠가 꼭 지킬게." 아마 약속을 지키기 전까지 그는 다른 말을 하지 못하리라.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들에게 3월은 여전히 잔인하다.

덧붙이는 글 | 필자 윤성희는 월간 <노동세상> 기자입니다.



태그:#삼성반도체, #산업재해, #노동조합, #노동자건강권,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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