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5 19:43최종 업데이트 24.02.25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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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슬리퍼라도 질질 끌면서 그냥 허물없이 찾아가고 싶은 곳이 우리 동네에 있었으면 좋겠다. 다행히도 마음에 드는 그런 곳이 있었다. 이름도 정겨운 '삼거리 주막'.

사실 몇 번 가 보진 못했다. 솔직히 한 번도 본 적은 없다. 순전히 느낌이고, 동행한 친구들 입이 그리고 주인분의 상냥하고 친절한 목소리와 잔잔히 흐르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추억의 가요가 내게 그렇다고 말해줬을 뿐이다.

며칠 전, 아내 그리고 선배 누나와 함께 그곳을 찾았다. 다시 찾으리라 벼르고 별렀던 곳이라 기분이 좋았다. 과하다 싶게 안주를 시키고, 술을 애지중지 마시는 동안 즐거운 이야기가 오갔다.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점점 부족해진다. 그러니까 뭐든 해보고 또 해보자. ⓒ 김미래/달리


불쑥 아내가 아침마다 일어나기가 힘들다며 최근 부쩍 너무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탄식했다. 나를 대신해 가장 역할까지 떠맡은 아내라 미안한 마음에 은근슬쩍 다른 얘기로 넘기려는데 선배마저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기분이 좋아서 온 자리였는데 분위기가 처지는 듯싶어 시 하나를 꺼내며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다.

"얼마 전에 외운 시인데 한 번 들어 볼래? 제목은 '나이' 김재진 시인의 시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용서할 일보다
용서받을 일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보고 싶은 사람보다
볼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기다리고 있던 슬픔을 순서대로 만나는 것이다
세월은 말을 타고 가고
나이가 든다는 것은 마침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도 이별하게 되는 것이다
 
곧이어 이 시를 외우면서 느낀 감정을 덧붙이려는데 아내가 갑자기 손뼉까지 치며 크게 소리쳤다.

"거봐. 너무 슬퍼. 아, 진짜 우울하다."


당황스러웠다. 분위기를 바꿔보려 외운 시가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말았다. 

"아니, 아니 내 뜻은, 아니 이 시는 말이야, 그러니까 그러지 말자 이거지. 나이 드는 건 인정해야 할 현실에 불과한 거고 나이가 들면 이럴 수 있으니까 미리미리 시간을 잘 써보자 이거지."

아내도 선배도 내 말에 수긍은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분위기는 철학 토크 콘서트가 되고 말았다. 

자신의 처지를 잘 파악하는 사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나이라는 불치병에 걸린 환자 아닌가? 가는 세월을   어찌할 수가 없으니까. 아무리 오래 사는 나무라도 천 년 만 년 살 수 없으니까. 그런데 모두 이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나이 든다는 것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거부 반응을 보인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에는 하루라도 빨리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한 살 한 살 더해지는 나이가 이토록 거북하기만 할까? 스무 살 때도 그랬나? 아니 서른, 마흔… 나는 아마도 쉰 살을 넘어가면서 이랬던 거 같다. 모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여기저기 찾아보니 나와 비슷한 얘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의사들 말로는, 우리 핏줄은 아무리 늦어도 스무 살 정도면 이미 나빠지기 시작하고, 그 나이 즈음해서 뇌세포도 하루 백 만개가 넘게 매일 매일 죽어간다고 한다. 그렇기에 현대의 의학과 과학이 없었다면, 우리의 자연 수명은 기껏해야 39살 정도라는 것이다. 그런데 쉰 살을 넘겼으니,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아지고 깜빡깜빡 자꾸 뭔가를 자주 잊어버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거다. 그럼 쉰 살을 넘게 살았으면 만족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데 왜 나이 앞에만 서면 우리는 이렇게 작아지는 것일까?

(절로 입이 튀어 나오고 미간이 좁혀진다. 이미 기대 수명은 여든을 넘겼고  곧 백 세 시대가 온다는데 39살의 생물학적 자연 수명이라니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긍정적 사고를 강조하는 말 중에 '스스로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늙는다'란 표현이 있다.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중요한 것들에 대한 사색>에서 저자 어슐러 르 귄은 나이가 들면서 이 말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고 했다. 80년을 넘게 살아온 그녀에게 아무리 좋은 뜻에서라도 "오, 선생님은 늙지 않으셨어요"라고 말하는 건 교황에게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도 했다. 

르 귄은 노년은 그 나이에까지 이르는 것, 그러니까 시간의 문제라는 걸 인정하자고 한다. 실제로 르 귄이 보기에 건강한 90대 노인은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지 않고 명료한 정신으로 자신이 얼마나 늙었는지 잘 파악하고 있었다. 르 귄은 늙는다는 것, 즉 나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긍정적 사고도 좋지만, 나이란 현실을 바로보자고 주장한다. 르 귄의 말처럼 나이는 그 나이가 안겨 준 현실에 딱 맞는 삶을 사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는 르 귄의 이 글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르 귄이 문제 삼은 '늙음'이란 현실 문제에 공감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와는 다른, 하지만 어쩌면 노력과는 무관한 어쩔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비슷한, 또 다른 현실을 절실히 인정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바로 내가 가진 '장애'라는 어쩔 수 없는 현실.

나도, 주위의 많은 사람들도 내가 처한 장애라는 현실을 극복하도록 긍정의 힘을 강조했다. 맞는 말이었고, 적잖게 도움도 됐다. 그런데 그 역효과도 만만치가 않았다. 아무리 긍정의 힘이 대단하다 할지라도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긍정의 힘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현실을 무시하진 말자는 것이다. 젊어 보이는 건 분명 좋은 것이다. 하지만 젊어 보이는 것이지 젊은 건 아니다. 르 귄의 말처럼 오히려 냉철하고 명료하게 자기가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늙었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장애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그냥 좋아 보이는 것뿐이다. 그건 장애가 없어졌단 말이 아니다. 그렇기에 힘들더라도 냉철하고 명료하게 내 장애를 파악하고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조금씩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한때는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늘어간 적도 있었지만 시간은 흘러갔다. 자꾸만 기준을 과거로 돌리기만 한다면 위안은커녕 좌절만이 덮칠 것이다..

내가 요즘 절감하는 바 장애도 마찬가지다. 장애를 갖기 전과 비교하면 안 된다. 추억하는 것은 좋지만, 그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왜 이러냐 한탄하고 억울해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나만 손해고 내 몸만 상한다. 

남은 시간 최선을! 

신성우의 '서시'가 나오기 시작했다. 잔잔한 기타 전주가 끊어질 듯 이어지더니, 싫지 않은 마찰음 뒤에 한국 록을 지키려던 분위기 좋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느새 우리 세 사람의 분위기도 처음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아내와 선배에게 번갈아 눈길을 맞추려 애쓰면서 말했다.

"여유까지 부리지 말자는 말은 아니야. 하지만 나태와 여유는 분명 다르잖아. 나이는 현실이란 거고, 현실을 부정하거나 나태로 낭비할 순 없으니까. 어쩌면 이 시는 나이란 현실을 통해 나태와 여유를 착각하지 말라는 은근한 경고일 수도 있어. 여유 있게 살려면 나이 탓만 하지 말고 그만큼 노력도 좀 하라는 뜻으로,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말이야."

아내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내 어깨를 도닥이며 말했다. 

"그래, 맞아. 오, 이거 이거 우리 남편 다시 봐야겠는걸."

머쓱해진 내가 뭐라 하려는데, 선배 누님까지 아내를 거들고 나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이 좋아져 아끼고 아꼈던 막잔으로 다시 건배를 청했다. 
  

나이는 숫자이자 현실이다. 나이를 인정해야 현재를 즐길 수 있다. 장애도 그렇다. ⓒ 김미래/달리


나이는 우주를 지배하는 시간의 흐름일 뿐이다. 우리는 그냥 그 어디쯤 얹혀 있는 것이고 아무리 기를 쓴다 해도, 아무리 용을 쓴다 해도 그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우린 현재와 앞으로 남은 또 다른 현재를 누릴 수 있고, 멋지게 꾸밀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록 시간은 무궁하겠지만, 아쉽게도 우리 몸이란 생명체는 반드시 그 끝이 있다. 

그러니 우리에겐 나태로 낭비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시가 넌지시 말해주듯이 나이가 들면서 잃어가는 것들은 내가 만든 시간으로 새롭게 채워가야 할 것 같다. 죽음을 앞둔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는 건, 이루지 못한 꿈이 아니라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은 자신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이를 탓하지 말고,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남겨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 즐기자. 

말은 쉬운데,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자. 가장 나중에 이별하게 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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