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10 18:40최종 업데이트 24.02.10 18:40
  • 본문듣기
눈이 내린다. 세상에 뭔가가 또 더해지려나 보다. 하나를 더해 2024년을 만든 숫자는 여지없이 내 나이에도 하나를 더해 놨다. 그런데 내 맘속에는 더하기 대신 빼기만이 요란하다. 

눈이라도 맞아볼까, 조심조심 도서관을 나서는데 문득 두 개의 추억이 번개처럼 스쳐 간다. 벌써 재작년이 돼 버린 오마이뉴스에서 누린 18주간 연재의 감동과 기쁨 그리고 눈 내리던 며칠 전의 기억. 갑자기 내 맘속도 더하기로 바뀌었다.


'시력 잃고 알게 된 세상' 연재를 마치며 힘들었다고 핑계 대고 요란스럽게 감사 인사까지 했지만, 언제나 그리웠던 그때가 아니었던가. 조금 뻔뻔할지 몰라도 다시 한번 용기를 내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었다. 그리고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으니 며칠 전 그 이야기로 감히 다시 나서본다.

한 송이 두 송이 기분 좋은 눈꽃을 맞으며 도서관으로 향하던 그날 아침, 갑자기 사나운 일단의 목소리가 그 눈꽃들을 날려 보냈다. 

말다툼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바로 봤는데, 어디서 거짓말이야, 거짓말이..."

나도 몰래 고개가 그 목소리를 좇았다. 시력을 잃은 지 이미 10년이 넘었건만, 여전히 이 버릇은 나아질 줄 모른다. 발걸음을 멈춘 채 보지도 못하는 눈을 껌뻑이는데 좀 전의 그 목소리에 질세라 더욱 앙칼진 목소리가 뒤따랐다.

"도대체 누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 그날 내가 여기서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에요."
  

말다툼 기억이란 건 때론 내가 본 게 아니라 내가 생각한 것일 수도... ⓒ 김미래/달리

 
무슨 일로 아침부터 저렇게 열을 낼까 싶어 귀를 기울이는데 도우미님이 잡은 팔에 힘을 주며 끌어당겼다.

"그냥 가요. 아무래도 주차 문제 같은데,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감정싸움하는 것 같네요."

점점 멀어지면서도 끈질기게 뒤통수를 쫓아오는 그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를 들으면서 걷다 보니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하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는 사람들의 확증 편향이 어떤 때는 기억조차 왜곡한다는 것이었다. 같은 사건을 목격한 목격자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정반대의 진술을 하는 것도 그런 예 중 하나라고 했다. 이젠 희미해진 두 사람의 목소리도 바로 그런 게 아니었나 싶어 맘이 무거웠다.

"에이, 저 두 사람, 그동안 뭔가 쌓인 게 있었나 보네. 아침부터 별것 아닌 걸로 저렇게 열 내는 거 보니까."

씁쓸한 미소를 주고받으며 도서관에 거의 다다를 때는 눈송이가 제법 커져 있었다. 손등으로 받아 보니 살짝 차가운 무게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불현듯 왜곡된 기억이 나쁜 건만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나처럼 중도에 시력을 잃은 사람은 다른 감각 기관이 상실한 시각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마치 보는 것처럼 끊임없이 영상을 만들고 장면을 그리고 있다. 

시력을 잃기 전에도 나는 기억력이 좋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은 그런 소리를 더 자주 듣는다. 그래서 머릿속 영상과 장면을 재현해서 신나게 기억을 풀어갈 때가 많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나를 믿지 못하게 됐다. 아주 생생하게,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는 장면인데, 가만히 따져보니까 그건 내가 시력을 잃은 후의 일이었다. 분명히 볼 수 없었던 장면이 마치 방금 본 것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반대의 경우도 그랬다. 분명 볼 수 있었을 때의 기억이지만, 개연성도 떨어지고 증명할 수도 없는데 장면 장면이 너무도 또렷했다. 만든 기억이 분명한 거 같은데, 마음 한구석에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은 대부분 좋은 것들이었고, 그로 인해 낭패를 본 적도 없었다. 오히려 기분도 좋아지고, 비록 눈물을 흘릴지언정 삶을 아름답다고 느끼게 한 적이 많았다. 얼마 전에 남한산성에서 떠오른 추억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가족 모임이 있어서 남한산성에 갔다.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뭔가 내 볼에 와 닿았다. 차가웠지만 느낌이 좋았다. 혹시 하는 사이 이마에도 콧잔등에도 기분 좋은 차가움이 와 닿았다. 

"눈이 오나 보네?"

몇 년 만에 미국에서 친정을 찾은 사촌 여동생이 내 손을 잡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면서 답했다.

"응. 막 내리기 시작했어."

찻집에서 두 시간 남짓 즐겁게 수다를 떨고 나오는데 눈발이 더 세졌다. 지난번 내린 눈인지 지금 쌓인 눈인지 내 발자국이 제법 크게 뽀드득 소리를 냈다. 문득 머릿속에 아련히 멋진 영상이 펼쳐지면서 슬그머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소나무에 건배를

나는 남한산성을 무척 좋아한다. 대학 졸업을 앞둔 어느 날 진로를 찾지 못한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남한산성 8킬로미터 성곽을 따라 달려 보았다. 좋았다. 마음도 달래고 기분도 나아지고. 하루, 이틀, 매일 달리다 보니 엉뚱하게도 기록에 도전하고 있었다. 심장이 터지도록 빗물처럼 땀을 흘리면서 미친 듯이 달리고 또 달렸다. 한 달쯤 지났을까. 결국 비탈에서 굴러 여기저기 생채기가 난 뒤에야 달리기를 멈췄다.

겨울의 남한산성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눈만 오면 배낭을 짊어진 적도 있었다. 배낭에는 두툼한 방석과 그것을 넣고도 남을 커다란 비닐 주머니, 펄펄 끓는 물을 담은 보온병에 사발면 하나와 종이컵 몇 개 그리고 막걸리 한 병이 늘 함께했다.

지금은 남한산성 성곽이 잘 복원돼서 성곽을 따라 쉽게 걸을 수 있지만, 그때는 달랐다. 특히 남문에서 동문을 지나 북문까지 이르는 길은 성곽도 많이 무너져 있었고, 길이라 할 수 없는 위험한 곳도 제법 있었다. 

그래도 난 주로 눈 쌓인 이 길을 걸었다. 인적도 드물었고, 경치는 물론 운치도 좋았다. 무엇보다 이 길에는 사발면에 막걸리 한 잔이라는 내 나름의 멋부리기와 딱 어울리는 곳이 많았다.

몸에 열도 좀 나고, 뱃속도 출출함을 호소하면 나는 길을 벗어나 배낭을 내려놓았다. 비닐 주머니에 담긴 방석을 깔고 앉아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면이 익는 그 몇 분을 기다리지 못하고 종이컵 한 잔 가득 막걸리를 따른 뒤, 눈 덮인 소나무 숲이나 무너진 성곽에 건배를 청했다. 아, 거의 30년 전의 일인데 지금도 군침이 돌고 가슴이 설렌다.

그곳 길이 험하기는 했지만 주말이나 휴일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대부분은 그냥 길을 따라 나를 지나쳐 갔지만, 가끔 길을 벗어나 내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아무 일 없다는 듯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건네기만 해도 나는 그분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었다. 재빨리 종이컵을 꺼내 막걸리 한 잔을 가득 부었다.

"막걸리 한 잔 하실래요?"

다음 순간 난 훌륭한 젊은이로 불렸고 때론 흥을 아는 보기 드문 멋쟁이가 되어 있었다. 아, 진짜 딱 한 분, 아니 중년의 부부라고 하는 게 맞겠는데, 다른 좋은 자리 다 놔두고 굳이 별로 편하지도 않은 내 등 뒤에 앉아서, 지지리 궁상이고 음주 산행은 절대 안 된다며, 내가 사발면에 막걸리를 다 비울 때까지 계속 혀를 찼다.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리던 곳은 남장대 터를 지나 동문으로 가는 내리막길 근처나  동문을 지나 장경사에서 동장대 터에 이르는 깔딱 고개 근처였다. 어느 날 이 두 장소를 모두 지나쳐 북문까지 간 적이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눈이 엄청 많이 내렸고, 그래서인지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못해 살짝 불안했던 날로 기억한다.

지금은 복원 공사로 완전히 해체됐지만, 그때 북문은 성문 위에 기와 누각까지 제대로 갖추고 있었다. 나는 누각으로 들어가 처마 밑 주춧돌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늦은 만큼 서둘러 막걸리를 따랐다. 늘 그랬듯 건배를 청하려 종이컵을 치켜들고 내가 온 길을 바라봤다. 내 발자국이 어느새 눈에 덮여 희미해지고 있었다.

크고 작은 소나무가 저마다 눈 모자를 쓰고 멋진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정말 말로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요 기쁨이었다. 나는 가장 멋있고, 제일 크고 최고로 당당해 보이는 소나무를 향해 잔을 들어 보이며 평소 하지 않던 윙크까지 해 보였다. 

그리고 막 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놀랍게도 그 나무가 내게 맞장구를 치는 게 아닌가. 커다란 소나무의 가장 높이 뻗은 가지에서 눈덩이가 툭 떨어지면서 살짝 가지가 치켜 올라갔다. 그건 분명 잔을 치켜 올리며 내 건배에 호쾌하게 응하는 멋진 친구의 모습이었다. 나무는 계속 가지를 흔들면서 보석 같은 눈꽃들을 사방으로 날려 보내기까지 했다. 

기억의 왜곡이고, 너만의 착각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때의 환상적이고도 몽환적인 장면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 또렷하게 설레는 느낌으로 남아 있다. 
  

소나무에 건배 진실로 아름다운 나만의 추억은 꼭 진실일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 김미래/달리


나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는 그때의 감동을 사촌 여동생에게 전해 주고 싶었다. 동생이 내 팔을 잡고 주차장까지 함께 오는 동안 남한산성에 관한 찬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제 강점기, 마구 잘려 나가던 우리 소나무를 여기 남한산성 주민들이 힘을 합쳐 지켜낸 역사도 유명하지만, 눈 덮인 소나무가 그려내는 한 폭의 수묵화도 빼놓을 수 없거든."

혹시 내가 미끄러지지나 않을까 조심스럽게 내 팔을 잡고 안내하면서도 여동생은 내 말에 연방 감탄과 맞장구를 쳐 주었다. 하지만 주차장은 너무나 가까웠고, 내 말을 뒷받침하기에 그날의 날씨는 그때와 너무 달랐다. 

"아, 그랬구나. 근데, 오빠, 지금은 나무에 눈도 별로 안 쌓였고, 눈이 녹아서 길이 너무 진창이야. 조심해야 해. 자, 이제 차에 다 왔어."

결국 시각이란 엄청난 놈은 여동생의 눈을 통해, 아름다운 나만의 환상을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현실로 야멸치게 바꿔 버렸다. 눈꽃을 휘날리며 내게 인사하던 그 나무는 그렇게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를 흙과 섞여서 진창이 돼 버린 조금은 지저분한 현실이 차지해 버렸다.

늦은 밤, 비록 왜곡된 나만의 환상일지라도, 모처럼 다시 떠오른 이 소중한 추억을 글로 남기려 자판을 두드리는데 문득 눈 내린 남한산성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눈모자를 쓴 그 소나무에게 다시 건배를 청하고 싶었다. 눈물이 났다. 몸도 살짝 흔들렸다. 창피해서 소리 내지 않으려 입을 앙다무니 몸이 더욱 떨렸다. 왜인지는 몰랐다. 그냥 그 기억과 함께하고, 그 기억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눈물이 나고 몸이 떨렸다. 그런데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 좋았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