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3 12:04최종 업데이트 23.09.1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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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입구 바닥에 설치된 포토라인. 자료사진. ⓒ 연합뉴스

 
<뉴스타파> 허위 인터뷰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 사건의 내막을 좀 아는 사람으로서 어이없고 참담했다. '사실 보도'의 문제점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조국 사태 때도 그랬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때도 그랬다. 단편적인 사실에 눈이 멀어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진실을 호도하는 행태 말이다.
 
주객이 뒤바뀐 김학의 불법 출국 의혹 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를 기억해보라. 1심에서 대부분 무죄로 드러난 윤미향 의원에 대한 마녀사냥은 한심하다 못해 처참했다. 2년 가까이 야당 대표 비리에 집착하는 검찰 수사에 대한 경마식 보도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언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사실 보도'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다. 사실에 대한 해석과 판단이 문제라는 얘기다. 입맛에 맞는 사실의 편집, 맥락 없는 사실의 나열이 문제다. 그리고 희생양 만들기. 이게 심하면 마녀사냥이다. 게다가 그 발원지가 '공신력 있는' 검찰이라면 언론은 '받아쓰기' 태세에 돌입한다. 그게 심하면 '검언유착'이다.
 
취재깨나 한다는 기자들도 종종 저지르는 오류가 있다. 바로 '사실'에 대한 기계적인, 또는 병적인 집착이다. 이른바 팩트 지상주의의 부정적 면이다. 개개의 사실이 어떤 맥락으로 결합하느냐에 따라 사건의 실체가 달라지는데도 말이다.
 
검찰 주장이나 수사내용에 '사실'의 지위를 부여하려면 검증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전까지는 의혹이다. 검찰이 "선거 개입용 허위/조작보도"라고 전제하고 '금전거래'라는 '사실'을 유력한 근거로 내세우자 많은 언론이 경주마처럼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쪽 눈을 가린 채.
 
'대선 개입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린 검찰은 정치권 배후 의혹을 파헤치겠다고 공언했다. "정치공작"이라는 여권의 파상공세에 발을 맞춘 듯한 검찰의 강력한 수사 의지 앞에 해당 보도를 한 언론사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유감을 나타내거나 고개를 숙인다.
 
검찰 프레임과 언론 보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오마이뉴스> 이병한/구영식 기자가 잘 분석했으므로 재론할 필요는 없을 테다. 두 기자의 분석대로, <뉴스타파>에서 보도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와 전국언론노조위원장을 지낸 신학림씨의 대화는 보도를 전제로 한 공식 인터뷰가 아니다. 형식도 내용도 그렇다.
 
기획 인터뷰라고 하기에는 치밀하지 못하다. 인터뷰 방식도 엉성하고 보도 시점도 맞지 않는다. '주제'인 대장동과 관련 없는 사적인 대화나 잡담도 많다. <뉴스타파>의 제작/보도 과정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대선 개입 목적의 정치공작"이라는 주장이 허무개그로 들릴지 모른다.
 
관련 보도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가장 의아했던 것은 신씨와 김씨 간 금전거래에 대한 평가다. 이는 보도 과정과 보도 내용에 대한 의구심과는 별개 문제다. 많은 언론매체와 언론 관련 단체가 취재윤리 또는 언론윤리를 위반했다며 신씨를 비판했다. 심지어 <뉴스타파>까지 이를 수용하면서 사과했다.
 
그런데 신씨에게 언론윤리 위반죄를 물으려면 몇 가지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신씨가 취재와 보도를 하는 언론인 또는 언론사 소속 직원이어야 한다. 둘째, 책 구매 대금이 아니라 인터뷰 대가로 받은 부정한 돈이어야 한다. 셋째, 두 사람의 '거래'가 보도에 영향을 미쳤어야 한다.

증거 없이 단정하거나 추론하는 건 언론의 자세 아니다
 

<뉴스타파>는 최근의 일련의 사태를 "윤석열 정부의 뉴스타파 탄압"으로 규정하고 웹사이트를 통해 "권력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시민들이 만들어준 사회적 자산인 뉴스타파를 지켜내겠습니다"라고 밝혔다. ⓒ 뉴스타파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뉴스타파> 설명을 들어보면 신씨의 신분은 모호하다. 김씨를 만나고(2021년 9월), 인터뷰가 보도됐을 때(2022년 3월) 신씨는 <뉴스타파> 전문위원이었다.
 
7일 <뉴스타파>는 이 사건을 해설하는 보도를 내보내면서 신씨가 자사 소속 직원이 아니라 용역 계약직이었음을 강조했다. 기자 신분도 아니고, 업무도 취재가 아닌 취재지원이었기에 보도나 제작에 관여할 어떠한 권한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비록 취재기자가 아니더라도 언론매체 전문위원이라는 사람이 비리 사건의 주역과 만난 직후 금전거래를 했다는 것 자체가 언론윤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신씨가 김씨를 만났을 때는 아직 대장동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이었다. 김씨는 <뉴스타파> 명함을 가진 신씨를 어떤 식으로든 활용하려 했는지 몰라도, 신씨는 그를 자신의 책을 사줄 잠재적 구매자로 여겼을 개연성이 있다.
 
신씨는 <뉴스타파>와 계약한 용역직원이기에 앞서 출판사 등록을 한 개인사업자이자 작가였다. 현직도 아니고 취재기자도 아닌 사람에게, 더욱이 사업자로서 영리를 추구할 권리를 가진 사람에게, 기자 출신에 언론단체 고위직을 지냈다는 이유로 언론윤리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범죄와 관련된 금전거래라는 증거가 드러났다면 모를까.

둘째, '대가성'은 앞으로 검찰이 밝혀야 할 의혹이지, 현 단계에서 언론이 예단하거나 단죄할 일이 아니다. 두 사람의 금전거래는 사적 영역에 속한다. 거래 대상인 책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7일 구속기간이 만료돼 서울구치소에서 출소한 김씨는 "대화를 몰래 녹음한 데 대해서는 신씨가 사과해야 한다"면서도 금전거래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한국 유력인사들의 혼맥을 파헤친 신씨의 저서 3권을 1억 6500만 원에 구입했다. 권당 5000만 원에 부가세(10%)가 덧붙여진 가격이다.
 
"그분이 언론계에서 굉장히 뛰어난 분이고, 그 책이 그분의 평생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적 작품으로 치면 그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그 책을 샀다."
 
비정상적인 책값을 들어 '검은 거래'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책값이 비싸다고 해서 곧 그것이 허위 인터뷰의 대가라고 여기는 건 무모하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렇게 단정하거나 추론하는 건 언론의 자세가 아니다.
 
신씨의 책 제목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혼맥 지도>. 말 그대로, 정계, 재계, 법조계, 언론계 등 각계 유력인사들의 혼맥을 파헤쳐 정리한 책이다. 세 권짜리로 분량도 방대하고 내용도 풍부하고 깊다. 혼맥 지도들이 커서 여러 겹으로 접어 본문에 삽입했다.
 
신씨는 10여 년에 걸쳐 이 책을 완성했다. 유력인사 집안의 족보 수집은 물론 전국의 묘비를 찾아가 가계도를 확인하는 한편 부고란을 비롯한 경조사 기사를 꼬박꼬박 챙기며 자료를 업데이트했다. 일반인 접근이 차단된 권세가나 재력가 묘지의 경우 감시망을 피해 주변에서 잠복했다가 새벽에 몰래 들어가 휴대전화 불빛으로 비석에 새겨진 명단을 확인했다는 전설적인 일화도 있다.

신씨가 이 책을 펴낸 것은 2021년 7월. 김씨를 만나기 두 달 전이다. 그런데 이 책은 서점에서 팔지 않는다. 과거 신씨는 정식 출판을 제안한 지인에게 "이 책은 특별히 원하는 고객에게만 특별한 가격에 판다"고 말했다.
 
신씨 주변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책에 엄청난 자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일반인은 고개가 갸웃거려지겠지만, 김씨 외에도 언론계 거물급 인사를 비롯해 몇몇 유력인사에게 구매를 타진하면서 억대의 책값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에 앞서 모 재력가가 '할인가'로 5000만 원대에 구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신씨의 혼맥 지도는 영화에도 등장했다. <뉴스타파>가 제작해 2021년 1월 개봉한 영화 <족벌-두 신문 이야기>다. 신씨는 이 영화에 직접 출연해 조선/동아일보 사주 집안의 혼맥을 상세히 설명했다. "한국 사회 부조리의 뿌리에는 혼맥이 있다. 혼맥을 알지 못하면 부정부패의 고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신씨에 따르면, 김씨가 이 책을 두고 "1억이 아니라 10억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지만, 세 권 값이 1억 6500만 원이라는 건 분명 통념과 상식에서 한참 벗어난다. 뭔가 흑막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들 만도 하다.
 
하지만 대가성이 없다면? 비록 일반인에게 위화감을 일으키는 등 부도덕하게 비치는 면이 있지만, 그것이 사적인 거래라면, 즉 검찰 주장과 달리 인터뷰 대가가 아니라면, 무조건 매도할 게 아니라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셋째, 금전거래와 보도의 관련성이다. 보도 당시 신씨는 제보자였다. 만약 그가 제작과 보도에 직접 관여했다면, 이를테면 녹음파일을 <뉴스타파> 소속 기자가 아니라 그가 직접 보도했다면, 아무리 책 판매와 인터뷰가 별개라 해도 취재윤리 위반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뉴스타파>는 자사 전문위원인 신씨를 제보자로 대하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그로부터 넘겨받은 음성파일을 분석해 내보내는 한편 그를 스튜디오에 앉혀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방송을 진행했다.
 
김씨와의 대화를 녹음한 사람은 신씨였지만, 그는 보도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였다. 제보자로서 <뉴스타파>에 녹음파일을 넘겼을 뿐, 제작과 보도 과정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신씨는 당시 보도 직후 인터뷰에서 자신도 어느 정도 관여한 것처럼 주장했는데 이는 자신의 역할과 기여도를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 
 
제보 내용이 보도가치가 있는지, 허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매체의 책임이었다. 신씨가 녹음파일을 통으로 넘겼기 때문이다. 파일 내용을 취사선택해서 보도한 것은 <뉴스타파>이지 신씨가 아니다.

언론이 위축되면 민주주의가 죽는다
 

'김만배 인터뷰 보도 사태'에 대한 현업언론단체 긴급 기자회견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언론노조 회의실에서 방송기자연합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영상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언론윤리 위반 혐의는 모호하다. 책을 산 사람이 불법과 비리로 뒤범벅된 대장동 사건의 주역이라서 문제라는 건지, 책을 판 사람이 <뉴스타파> 전문위원이라서 문제라는 건지. 개인사업자지만 언론매체에 한 발을 걸쳤으니 영리활동을 하면 안 된다는 건지. 사적인 거래로 얽힌 사람과 대화한 녹음파일을 제공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건지. 책값이 거액이라서 문제라는 건지. 이를테면 500만 원이나 100만 원 정도면 괜찮다는 건지.
 
신씨는 제보자로서 약점을 갖고 있었다. 사적인 금전거래가 있었던 점이 찜찜했을 것이고, 몰래 녹음한 데다 당사자 동의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언론에 넘기는 게 불편했을 것이다. 게다가 녹음파일에는 공개하기에 부적절한 사적인 내용이 많았다. 
 
어쨌거나 신씨는 제보자였다. 부주의한 처신을 비판하는 선에서 그쳐야지, 언론윤리 위반이라고 단죄하면서 그것이 사태의 근본 원인인 것처럼 말하는 건 지나치고 모순적이다. 

다만 언론사 기자들과 특별한 금전거래를 했던 김씨의 행태에 비춰보면 거액의 책값에 다른 뜻이 포함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뉴스타파> 보도와 인과관계가 없다면 비판을 하더라도 다른 관점에서 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제보 경위와 시점을 두고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신씨 말로는, 2월 하순 대선후보 토론 방송 때 윤석열 후보의 대장동 관련 발언에 분개해 제보를 결심했다는 건데, 다른 관측도 있기 때문이다. 신씨 주변에서는 그가 정치적으로 '오해'를 살 만한 부적절한 행동을 했던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이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를 지켜볼 필요도 있겠다. 다만 <뉴스타파>와의 연결고리가 없다면 별개 사안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신씨에 대한 의혹과 별개로 <뉴스타파>가 좀 더 당당해지면 좋겠다. 관련 보도가 '기획'이나 '허위' 또는 '공작'이 아니라면 말이다. '본류(보도)'와 '지류(금전거래)'가 뒤엉켜 흙탕물이 생겼던 게 아니라면 말이다.

김씨가 7일 출소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관련 내용에 대한 말을 바꿨다고 해서 허위 인터뷰라고 주장하는 건 무리다. 일부 편집한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김씨 주장의 취지를 왜곡한 게 아니기에 그걸 조작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억지에 가깝다. <뉴스타파> 보도의 핵심인 '수사 무마' 또는 '봐주기 수사' 의혹은 특검 조사에서나 진위가 밝혀지지 않을까 싶다.
 
권력 비판은 언론의 숙명이다. 언론이 위축되면 민주주의가 죽는다. '부주의'나 '실수'를 '범죄'로 몰아붙이며 언론 탄압으로 치닫는 데 대해서는 언론계의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 권력과 금력에 맞서온 <뉴스타파>가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단단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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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배-신학림 대화는 인터뷰가 아니었다  https://omn.kr/25jwr
'김만배 허위 인터뷰'는 검찰의 프레임이다  https://omn.kr/25k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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