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챔피언 자리에 오른 KCC 5일 경기도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 수원 KT 소닉붐과 부산 KCC 이지스의 경기. 이날 경기에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KCC 선수들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 프로농구 챔피언 자리에 오른 KCC 5일 경기도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 수원 KT 소닉붐과 부산 KCC 이지스의 경기. 이날 경기에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KCC 선수들이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슈퍼 5위' 부산 KCC가 마침내 프로농구 정상에 올랐다. 5월 5일 수원KT아레나에서 열린 2023-24 정관장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 4선승제) 5차전에서 KCC는 수원 KT를 88-70으로 완파하며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올 시즌 프로농구 최강팀에 등극했다.
 
KCC의 우승은 2010-11시즌 이후 13년 만이자 통산 6번째다. KCC는 프로농구 최다 우승팀 울산 현대모비스(7회)의 기록을 1회 차이로 바짝 따라붙었다. 또한 KCC는 '정규리그 5위 팀 최초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이라는 진기록도 세웠다.
 
1997년 출범한 프로농구 플레이오프 역사에서 가장 낮은 정규리그 순위로 우승을 차지한 종전 기록은 3위였다. 2000-02시즌 원주 TG(현 원주 DB)를 시작으로, 2008-09시즌과 2010-11시즌 전주 KCC, 2015-16시즌 고양 오리온, 2020-21시즌 안양 정관장까지 3위팀이 총 5번 정상에 올랐다. 1위팀은 14번, 2위팀은 7번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프로농구(WKBL)에서는 2020-21시즌 용인 삼성생명이 4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라 우승한 바 있다. KCC의 우승은 남녀프로농구를 통틀어서 '가장 낮은 시드로 우승을 차지한' 신기록이며, 국내 4대 프로스포츠를 모두 아우르면 프로축구 K리그에서 2007년 5위로 챔프전 우승을 차지한(당시는 6강플레이오프 체제) 포항 스틸러스와 타이 기록이다.
 
KCC는 개막 전부터 라건아, 허웅, 최준용, 송교창, 이승현, 알리제 드숀 존슨 등 초호화멤버들을 구축하며 '슈퍼팀'으로 불릴 만큼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정규리그에서는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조직력 문제로 중위권을 맴돌아야 했다. KCC는 30승 24패를 기록하며 플레이오프 티켓은 따냈지만, 정규리그 우승팀 원주 DB(41승13패)에 11경기 차나 뒤진 5위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에 그치며, 봄농구에서도 우승에 대한 가능성은 희박해보였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들어 뒤늦게 부상 선수들이 복귀하며 '완전체' 전력을 회복했고, 우승과 자존심 회복에 대한 연대감을 바탕으로 개성 강한 스타 선수들이 '원팀'으로 똘똘 뭉치면서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압도적인 개인능력을 갖춘 선수들이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플레이에 눈을 뜨면서 KCC는 비로소 많은 이들이 기대한 슈퍼팀다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KCC는 6강 플레이오프에서 또다른 슈퍼팀으로 거론되던 서울 SK를 3연승으로 가볍게 스윕했다. 4강에서는 정규리그 1위팀 DB마저 3승 1패로 제압하는 이변을 연출하며 5위팀 최초의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성공했다.
 
파이널 상대는 득점왕 파리스 배스와 허훈이 버틴 3위 수원 KT였다. 공교롭게도 KT는 2021년 수원으로 연고지를 이전하기 전까지 부산을 홈으로 하던 구단이었고, 전창진 KCC 감독의 친정팀이기도 했다.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두 인기스타인 허웅과 허훈의 사상 첫 '챔프전 형제 더비'라는 점에서도 여러모로 화제를 모으기 충분했다.
 
KT는 허훈(26.6점, 6어시스트)와 배스(24.4점)의 원투펀치가 시리즈 평균 50점을 합작하며 분전했다. 배스는 챔프전 전경기 더블-더블, 허훈은 2차전부터 4경기 연속 40분 풀타임을 소화하는 투혼으로 비록 패배했지만, 1997-98시즌 부산 기아 소속이던 아버지 허재(영구제명) 이후 역대 프로농구 준우승팀 선수로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KCC의 압도적인' 물량공세'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KCC는 여러 선수들이 고른 득점분포와 로테이션을 바탕으로 체력전에서 우위를 점했다. 수비 압박이 더 높아지는 플레이오프에서 KCC는 평균 90.6점으로 오히려 정규리그(88.6점)보다 더 강해진 화력을 자랑했고, 이긴 경기에서는 1, 2경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4쿼터 이전에 사실상 승부를 결정지었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허웅 '우리가 챔피언' 5일 경기도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 수원 KT 소닉붐과 부산 KCC 이지스의 경기. 이날 경기에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KCC 허웅이 골대 그물을 자르고 있다.

▲ 허웅 '우리가 챔피언' 5일 경기도 서수원칠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 수원 KT 소닉붐과 부산 KCC 이지스의 경기. 이날 경기에서 승리하며 챔피언 자리에 오른 KCC 허웅이 골대 그물을 자르고 있다. ⓒ 연합뉴스

 
형 허웅은 챔프전 5경기 동안 경기당 18.8점, 5.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개인기록에서는 동생에 뒤졌지만 든든한 동료들의 지원을 등에 업고 우승과 플레이오프 MVP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행운을 누렸다.
 
라건아는 SK와의 6강전 3경기에서 평균 19.3점, 11리바운드, DB와의 4강 전 4경기에서 26.3점 14.8리바운드를 올린 데 이어, KT와의 챔프전 5경기에서도 평균 20.2점, 11 리바운드의 더블-더블을 기록하는 꾸준한 활약으로 우승의 최대 수훈갑으로 등극했다. 정규리그에서 다소 노쇠했다는 평가를 플레이오프에서 완전히 뒤집으며 자밀 워니-디드릭 로슨-배스 등 현재 국내 최고의 외국인 선수들마저 압도하는 골밑 장악력이 돋보였다.
 
라건아는 통산 5번째 우승으로 양동근(전 현대모비스·6회), 추승균(전 KCC·5회), 함지훈(현대모비스·5회)에 이어 KBL 최다 우승 2위이자 외국인 선수로는 1위에 등극했다. 특히 올시즌은 어쩌면 한국무대에서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에 '라스트 댄스'를 우승이라는 유종의 미로 장식했다는 것은 라건아에게 더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프로농구 현역 최고령 사령탑인 전창진 KCC 감독은 개인 통산 4번째 우승(역대 2위)이자 원주 동부(현 DB) 사령탑 시절인 2007-08시즌 이후 무려 16년 만에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전 감독은 전성기에 동갑내기 유재학 감독(전 현대모비스)과 쌍벽을 이루는 프로농구 최고의 명장으로 군림했으나, DB를 떠난 이후로는 우승과 인연이 없었고. 한때 승부조작 혐의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으로 농구계에서 퇴출 당했다가 복귀하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전 감독은 2019년 KCC 사령탑에 취임하며 화려하게 농구계로 돌아왔지만 매년 구단의 파격적인 지원과 호화멤버에도 불구하고 우승에는 번번이 실패했다. 올시즌 중반에는 기대에 못 미친 성적으로 사퇴를 요구하는 팬들의 비난 여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전 감독은 올시즌 우승의 숙원을 이루고 물러나겠다며 배수의 진을 쳤다. 과거의 강성 감독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젊은 선수들과의 소통과 화합을 바탕으로 농구철학의 유연한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이뤄낼수 있었다.
 
또한 KCC로서는 지난 몇 년간의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윈나우' 정책과 '연고지 이전'이라는 강수가 숱한 시련 끝에 마침내 결실을 본 시즌이라는 점에서 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KCC는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하승진-전태풍 같은 팀의 전성기를 이끈 레전드들을 사실상 강제은퇴시키며 팬들의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대대적인 변화를 단행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적극적인 트레이드와 FA 투자 등으로 스타 선수들을 끌어모으며 슈퍼팀을 결성한 것이 여러 차례였지만, 번번이 우승에는 실패했다. 만일 올시즌에도 이 멤버로 또다시 정상을 차지하지 못했다면 엄청난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연고지 이전도 KCC에게는 큰 도박이었다. KCC는 올시즌을 앞두고 22년간 홈으로 사용하던 전주를 떠나 부산으로 연고지를 옮겼다. KCC 구단 입장에서는 물론 홈구장 신축문제와 시와의 불화 등,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부득이한 결정이었지만, 전통적으로 '야구의 도시' 불리우며 다른 스포츠들이 통하기 어렵다는 부산에서도 성공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결과적으로 KCC는 부산에서 성적과 인기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 KCC는 프로농구출범 원년인 1997시즌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현 울산 현대모비스)와 프로축구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 이후 무려 27년 만에 부산 연고팀으로 우승을 차지한 팀이 됐다.
 
부산 아이파크는 현재 K리그 2부에 머물고 있으며, 야구의 롯데 자이언츠는 1992년 마지막 우승 이후 32년째 우승과 인연이 없고 올시즌도 꼴찌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KCC는 연고 이전 첫해에 우승을 차지하며, 특히 챔피언결정전은 프로야구 시즌 개막과 겹쳤음에도 1만 관중을 돌파하는 흥행몰이까지 성공하며 '농구도시 부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란 듯이 증명해냈다.
 
올시즌을 기점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새로운 프로스포츠 구단으로 자리 잡은 KCC는, 현재 허웅, 최준용, 송교창 등 핵심전력들이 한창 전성기에 돌입한 만큼 앞으로 2~3년은 꾸준히 정상에 도전할 수 있을 만큼 '왕조'의 잠재력을 갖춘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올시즌을 끝으로 KCC와 결별이 유력한 라건아와 전창진 감독의 거취, 우승이라는 목표에 잠시 가려졌던 스타 선수들의 출전시간 배분이나 샐러리캡 등 문제 등 여러 변수들에 대한 교통정리가 먼저 이뤄지는 것이 비시즌의 숙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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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KCC 챔피언결정전 허웅 라건아 전창진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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