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에서 과연 감독이 팀 성적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디까지일까. 올시즌 나란히 감독교체를 시도한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 두 팀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초보 사령탑'인 이범호 감독이 이끄는 KIA(14승 4패)가 파죽의 6연승을 질주하며 선두에 등극한 반면, 한국시리즈 3회 우승에 빛나는 '현역 최고의 명장' 김태형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롯데(4승 14패)는 6연패 수렁에 빠지며 꼴찌로 추락, 극과 극 대비를 이뤘다. 
 
KIA는 지난주 디펜딩챔피언 LG 트윈스에 이어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2연속 스윕승을 달성했다. 지난 시즌 6위로 5강 진출에도 실패했던 KIA는 NC 다이노스를 1.5게임차로 제치고 선두에 등극하며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KIA는 올시즌을 앞두고 LG,KT와 함께 3강 후보로 전망될만큼 탄탄한 전력을 갖췄다. 하지만 스프링캠프 시작 직전, 사령탑인 김종국 전 감독이 배임수재 혐의로 경질되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했다. KIA 구단은 고심 끝에 이범호 코치를 후임 감독으로 내부 승격시키는 결단을 내렸다.
 
이범호 신임감독은 KIA에서 성공적인 선수생활을 보냈고 미래의 차기 KIA 감독감으로 꼽히던 인물이었지만, 갑작스러운 구단의 돌발상황 속에서 예상보다 빨리 지휘봉을 잡게 됐다. 이범호 감독은 프로야구 역사상 막내 사령탑이자 최초의 1980년대생 감독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기대반 우려반으로 시작했지만 이범호 감독의 KIA는 초반부터 승승장구하고 있다. KIA는 팀타율이 .301, 평균자책 2.87로 리그에서 가장 환상적인 공수밸런스를 과시하고 있다. 2점대 평균자책과 3할대 팀타율 모두 올시즌 KBO리그에서 KIA가 유일하다. 강력한 라이벌로 꼽혔던 LG와 KT가 5할에도 못 미치는 승률로 중하위권까지 추락한 것도 KIA에는 호재였다.
 
하지만 이범호 감독이 단지 '선수빨'이나 '운빨'에만 기대어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KIA는 나성범, 이의리, 박찬호 등 공수의 핵심 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선수층이 얇은 KIA는 주전급 몇 명만 부상당해도 팀 전력이 곤두박질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올시즌의 KIA는 차포가 빠져도 팀의 연승행진은 흔들리지 않았다. 윌 크로우와 제임스 네일의 '외인 원투펀치'가 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부활에 성공한 베테랑 서건창, 백업멤버로 거론되던 이우성, 홍종표의 재발견은 위기의 KIA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이범호 감독은 성적에 일비일비희하기 쉬운 초보 감독 답지 않게 침착하고 뚝심있는 경기운영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연승기간 동안에도 불펜을 소모적으로 연투시키거나 무리한 작전과 변칙으로 선수들을 쥐어짜내는 식의 경기운영은 거의 없었다. 굳이 감독이 돋보이지 않고도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하여 자연스럽게 '팀을 이기게 만드는 상황을 조성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원칙을 지키려다가 아찔한 순간을 겪기도 했다. 지난 13일 한화전에서 9점차까지 앞서던 경기를 불펜 난조로 2점차까지 추격당하며 하마터면 대역전패를 당할뻔했던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이 감독은 연투를 했던 마무리 정해영을 등판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번복하지 않았고 다행히 연승도 지켜냈다.
 
이 감독은 전상현, 최지민, 장현식 등 불펜투수들의 피로누적을 고려하여 박빙의 상황에서도 최대한 투구수와 연투를 관리해주고 있다. 야수진에서도 체력관리와 부상 방지 차원에서 주전들을 과감히 교체해주거나 대타로 기용하기도 한다.
 
이로 인하여 결과가 좋지않거나 어려운 순간을 맞이해도 선수들을 질책하기보다는 "감독 때문에 선수들이 힘든 경기를 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책임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모든 것을 감독이 혼자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코치진과 충분한 협의 끝에 결정하면서 선수들 사이에서도 신뢰를 얻고 있다. 
 
반면 롯데는 '명장' 김태형 감독의 영입 효과가 무색하게 초반부터 꼴찌로 추락했다. 시즌 개막 초반인 봄에 유독 강하다는 의미의 '봄데'라는 수식어도 올시즌에는 무색하다. 롯데는 지난주 하위권팀인 삼성에게 홈에서 스윕을 당한데 이어, 꼴찌 후보로 예상되었던 키움과의 원정에서 또다시 1승도 챙기지 못하며 한 주 전체를 오로지 패배로만 마감했다.
 
물론 롯데는 시즌 개막 전부터 전력상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김태형 감독은 사령탑 부임 이후 선수층이 생각보다 더 얇다는 것을 확인하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신 그만큼 비시즌부터 선수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선 구단도 롯데였다. 3번의 트레이드를 포함하여 2차 드래프트와 타 구단 방출 선수까지 보강하며 팔을 걷어붙였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하다. 팀의 중심을 잡아줄 것으로 기대했던 FA 듀오 노진혁- 유강남의 동반부진이 뼈아프다. 세대교체의 핵심인 윤동희나 김민석, 나승엽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도 저조하다. 기세도 좀처럼 올라오지 못했다. 오는 6월 군입대를 앞두고 마지막 불꽃을 기대했던 한동희는 시작도 해보기전에 부상을 당하며 전력에서 이탈했다.
 
이로 인하여 롯데는 팀타율(.243)과 홈런(7개), 타점(60개), OPS(.638)는 등 주요 타격지표가 모조리 리그 꼴찌를 독식할만큼 극심한 빈공에 허덕이고 있다. 리그 유일의 4할대 타자인 레이예스(타율 .400, 3홈런 11타점)가 중심타선에서 홀로 분전하고 있지만 받쳐주는 선수가 없으니 주자없는 2사에 레이예스가 타석에 서야하는 맥빠진 상황이 속출한다.
 
타선에 가려졌을뿐 마운드 역시 자책점 5.24(8위)를 기록하며 KT와 삼성 다음으로 좋지 않다. 지난주 롯데는 박세웅과 찰리 반즈, 나균안 등 믿었던 선발자원들이 모두 조기에 무너지며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연패를 당했다. 외국인 원투펀치 역할을 해줘야 할 윌커슨과 반즈가 4점대 이상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불펜에서는 지난 시즌 필승조로 활약했던 구승민이 6경기에서 2패 평균자책점 30.38로 무너지며 2군행을 통보받은 것이 뼈아팠다.

롯데는 지난 겨울 오랜 무관(31년)과 가을야구 연속 탈락(6년)의 암흑기를 끊고자 야인으로 지내던 김태형 감독을 영입했다. 김 감독은 두산 베어스 시절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회 우승의 위업을 일궈내며 현역 감독중 최고의 명장으로 꼽힌다. 하지만 롯데에서는 시즌 초반임을 감안해도 아직까지 '김태형 효과'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 현재 롯데가 처한 상황은 김태형 감독이 아니라 어떤 사령탑이었다고 해도 속수무책이었을 것이라는 동정론도 나온다. 한두명의 부진이 아니고 투타 전체가 이 정도로 동반 슬럼프에 빠진다면 천하의 명장이라도 뾰족한 대책이 없을 거란 얘기다. 
 
야구에서 감독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감독 역시 결국은 시스템의 일부에 불과하다. 첫 시즌부터 승승장구하고 있는 초보 이범호 감독과,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 김태형 감독의 그과 극 현실은, 야구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역할과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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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호감독 김태형감독 프로야구순위 명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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