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가 누적 관객 수 1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배급사 쇼박스가 밝혔다. 올해 개봉한 영화로는 첫 천만 영화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영화관의 상영 시간표.

24일 장재현 감독의 영화 '파묘'가 누적 관객 수 1천만 명을 돌파했다고 배급사 쇼박스가 밝혔다. 올해 개봉한 영화로는 첫 천만 영화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영화관의 상영 시간표. ⓒ 연합뉴스

 
오컬트 영화 <파묘>가 24일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역대 32번째, 한국 영화로는 23번째 천만 영화가 됐다. 코로나19 이후 영화산업이 극도로 위축된 가운데, 지난해 11월 개봉한 <서울의 봄> 천만 돌파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천만 영화가 나왔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해외 영화산업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으나, 한국영화산업은 좀처럼 예전 수준에 다다르지 못하면서 장기 침체를 걱정하는 시선이 많았다. 그러나 <서울의 봄>에 이어 <파묘>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어두웠던 전망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다.
 
일단 수치로만 봐도 차이가 난다. 올해 1월~3월까지 영화관 전체 관객은 24일 현재 2891만으로, 31일까지 최소 3천 만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는 2023년 1월~3월 전체 관객 2515만과 2022년 1월~3월 1179만을 웃도는 수치다. 천만 영화 <파묘>가 관객 수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비록 코로나19 이전이었던 2019년 5500만과 비교할 때는 55% 수준이나 3월 관객만 비교하면 또 다르다. 2024년 3월 관객은 1100만 정도가 예상되고 있는데, 2019년 1467만의 75% 수준이 될 전망이다. 코로나19 이전 대비 50%대에 머물렀던 회복세가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전체 관객 기준으로 2023년(1억 2천만 관객)은 2019년(2억 2천만 관객)의 55% 수준이었다(출처 : 영화통합전산망).
 
악조건 이겨낸 기적의 천만
 
 한반도 형상이 보이는 '파묘' 포스터

한반도 형상이 보이는 '파묘' 포스터 ⓒ 쇼박스

 
<파묘>의 흥행은 비수기 흥행은 어렵다는 선입관을 불식시켰다. 일반적으로 본격적인 비수기로 돌입하는 3월은 천만 관객이 드는 게 불가능한 시기로 꼽혀왔다. 학생들의 방학이 2월 말에 끝나면서 3월부터는 관객 수 저하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노려 대작 할리우드 영화가 대부분 스크린을 장악하며 흥행하는 경우가 있으나, 비수기를 코앞에 둔 2월 말에 개봉한 한국 영화 <파묘>가 천만에 도달하리라고는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2월 개봉 영화로는 유일하게 2004년 2월 5일 개봉했던 <태극기 휘날리며 >가 천만 관객에 도달하기는 했다. 이후 20년 만에 2월 개봉한 영화 중 천만 영화가 나온 것인데, 그렇더라도 <파묘>는 2월 22일 개봉했다는 점에서 2월 초에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불리한 조건이었던 셈이다.
 
공포영화가 천만을 넘긴 것도 쉽게 볼 수 없는 일이다. 공포영화의 경우 마니아들은 좋아할지 몰라도 대중적 지지를 받는 데는 한계가 있다. 2016년 개봉한 <곡성>도 687만으로 대단한 성적을 거두긴 했지만, 공포 장르 영화의 천만은 거의 불가능한 영역으로 치부됐다.
 
다만 <파묘>가 이런 악조건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역사성이 가미되면서 흥행에 긍정적인 작용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 또는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다룬 영화 중 천만 영화는 <실미도>(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4), <왕의 남자>(2005),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변호인>(2013), <암살>(2015), <명량>(2014), <국제시장>(2014), <택시운전사>(2017), <서울의 봄>(2023) 등이 있다.
 
<명량>이나 <암살> 등 항일 소재의 작품들이 관객의 관심을 받은 데서 볼 수 있듯 <파묘>의 중심을 이루는 반일 메시지는 대중의 궁금증을 자극했고, 공포영화의 한계를 극복했다.
 
특히 최근 홍범도 장군 폄훼 논란과 후쿠시마 오염수 방수, 윤석열 정권의 대일 굴욕외교 등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만만치 않은 상태에서 임진왜란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영화적 배경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극우 유튜버들과 <건국전쟁> 감독의 좌파 반일영화 비난도 논란이 되면서 무서운 영화는 쳐다보지도 않던 관객들도 심적 부담을 감수하고 극장을 찾게 했다. 영화 외적인 여건과 반작용이 천만의 기적을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다양성 상실, 스크린독과점 심화 지적도
 
 23일 서울시내 극장에서 열린 <파묘> 흥행 감사 무대 행사

23일 서울시내 극장에서 열린 <파묘> 흥행 감사 무대 행사 ⓒ 쇼박스 제공

 
다만 천만 영화가 마냥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들은 '대박이냐 쪽박이냐'로 갈리는 모습이다. 최소 손익분기점을 넘는 영화가 많이 나오는 게 중요한데, 흥행하는 영화들이 스크린을 싹쓸이하는 수준이다. 대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상영관들이 일방적으로 스크린 몰아주기를 하는 덕분이다. 최대 상영점유율의 경우 <서울의 봄>이 61.1%였고, <파묘>는 55.9%를 기록했다. 개봉 초기 전체 상영 횟수의 절반 이상 차지하면서 흥행몰이를 한 것이다.
 
30만 회 이상 상영된 천만 영화 중 상영 회차가 30만을 넘긴 작품들은 <겨울왕국2>(2019년) 30만 회, <범죄도시2>(2022) 35만 6천 회, <범죄도시3>(2023) 31만 회, <서울의 봄>(2023) 37만 회 등이다. <파묘>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24일까지 25만 회가 상영됐는데, 4월 중순까지 상영이 이어지면 30만 회 이상을 가볍게 넘어설 전망이다.
 
이 때문에 코로나19 이전 천만 영화의 1회 상영 평균 관객이 50명~90명 사이를 오갔으나 코로나19 이후에는 34~36명을 기록하고 있다. <서울의 봄>은 1회당 평균 관객이 35명이었다. <파묘>는 24일 기준 1회당 평균 관객이 41명을 기록하고 있는데, 종영 때까지는 점차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하영 흥행분석가(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운영위원)는 "천만 영화가 나오면, 이어서 천만 영화가 나올 확률이 꽤 높은데, 한편으로 쏠림현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2등은 없고 오직 1등만 존재하는 시장이다 보니 <파묘>의 현재까지 시장 점유율이 평균 67%"라고 지적했다. 

이 분석가는 이어 "지금 우리 극장의 모습인 멀티플렉스가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이럴 바에 자잘하게 7개 관, 8개 관 만들지 말고 큼직하게 대형으로 1관이나 2관만 만드는 게 맞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다양성이 상실된 대기업 극장의 병폐를 꼬집은 것이다.

천만 관객 영화가 나오면서 극장 관람료 인상 문제를 극장이 가볍게 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영화단체 관계자들은 "영화산업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천만 관객에 들뜨기보다는 극장의 관람료를 인하해 관객의 선택 폭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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