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영화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 (주)쇼박스

 
영화 <검은 사제들>(2015)과 <사바하>(2019), 그리고 <파묘>로 명실공히 한국 오컬트 영화의 새 흐름을 만들고 있는 장재현 감독이 처음으로 천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 2월 22일 개봉한 <파묘>가 950만 명을 돌파했고, 사실상 3월 중 해당 수치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서울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재현 감독은 "평생 이 시간이 또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고 있다"고 소회부터 전했다. 흥행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에 대한 부담도 털어놨다. "<파묘> 이후 제가 할 작품이 전작과 비교될 가능성이 크기에 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진다"고 말했다.
 
"반일주의 결코 아냐, 친일에 대해선 경계"
 
이름난 풍수사와 장의사, 그리고 무당의 합심으로 한 무덤에 얽힌 오랜 저주를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 <파묘>에 왜 관객들이 크게 화답했을까. 분명한 것은 이전 그의 영화들이나 비슷한 소재의 대중영화에 비해 직선적이고 주제 의식 또한 선명하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항일 내지는 친일에 대한 감독 나름의 생각이 반영되며, 장르에 국한하지 않은 대중성이 담보됐다는 평도 있다.
 
"뭔가 메시지나 관객층을 대상으로 재밌게 만든다기보단 일단 제가 스스로 재밌는 걸 중심으로 작업한다. 물론 처음에 계획한 것들은 있다. 하지만 막상 촬영을 시작하면 그것들이 희미해진다. 장면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되거든. 그러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 처음 기획 때가 생각난다. <파묘>는 꽤 오락적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안전한 길을 택하지 않고, 뭔가 새로운 걸 해보겠다는 생각도 했다.

배우들도 그렇고 영화에 항일이 담겼다고들 하시는데 장르적 재미가 더 중요했다. 95% 정도는 장르적 재미로 채우려고 했다. 파묘라는 소재 자체에 집중하려 했고, 무당 말고 또 뭐가 있나 살피니 결국 한이더라. 사실 쇠말뚝 묘사는 정말 고심했다. 우리 어렸을 때 교과서에도 나왔던 것 같은데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잖나. 우리 정기를 끊기 위한 일본의 쇠말뚝이 있었는지 말이다. 결국 직접적으로 나오면 안되겠다 판단하고 대체할 대상을 찾은 게 정령 사상이었다. 그만큼 쇠말뚝 묘사는 조심스러웠던 내용이다."

 
영화 후반부부터 강조된 한 집안의 친일 행적과 그에 얽힌 일본 귀신 묘사를 두고 장재현 감독은 반일 혹은 항일로 해석이 쏠리는 걸 경계하고 있었다. "저 또한 일본 영화나 문화에서 배운 것들이 많다"며 그는 "반일이라는 프레임이 있어서 그런데, 거기에 집중하기 보다는 피 묻은 우리나라 역사와 땅에 집중하려 한 것"이라 말했다.
 
한 국가를 배척하자는 건 아니겠지만 외려 우리 안에 깃든 패배주의나 친일 행적에선 할 말이 있어 보였다. 이 질문에 장재현 감독은 "친일을 직접 비판한다기 보다는 우리의 역사를 들여다보려 했다"며 말을 이었다.
 
"이 땅의 상처, 앙금을 들여다보고 과거로 계속 가다 보면 해방 이후 딱 걸린다. (주요 인사들의 친일 행적들 때문에) 뭔가 우리나라의 고립과 정체가 시작된 게 아닌가 싶더라.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갑자기 침략한 그들에게 피해를 입고, 어떤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다."

 
이승만의 행적을 미화한 다큐 <건국전쟁>의 감독이 <파묘>를 두고 "좌파들이 몰려가서 보고 있다"고 말한 것에 장재현 감독은 "영화를 받아들이는 건 가지각색이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 감독은 "우리 영화에 관심 가져주셔서 고맙다. 제가 그런 영화를 의도한 게 아니라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영화 <파묘>의 한 장면.

영화 <파묘>의 한 장면. ⓒ ㈜쇼박스


세심한 설정들
 
<파묘>가 크게 흥행하며 관객들 사이에선 숨어 있는 감독만의 설정 찾기 유행이 불기도 했다. 게임으로 치면 '이스터 에그'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배우 최민식이 연기한 풍수사 상덕은 임시정부 국무위원, 반민특위 위원장이었던 독립운동가 김상덕 선생을, 김고은이 맡은 무당 화림이 항일운동가 이화림을 반영했다는 식이다. 상덕의 차량 번호가 광복절을 뜻하는 0815, 화림의 차 번호판 또한 3.1 운동을 떠올리는 0301이라는 것도 있다. 영화 포스터에 쓰인 글씨체가 김좌진 장군의 것을 본딴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장재현 감독은 "사실 이스터 에그라는 걸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고 운을 뗐다.
 
"섬세하게 장면을 구상하는 편이다. 차 번호나 신발 종류와 색깔까지 말이다. 캐릭터와 서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택하는 편이기에 이스터 에그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화면 밀도를 높이는 게 목적일 뿐이다. 장르적으로도 제 영화를 오컬트라고 한정하고 싶진 않다. 베를린영화제에 가서 보니 오컬트라는 장르 자체가 없더라. 미스터리, 오컬트적 요소가 있다고 소개됐다. <검은 사제들>도 사실 오컬트라고 한정할 순 없을 것 같다.

제 입장에선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고 어떤 감정이 드는지가 중요하다. 좀 새로운 시도를 하면 그래서 불편하게 느끼시는 분도 계시지. 제 관심사나 감성이 그리 넓은 편이 아니라 그 좁음 안에서 최대한 깊이 파려고 한다. 다른 장르는 저보다 훨씬 잘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적어도 신비주의나 오컬트 요소만큼은 제가 보고 싶은 것들을 반영하려는 편이다."

 
그런 이유로 장 감독은 이번 영화가 전작에 비해 스타일이 한정됐다, 정통 오컬트에서 벗어났다는 등 혹평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영화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영화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 (주)쇼박스


"그런 평은 항상 있었다. <사바하> 개봉 때는 <검은 사제들>을 기대하고 오신 분들게 혹평이 나왔고, 이번 영화는 <사바하>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아쉽다는 평이 나오더라. 제 신작을 두고 진보라는 분도, 퇴보라는 분도 있는데 전 그저 새로운 장면을 위해 순수하게 즐기려 했던 것 뿐이다. 영화는 감독이나 투자자가 주인이 아닌 100% 관객들의 것이다. 그분들이 그렇게 봤으면 그런 것이지.
 
이번 영화도 사실 앞부분은 대중적이고, 뒷부분은 매니악하다고 생각하고 만들었는데 공개되고 나니 정반대의 반응이더라. 내가 너무 관객들을 판단하려 했구나 싶었다. 절대 그런 생각 말고 계속 새로운 걸 도전해야겠다. 결국 좋은 이야기가 중심이 돼야 한다. 흥행을 위해 뭔가를 더하고 집어 넣는 건 지양해야 한다."

 
아울러 장재현 감독은 영화 흥행으로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한껏 고무돼 있다는 사실을 전했다. 개봉 5주 차가 넘었지만 주연 배우들도 신나서 무대 인사를 돌고 있다고 한다. "<서울의 봄> 흥행이 한국영화에 큰 생명줄이 된 것 같다. <파묘>도 그 빚을 지고 있다"며 그는 "오랜만에 가득 찬 극장을 보며 배우와 스태프들이 이 맛에 영화를 한다고들 말했다. 그 열기가 다시 올라오는 게 얼마만인지. 앞으로 개봉할 <댓글부대> 등도 분위기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파묘 장재현 최민식 김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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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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