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KBS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 KBS

 
지난 주말에 방영된 <고려거란전쟁>은 강조(이원종 분)의 쿠데타가 빌미가 돼 거란족 요나라가 침공하는 상황을 보여줬다. 강조가 천추태후(이민영 분)와 김치양(공정환 분)을 무너트려 목종(백성현 분)을 폐위시키고 현종(김동준 분)을 옹립하는 1009년의 정변이 이듬해의 요나라 침략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전개됐다.
 
요나라가 침공한 최대 동기는 자국의 중국 정복을 배후에서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고려의 기를 꺾어놓는 데 있었다. 요나라의 주력군이 남쪽으로 내려가는 사이에 고려군이 만주를 거쳐 자신들을 위협할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 1차적 목적이었다.
 
이런 의도는 1010년뿐 아니라 그 이전과 이후의 침공에도 깔려 있었다. 전쟁뿐 아니라 외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려와 전쟁을 하건 외교를 하건, 요나라의 최대 관심은 고려와 중국 한족의 연계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있었다.
 
그것과 더불어, 요나라 성종황제가 직접 출전한 1010년의 침공 때는 또 다른 개전 동기도 함께 작용했다. 전년도에 쿠데타를 일으킨 강조가 자국에 우호적이지 않다는 판단이 전쟁을 초래한 주요 요인이었다. 고려 내의 반(反)거란 세력을 제거하는 것이 요나라의 핵심 동기 중 하나였던 것이다.
 
쿠데타 일으킨 강조의 '충성심'  
 
 KBS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KBS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 KBS

 
강조가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주도하는 목종 정권을 전복시키는 선에서 그쳤다면, 1010년에 요나라의 침공이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가 요나라에 대해서도 비우호적 태도를 취한 것이 전쟁을 부른 핵심 요인이 됐다.
 
강조는 단순히 천추태후·김치양 정권이 싫어서 쿠데타를 일으킨 게 아니었다. 이 점은 요나라 군대에 붙들려 죽음을 맞게 됐을 때 그가 보여준 결연한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이 장면은 그가 천추태후 커플보다 더 싫어했던 게 누구인가를 명확히 보여준다.
 
인터넷 백과사전 등에는 강조의 사망 연도가 1010년으로 기록돼 있지만, 현종시대 역사서인 <고려사> 현종세가에 따르면 그가 지금의 평안북도 선천군인 통주(通州)에서 요나라 군대에 사로잡힌 날은 음력으로 현종 1년 11월 24일이다. 양력으로 환산하면 1011년 1월 1일이다.
 
강조가 사망한 것은 1011년인데도 1010년으로 잘못 표기된 것은 <고려사>에 나오는 음력 11월을 양력 11월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전년도 음력 11월은 이듬해 양력 1월과 겹칠 수 있으므로, 음력 11월을 양력으로 환산하지 않으면 이런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
 
1010년 11월 24일이 아니라 1011년 1월 1일, 거란군 병사들에게 붙들린 강조는 포박을 당한 뒤 담요에 싸인 채로 요나라 성종 앞에 끌려갔다. <고려사> 김치양열전에 따르면, 요 성종은 포박을 풀어주면서 "너, 나의 신하가 되겠느냐?"고 질문했다.
 
<삼국유사> 기이 편에 따르면, 신라 충신 박제상은 "차라리 계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가 되지는 않겠다"고 결연히 밝혔다. 청나라 조정이 발행한 <만주원류고>는 "계(鷄)와 길(吉)은 음이 서로 부합하며 여러 지리적 관계를 조사해봐도 역시 딱 들어맞는다"라며 중국 길림성 지명이 신라를 뜻하는 계림에서 기원했다고 설명했다.
 
발해 건국 이전에 신라가 길림 지역을 잠시 지배했기 때문에 이곳이 한때 계림(중국 발음 지린)으로 불렸고 이를 근거로 중국어 발음이 똑같은 길림이란 지명이 나왔음을 보여주는 것이 <만주원류고>의 설명이다. 박제상은 그런 계림을 운운하며 자신은 신라 백성이지 왜국 백성이 아니므며 왜국에 충성할 수 없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박제상처럼 개·돼지 같은 자극적 표현을 써서 상대방을 자극하지는 않았지만, 강조 역시 결연한 의지를 보여줬다. 강조열전은 그가 "나는 고려인인데 어찌 너의 신하로 바뀔 수 있느냐?"고 맞섰다고 알려준다. 다시 물어도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고 한다. 칼로 살을 도려내며 질문해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강조 역시 박제상 같은 독종 충신이었던 것이다. 강조는 결국 처형됐다.
 
이 장면은 강조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것이자 거란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임금을 폐위시킨 경험이 있었다. 임금을 폐위시킬 수도 있는 사람이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이만한 충성심을 표시한 것은 그가 그만큼 거란족을 경멸했음을 보여준다. 거란 황제가 직접 출동한 것은 그런 그를 제거하고 반거란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다.
 
천추태후의 균형외교
 
 KBS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KBS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 KBS

 
강조의 쿠데타가 일어난 뒤에 요나라가 고려 내의 반거란 세력을 직접 제거했다는 것은 쿠데타 이전의 천추태후 정권이 거란에 우호적이었음을 의미한다. 천추태후 정권의 그 같은 외교노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요나라 성종시대 역사서인 <요사> 성종본기에 실려 있다.
 
이 책은 음력으로 통화(統和) 20년 7월의 사건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신축일, 고려가 사신을 보내 본국의 지리도를 헌납했다"고 말한다. 양력 1002년 8월 18일 고려 사신이 자국 영토를 그린 지도를 갖고 와서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 시절에는 지도가 극비 문서였다. 정확한 지도를 확보하는 것이 전쟁의 승률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던 때였다. 그런 시절에 지도를 상대국에 제공하는 것은 '귀국을 믿는다'는 표시였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이 이런 방법으로 러브콜을 보냈을 정도로 두 사람 집권기에는 거란과 사이가 좋았다.
 
그렇다고 천추태후 정권이 정통 중국 왕조인 송나라(북송)을 완전히 내팽개친 것은 아니다. 천추태후 정권은 요나라와의 관계에 좀더 무게를 실으면서도 송나라와의 관계 역시 훼손하지 않는 절묘한 균형외교를 추구했다.
 
천추태후 집권 이전인 993년에 요나라는 고려를 침공했다. 이 침공을 외교술로 물리친 이가 서희였다. 서희의 활약에 힘입어 고려는 여진족 땅인 압록강 주변 280리 땅에 대한 우선권을 획득한 뒤, 요나라의 묵인 하에 이를 강동 6주로 편입시켰다. 대신, 고려는 송나라의 책봉을 받지 않고 요나라의 책봉을 받기로 약속했다. 신하국이 조공하면 황제국은 답례로 회사(回賜)를 하는 관계도 송나라가 아닌 요나라와 맺기로 합의했다.
 
이로부터 4년 뒤에 출범한 것이 천추태후-김치양 정권이다. 이 정권은 요나라와의 동맹에만 올인하지 않고 북송과의 동맹 가능성에도 문을 열어놓았다. 이를 알려주는 기록이 <고려사> 목종세가에 있다. 이에 따르면, 음력으로 목종 2년 10월(양력 11.11~12.10) 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
 
"이부시랑 주인소를 파견해 송에 가게 했다. 황제가 따로 불러 접견했다. 인소는 나라 사람들이 화풍(華風)을 사모하고 있으며 거란에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설명했다."
 
천추태후 정권은 요나라와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윙크'를 했다. 우리는 여전히 중국 문화를 사모하고 있으며, 요나라와 동맹한 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게 아니라 당장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송나라 조정이 이것이 이중 전략임을 몰랐을 리는 없다. 이를 통해 송나라는 고려가 자국과의 관계를 함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었다.
 
요나라의 제1차 고려 침공은 993년, 제2차 고려 침공은 1010년에 있었다. 천추태후 정권은 997년에 출범해 1009년에 붕괴했다. 균형외교가 작동하는 동안은 고려의 국경이 평화로웠던 것이다. 균형외교가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이 이 사례에서도 명확해진다.
 
강조는 충성스런 고려인이었다. 칼로 베임을 당하면서도 요나라 신하가 되기를 거부했다. 이런 의리는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그가 전쟁을 막는 지혜가 부족했다는 점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는 전임 정권인 천추태후의 균형외교를 깨트렸고, 요나라를 안심시킬 만한 외교적 카드를 내놓지 못했다. 이는 1010년에 거란 황제가 강조를 잡으러 직접 출동하는 원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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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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