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4년 전국 340만 관객을 모으며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 <끝까지 간다>의 원제는 <더 바디>였다. 하지만 제작과정에서 제목이 모호하고 어렵다는 지적이 있어 제목을 <무덤까지 간다>로 변경했다. 하지만 이 역시 호러 영화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이 있었고 결국 각색에 참여했던 이해준 감독의 의견에 따라 최종적으로 제목을 <끝까지 간다>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강한 효과와 영화의 주제를 모두 담은 제목 변경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반면에 유아인, 최지우, 이미연 등이 출연했던 영화 <좋아해줘>의 원제목은 <해피 페이스북>이었다. 이 영화의 제목은 <해피 로그인>을 거쳐 <좋아해줘>로 최종 확정됐지만 전국 84만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치며 아쉬움을 남겼다. 엄정화,송승헌 주연의 <멋진 악몽>도 제목을 <미쓰 와이프>로 변경해 개봉했는데 98만 관객에 그치며 크게 재미를 크게 보지 못했다. 이처럼 영화 제목은 영화의 이미지를 크게 바꿀 수 있어 제작사의 큰 고민거리가 된다. 
    
때로는 주인공 캐릭터 이름을 그대로 영화제목으로 붙이는 것이 도움이 될 때가 있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최동훈 감독의 <전우치>를 비롯해 <완득이>, <강철중> 등이 캐릭터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사용해 성공을 거둔 경우다. 할리우드에서도 <인디아나 존스>, <탱고와 캐쉬>처럼 주인공 이름을 영화 제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중에도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여성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단순하면서도 영화의 느낌을 잘 살린 좋은 제목이었다.
 
 <델마와 루이스>는 199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각본상을 수상했다.

<델마와 루이스>는 199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각본상을 수상했다.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할리우드 대표 비주얼 거장의 여성영화

리들리 스콧 감독은 지난 2012년 세상을 떠난 동생 고 토니 스콧과 함께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형제 감독으로 유명하다. 2016년 공식적으로 자매가 된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코엔 형제,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페럴리 형제가 주로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과 달리 스콧 형제는 각각 '비주얼리스트'와 액션 스릴러 전문 감독으로서 자신만의 확실한 세계를 구축한 형제 감독으로 꼽힌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디자인을 전공했고 광고계에서 일했던 경력을 살려 멋진 화면을 뽑아내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에일리언1>이나 훗날 감독판으로 재평가 받은 <블레이드 러너> 등을 보면 1970년대 후반이나 1980년대 초반의 영화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뛰어난 영상미를 보여준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은 1985년 <리전드>의 실패 후 SF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1년  캘리 로우리의 시나리오를 영화화한 <델마와 루이스>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필모그라피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가진 작품이다. 밝고 시원스런 공간적 배경과는 달리 미국사회의 성차별을 냉소적인 시각으로 조명한 <델마와 루이스>는공개되자마자  관객과 평단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델마와 루이스>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1997년 <지. 아이. 제인>에서 다시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리들리 스콧 감독은 2000년  <글레디에이터>를 통해 세계적으로 4억57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리들리 스콧의 웅장한 연출과 화면 구성이 돋보였던 <글레디에이터>는 골든 글러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휩쓸었다. 이후 리들리 스콧 감독은 <한니발>, <블랙 호크 다운>, <아메리칸 갱스터> 등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거장으로 자리 잡았다.

2012년 <프로메테우스>로 <에일리언>의 세계관을 확장시켰던 리들리 스콧 감독은 2015년 <마션>을 통해 세계적으로 6억2900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렸다. 이는 <글레디에이터>의 기록을 15년 만에 뛰어 넘는 리들리 스콧 감독 생애 최고 흥행 기록이었다. 80세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리들리 스콧 감독은 지난 2015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렸다.

함께라서 외롭지 않았던 두 여인의 위험한 일탈
 
 지나 데이비스(왼쪽)와 수잔 서랜든은 <델마와 루이스>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후보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수상은 조디 포스터).

지나 데이비스(왼쪽)와 수잔 서랜든은 <델마와 루이스>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후보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수상은 조디 포스터).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평범한 가정주부 델마(지나 데이비스 분)와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독신 여성 루이스(수잔 서랜든 분)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고 남편이 출근하는 사이 쪽지 한 장만 남기고 2박3일 일정으로 즉흥 여행을 떠난다. 여기까지는 동성친구들끼리 떠나는 단순한 힐링 여행이었지만 클럽에서 만난 남자가 델마를 추행하려 하자 루이스는 델마가 챙긴 총으로 그 남자를 살해한다. 즐거운 여행이 심각하게 꼬이는 순간이다.

소심한 델마는 경찰에 자수하자고 루이스를 설득하지만 살인의 당사자인 루이스는 자신에게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갈 것을 직감하고 멕시코로의 망명을 계획한다. 하지만 총무 역할을 맡은 델마는 루이스가 지미(마이클 매드슨 분)에게서 어렵게 빌린 돈을 젊은 청년 제이디(브래드 피트 분)에게 도둑맞는다. 당시 무명이었던 브래드 피트는 조지 클루니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섹시한 좀도둑 역을 따냈다. 

성격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달랐던 델마와 루이스는 함께 여행을 다니면서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특히 신호위반으로 경찰에게 걸린 루이스가 살인 용의자라는 것을 발각되기 직전 델마가 극적으로 구해주면서 두 사람은 급격히 가까워진다. 처음 차를 세울 때만 해도 엄청난 존재감을 내뽐던 경찰은 델마가 머리에 총을 들이대자 순식간에 겁에 질린다. 델마는 처자식이 있다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경찰에게 "부인에게 잘하세요"라고 타이른다.

<델마와 루이스>에서 가장 통쾌한 장면은 역시 마주칠 때마다 성추행을 서슴지 않던 트럭 운전사를 혼내주는 장면이다. 물론 교통 경찰과 달리 트럭 운전사는 총을 겨눈 델마와 루이스를 보고도 겁에 질리지 않지만 그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차를 폭파시키면서 남자들에게 쌓여 있던 분노를 표출한다. 트럭 운전사뿐 아니라 <델마와 루이스>에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들은 대부분 마초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성격으로 나온다.

델마와 루이스는 차를 타고 멕시코를 향해 열심히 달리지만 애리조나 그랜드 캐년에서 절벽을 앞에 두고 경찰에게 포위를 당한다. 앞에는 헬기, 뒤에는 저격수가 있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델마는 루이스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절대 잡히지 말자. 가자! 밟아!" 그리고 델마와 루이스가 탄 차량은 절벽을 향해 질주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절벽으로 떨어지기 직전 루이스가 델마를 차 밖으로 밀어내는 엔딩도 구상했었다고 한다.

유일하게 그녀들을 이해해 주는 남자 캐릭터
 
 무명에 가까웠던 브래드 피트는 리들리 스콧 감독과 두 주연배우에게 직접 발탁돼 제이디 역을 따냈다.

무명에 가까웠던 브래드 피트는 리들리 스콧 감독과 두 주연배우에게 직접 발탁돼 제이디 역을 따냈다. ⓒ (주)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델마와 루이스>는 여행 도중 살인을 저지른 두 여성이 멕시코로 도주하는 과정을 그린 로드 무비다. 당연히 그녀들을 추격하는 경찰들은 두 주인공과 대치하는 지점에 있을 수 밖에 없다. 두 주인공이 모두 여성이다 보니 경찰들은 죄다 남자배우들이 연기했는데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델마와 루이스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주는 경찰이 있다. 바로 하비 케이틀이 연기한 할 슬로컴브 형사다.

슬로컴브 형사는 수사망을 좁혀 가는 과정에서 델마와 루이스가 악의를 가지고 살인을 저지를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들의 범죄가 어쩔 수 없이 처한 상황에서 벌어진 불가피한 행동이었음을 깨닫고 그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 저격수 배치를 반대했고 그랜드 캐년의 벼랑 끝을 향해 질주하는 두 사람의 차를 세우기 위해 끝까지 달려간 인물도 바로 슬로컴브 형사였다.

사실 하비 케이틀은 비슷한 세대의 배우들인 로버트 드 니로나 알 파치노에 비하면 화려한 커리어를 쌓은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초창기에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비열한 거리>와 <택시 드라이버>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90년대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많은 작품을 함께 했다. 물론 2010년에는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에서 바보 아들을 후계자로 둔 마피아 두목을 연기하기도 했다.

할리우드의 대표 미남 배우 브래드 피트는 무명 시절 리들리 스콧 감독과 수잔 서랜든, 지나 데이비스 앞에서 오디션을 보고 가장 섹시한 남자로 지목돼 <델마와 루이스>에 캐스팅됐다. 극 중에서 델마를 유혹하는 잘 생긴 청년 제이디는 알고 보니 델마와 루이스의 여행 자금을 훔치는 좀도둑이었다. 극 초반까지만 해도 소심하고 어리바리한 캐릭터였던 델마는 믿었던 제이디에게 전재산을 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총을 꺼내는 터프한 성격으로 돌변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델마와 루이스 리들리 스콧 감독 수잔 서랜든 지나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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