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8일과 9일 이틀 동안, 광화문 일민 미술관 5층에 있는 영상 미디어 센터에서는 '미디어 센터 설립 운동 활성화를 위한 국제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미국과 북아일랜드, 독일에서 온, 한국의 미디어 센터와 유사한 일을 하는 단체에서 일하는 이들이 참석하여 각 나라의 운영 방식과 어려움 등을 나누었는데, 이 중 독일에서 온 위르겐 링케 씨(Juergen Linke)는 독일 베를린의 '오픈 채널' 국장이다.

'오픈 채널'은 독일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해서 방송을 만들고 그 방송을 내보낼 수 있게 만든, 말하자면 우리나라의 '열린 채널'과 유사한 방송인데, 차이점이 있다면 우리와 같이 기존 방송국의 방송 시간 중 일부를 빌려서 방송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방송 채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매체들과는 달리 시민이 기자로 참여하는 <오마이뉴스>와 시민 방송인들의 프로그램으로 채워지는 '오픈 채널'은 그 출발과 운영 방식에서 분명한 공통점을 가진 셈이다. 긴 비행 시간과 이어진 오랜 토론으로 지쳤을 터임에도 링케 국장은 인터뷰 요청을 물리치지 않았고, 특유의 유머와 겸손함으로 유쾌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 스스로를 '68 세대'라고 생각하는가?
ⓒ 강윤주
"42년에 태어났으니, 나이로 따져볼 때 그렇지 않다고 말하기는 힘들지 않겠는가. (웃음) 그 당시 데모대에 늘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고 기본적으로 그들의 생각에 동의했다는 면에서 68세대라고 할 수 있다."

- 언제부터 '오픈 채널'에서 일했는지?
"오픈 채널은 85년에 설립되었는데 내가 일하기 시작한 것은 87년도였다. 나는 그곳의 첫번째 방송국장이었다. 오픈 채널에서 일한다는 것은 정말로 매력적인 일이다.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방식들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매력적인 것은, 날마다 오픈 채널이 무엇인가를, 특히 정치가들에게 새롭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웃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오픈 채널이 무엇인지를 이해 못하고 있다."

- 오픈 채널을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 있다면?
"2년 전 오픈 채널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봉착했었다. 키르히 그룹 (Kirchgruppe: 독일뿐 아니라 유럽을 통틀어서도 1, 2위를 다투는 독일의 거대 언론사 [필자 주])이 만든 'N24'라는 뉴스 전문 채널이 신설되면서 베를린의 케이블 채널 하나를 반드시 차지하려 했고 그런 이유로 오픈 채널을 없애려 들었기 때문이다. 사민당(SPD)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당시 나는 사민당의 문화 정책에 대단히 실망했다. 당시 베를린 시에서는 기민당과 사민당이 함께 연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 안건에 대해 동의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거센 반발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 순간은 오픈 채널에게 대단히 위험한 시기였다."

-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방송을 공평하게 방송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은지?
"바로 그 점이 오픈 채널의 매력이다. 독일인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자기 문화를 이곳에 소개함으로써 우리 방송은 풍부한 색채를 띠게 된다. 어느 날, 다소 우익적 성향을 띤 일단의 터어키 사람들이 자기 방송을 만들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쿠르드족 사람들이 생방송 중이었는데, 쿠르드족은 그 방송에서 터어키 사람들을 원색적으로 공격하고 있었다. 터어키 사람들은 그 방송을 주욱 지켜보고 있었고… 방송이 끝나고 쿠르드족 사람들이 스튜디어에서 나왔을 때 그 두 집단이 정면으로 마주치는 순간이 있었지만, 다행히 아무런 문제없이, 서로 인사까지 하며 헤어졌다. 학자와 노동자, 젊은이와 나이든 이, 여성과 남성, 여러 집단들이 있지만 여태까지는 별다른 충돌없이 진행되고 있다. 오픈 채널에 냉소적인 시선을 보내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제재없이 누구나 방송할 수 있다면 그건 혼란만 야기하는 무정부 상태가 아니겠느냐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잘 진행된다. 그런 얘기는 실제로 행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생각만 하는 사람들의 편견이라는 게 증명된 셈이다."

- 그래도 최소한의, 교통 정리를 위한 조항들은 있지 않나?
"오픈 채널에서 방송을 만드는 이들 중에는 종교적 그룹이 많다. 가톨릭, 회교, 기독교, 그리스 정교까지 다양한 그룹들이 있다. 그런 까닭에 어느 순간 모든 방송의 삼분의 일이 종교적 색채의 방송으로 채워진 적이 있었다. 전체적인 방송 내용의 균형상 안 되겠다 싶어서 모든 종교적 색채의 방송은 일요일 오후 1시부터 5시 사이에 방영되도록 했다.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지만 많은 종교 그룹들이 큰 반발없이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큰 반발을 했던 경우는 다른 사람들로, 그들은 언제나 자기들이 황금 시간대에 방송을 내보낼 수 있기를 원했는데 내가 그것을 거부했더니, 나를 비난하는 방송을 만들었다. 그들은 내 사무실 바로 뒤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며칠이고 나를 비난하는 방송을 만들어서 내보냈지만, 나는 이것도 받아들였다. 그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방송 중에 일어났던 해프닝 하나를 소개하자면?
"베를린 시의 방송법에 따르면, 오픈 채널에서는 누구나 한 달에 최대 120분 분량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고 하나의 프로그램은 60분을 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초기에는 이러한 시간적 제한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세 시간이 넘게 생방송으로 토론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 방송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 한참 토론 중이던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두 시간여 지난 뒤 갑자기 벌떡 일어나면서, '난 더 이상 못 참겠어! 너희들은 모두 공산주의자들이야!'하고는 나가버린 것이다. 상상을 해보라, 어떤 다른 방송에서 이런 일을 생방송으로 볼 수 있겠는가?"

- 예를 들어 극우주의자들이 방송하려 하면 어떻게 하는가?
ⓒ 강윤주
우리 방송에서는 극우주의자들도 방송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법으로 금하는 사항들, 곧 나찌의 표상인 하켄크로이쯔(Hakenkreuz)를 보여준다든가, 그들만의 특별한 인사법 등은 방송을 타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들이 단지 극우주의자의 전형적인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을 하고 있다고 해서 방송을 금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방송의 내용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극우주의자들이 공적 영역에서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도록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보다는, 그들과의 토론을 통해 시청자들이 스스로 그들의 문제를 깨닫게 하는 것, 그게 낫다고 본다.

극우주의자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이들의 방송 출연 문제와 관련하여 국영 방송인 ZDF와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다시금 기존 방송들의 선정주의를 통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인터뷰 내내 여러가지 방식으로 '극우주의자도 오픈 채널에서 방송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던졌다. 어느 순간 나는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한 뒤, 방금 내가 말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어떤 방식의 제한이 있는지, 그리고 왜 원칙적으로 그들도 오픈 채널에 방송이 가능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막상 ZDF에 방송이 나왔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을 '예' 선에서 잘라버리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그들은 시청자들을 도발하려 했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그 답변을 듣고는 '아니 저럴 수가'하고 흥분했을 것이다.

극우주의자들 중 한 사람이 방송법 규정에 의해 더 이상 우리 방송에서 방송할 수 없게 된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이르기까지는 한 사람, 이를테면 방송국장인 나의 한 마디가 아니라 매우 복잡한 법적 절차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 수렴과 적절한 과정을 통해 이런 결정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 방송에 대한 외부적 압력은 없는가?
"우리 채널에는 테러의 위협을 받아가면서 방송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어떤 이란인은 이란 정부를 비판하는 방송을 꾸준히 만들어 왔는데, 베를린 주재 이란 대사관에서 우리 쪽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 방송을 내보내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그에 응하지 않자, 그들은 베를린 시장에게까지 편지를 써서 그 방송을 금지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시장은 자신이 이 경우에 어떤 제재 권한도 없다고 말하며, 독일 헌법에 따르면 그들은 시장으로서 방송에 참견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독일에서는 정부를 비난하는 것이 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라고도 말했다.

한 터어키 작곡가는 터어키풍의 멜로디에 독일 가사를 붙인 노래를 만든다. 그는 이를 '외국인 노동자의 노래'라고 이름 붙였다. 그 노래는 독일뿐 아니라 터어키 정부와 독일에 살고 있는 터어키인들 집단까지 고강도로 비난한 작품이다. 어느 날 그의 차 앞에는 커다란 돌멩이 하나가 떨어져 있었고 그 돌멩이에는 '다른 노래를 불러라!'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 정치인이나 이른바 사회의 저명인사들이 오픈 채널을 무시하는 경우는 없는가?
"물론 우리는 국영 방송과 같은 대접을 받지는 못한다. 우리는 그 어려움을 다른 식으로 극복한다. 독일의 각 정당은 자기 정당의 생각과 유사한 색채를 띤 재단을 가지고 있고 이 재단에서는 여러 가지 형태의 포럼을 여는데, 매우 건조한 이 포럼을 방송하는 채널은 거의 없다. 이런 재단들의 목적은 국민의 정치적 의식을 길러준다는 데에 있는데, 나는 오픈 채널의 중요한 존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정치적 의식 기르기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그런 포럼을 중계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있다고 보아서, 우리는 이런 경우 편집하지 않고 끝까지 이런 포럼들을 중계한다. 올해 1월부터는 밤 10시 이후 오픈 엔드, 곧 끝이 없는 방송 시간을 만들기도 했다. 이는 대단한 호응을 받고 있다. 우리가 이런 포럼을 중계하는 데에 있어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낸다는 것, 그게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2년 전 오픈 채널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었다. 그때 내가 깨달은 바는, 우리의 방송 내용이 좋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 일정한 정치적 로비 활동이 필요하구나,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또 이런 위기를 맞을지도 모르겠구나, 였다. 정당들에게 있어 정당 포럼이 방송을 통해, 절대로 자기 정당 포럼에 오지 않을 사람들에게 보여진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이점이다. 각 정당 재단의 포럼들을 중계 방송하는 식의 활동을 통해, 각 정당들도 오픈 채널이 자신들에게 줄 수 있는 이점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 우리가 정치적 위기에 빠지면 상호 도울 수 있는 분위기가 될 거라고 본다."

- 끝으로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픈 채널 구성원과 그 구성원들 생각의 다양성이 때로는 서로간의 충돌로 나타나듯이,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들 사이에도 이견이 있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본다.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또한 자기 의견을 적절한 방식으로 나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오랜 시간 경험과 훈련을 통해서 비로소 해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오마이뉴스나 오픈 채널이 하고 있는 시도들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그런 어려움이나 재정적 곤란함, 또는 그 밖의 문제들 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우리가 주인이다, 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참여하길 바란다."
2002-11-11 18:29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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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주 기자는 경희사이버대 문화창조대학원 문화예술경영 전공 주임교수이다. 지난 십여년 간 생활예술, 곧 생업으로 예술을 하지 않는 아마추어 예술인들의 예술 행위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 지금은 건강한 예술생태계 구축을 위해 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이를 위한 다양한 예술인 사회적 교육 과정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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