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마다 트레이드마크라 해도 좋을 상징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라 불리는 칸느엔 '팔레 데 페스티벌'의 24개 계단, 그 위에 깔린 레드카펫이 있다. 영화제를 찾는 이들 가운데 이 계단 앞에서 사진 한 장 남기지 않는 이가 과연 있을까. 예술성으로 유명한 베니스 영화제와 적극적 정치참여가 특색인 베를린 영화제에도 관련된 행사가 여럿이다. 할리우드에서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찾는 이들은 돌비극장과 인근 명예의 거리 앞에서 셀카를 찍느라 바쁘다.
 
어느덧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를 여럿 배출한 한국이다. 적어도 부산과 전주 영화제 만큼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경쟁력을 가졌다 봐도 무방하다. 특색으로 승부해온 부천, 제천, 무주영화제 또한 저만의 경쟁력을 갖춘 가운데 멀리서 기꺼이 찾아오는 이들을 만들어내는 여러 영화제가 영화산업은 물론 지역경기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징은 무엇일까. 전주 영화의 거리 일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제는 한국에서 독보적 2위인 규모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아쉬움을 노정해왔다. 특히 번화가인 영화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전주만의 특색이 없다는 것이 자주 지적돼 왔다. 메가박스와 CGV라는 두 개 위탁 멀티플렉스에서 대부분의 영화를 상영하는 건 타 지역 영화 팬들에겐 그다지 매력이 없는 부분이다. 외부에서 온 이들이란 전주 영화제만의 특색을 구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니모를 찾아서 포스터

▲ 니모를 찾아서 포스터 ⓒ JIFF

 
JIFF의 상징 전주돔에서 만난 영화
 
그리하여 전주는 지난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앗아갔던 저의 마스코트를 부활시키기에 이른다. 이름하야 전주돔, 3년 만에 돌아온 전주국제영화제의 상징이다. 돔, 통상 완만한 지붕을 씌운 반구형 건축물을 가리키는 말이다. 수렵채집 시대의 텐트 형태 주거, 또 몽골 게르와 같은 유목민의 주거지가 돔의 원형이라고들 말한다. 즉, 이동에 편리하고 비바람과 새벽이슬을 막을 수 있는 간이 건물이다.
 
전주돔은 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거리 인근에서 다수 인파를 모으기 어려운 전주의 특성을 공격적으로 돌파해낸 결과물이다. 주차장 같은 공터에 대형 천막을 설치해 영화를 상영하고, 완벽한 방음을 비롯해 상영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것을 도리어 영화제의 매력으로 전환해낸 것이다. 전주돔 바깥으로 제멋대로 빠져나가는 소리와 관객들의 웃음소리, 빡빡한 규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관람이 이뤄질 수 있어 전주국제영화제를 찾는 이들에게 색다른 감상을 일으킨다.
 
이 전주돔이 2022년 개폐막식을 여는 대형 천막으로 돌아오더니 지난해엔 '스타워즈 돔 in 전주'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끌었다. 디즈니와의 동행이 영화팬을 넘어 대중에게 향하려는 전주국제영화제의 외연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일까. 이번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2년 연속 디즈니에 돔을 내주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영화제 기간 내내 영화의 거리 인근 시청입구 사거리 옆 공터에 설치된 돔에서 '픽사 in 전주 with <인사이드 아웃 2>' 특별상영이 진행됐다. 예의 전주돔이 지난해엔 스타워즈돔이, 올해엔 픽사돔이 된 것이다. 내달 개봉예정인 <인사이드 아웃> 관련 포토존이 영화제 공간은 물론 한옥마을 일대 경기전 앞 광장에까지 설치되었고 픽사돔 외부도 픽사 애니메이션 관련 행사장으로 탈바꿈했다. 아이와 동행한 가족 단위 관객부터 젊은 여성과 청소년들까지 뜨거운 관심을 보인 건 물론이다.
 
니모를 찾아서 스틸컷

▲ 니모를 찾아서 스틸컷 ⓒ JIFF

 
발길 이어진 픽사돔의 어린이날 라인업 
 
픽사 애니메이션이야 가히 전국구, 아니 세계적 인기를 자랑한다. 저기 아프리카 서안 어느 나라나 서아시아 사막 위, 또 아마존 인근 어느 마을에서도 '두 유 노 쏘니'며 '두 유 노 BTS' 하면 꽤 높은 타율로 알아듣는 세상이다. 픽사 또한 그와 같은 지위를 누리고 있어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내내 돔에 사람이 없는 날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주최 측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을 날이 바로 어린이날 라인업이다. 이번 영화제 기간은 어린이날을 포함하고 있어 특별상영과 찰떡같이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대목이 예상됐던 이날 상영작으로 어떤 작품을 선정할까 고심이 깊었을 것도 당연한 일이다. 속편 개봉을 앞둔 <인사이드 아웃>부터 <몬스터 주식회사> <라따뚜이> <월-E> <업> <코코> <소울> <엘리멘탈> 등 화려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픽사가 아닌가.

픽사의 선택은 분명했다. 가정의 달 5월, 그중에서도 어린이날인 5일의 돔을 <니모를 찾아서>에 내준 것이다. <니모를 찾아서>가 어떤 영화인가. 2003년 픽사가 디즈니의 손을 잡고 제작한 다섯 번째 장편으로, <토이 스토리> 1,2편과 <벅스 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에 이어 픽사 전성시대를 써내려간 작품이다.
 
특히 픽사 스튜디오의 기술적 발전보다는 디즈니와 함께 한 각본의 완성도가 더욱 돋보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전작인 <토이 스토리> 시리즈와 <몬스터 주식회사>에 비해 기술적인 면에서는 혁신이라 할 변화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선과 악의 대립구도 속에서 권선징악의 주제만을 확대 재생산했다는 평을 받은 전작에 비할 때 한 층 단단하고 풍성한 드라마의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니모를 찾아서 스틸컷

▲ 니모를 찾아서 스틸컷 ⓒ JIFF

 
픽사의 전성시대 한 가운데서 등장한
 
이를 방증하듯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성공시킨 존 라세터 대신 앤드루 스탠튼이 키를 잡고 작품을 만들었다. 훗날 <월-E>를 탄생시킨 스탠튼은 <니모를 찾아서>를 자식에게 집착하던 부모의 성장이라는 이중 성장드라마 구조로 만들어 현대사회 속 과잉보호와 교육을 자연스레 여기는 부모들에게 상당한 울림을 던졌다.
 
주인공은 니모다. 흰동가리, 혹은 광대물고리를 뜻하는 광대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물고기 가족의 아기 물고기다. 아버지는 말린, 어머니는 코랄인데, 알을 낳고 부화를 기다리던 중 상어의 습격을 받고 코랄이 실종되기에 이른다. 그로부터 말린은 홀로 살아남아 태어난 니모를 과보호하는 아버지가 된다.
 
하지만 니모가 아버지의 깊은 뜻을 알 리가 없다. 천방지축이던 그는 학교에 나간 첫날부터 잠수부에게 납치돼 시드니에 있는 치과의사 수족관에 들어가기에 이른다. 말린은 그야말로 혼비백산하여 유일한 자식 니모를 찾아 온 바다를 헤매기에 이른다. 니모는 니모대로 탈출을, 말린은 말린대로 모험과 구출을 시도하니 그 긴박한 과정이 지켜보는 이를 숨죽이게 한다.
 
당대 최고를 자처하던 픽사의 CGI 애니메이션 기술은 호주 산호대의 화려한 바다 속 풍경을 훌륭히 재현해낸다.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던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며 가족단위 관객을 상대로 한 이야기 구성에 전문성을 드러내온 제작진으로의 교체까지 <니모를 찾아서>를 둘러싼 성공요인이 하나 같이 빛을 발한 작품이다.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 JIFF

 
한국의 부모들이 니모의 이야기를 봐야하는 이유
 
혹자는 디즈니의 만화영화들에서 항상 만나던 유아적 감성이 여전하다며 비평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동물의 종이며 외모에 따라 선악의 성격을 부여한다거나, 전작에 비해서는 나아졌지만 다분히 교훈적이고 가족적인 귀결로 이어지는 모습 등이 그렇다. 그럼에도 다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그것도 어른과 아이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그리 많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니모를 찾아서>와 같은 작품의 가치가 상당하다.
 
작품이 거둔 성공, 또 제작된 지 20년이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인기가 그를 입증한다. <니모를 찾아서>는 미국인이 최고의 애니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다. 관련한 설문에서도 수차례나 최고의 애니로 뽑힌 건 유명한 일이다. 2003년 열린 제7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건 당연하게까지 여겨진다. <겨울왕국>이 나오기까지 전미 박스오피스 애니 흥행 1위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니 이 작품이 미친 파급을 알만도 하다.
 
미국 입장에선 과보호며 과잉교육처럼 여겨지는 말린의 자세가 일견 보편적인 부모상으로까지 여겨지는 한국에선 <니모를 찾아서>가 상대적으로 그만한 위상을 갖지 못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140만 관객이 들어 여타 픽사 작품에 비해 흥행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학교 수행평가는 물론, 입시까지 깊이 관여하는 부모를 일컬어 헬리콥터맘이라고 부른다. 공직자가 자식 봉사활동, 장학금까지 개입해 챙겼다는 논란이 수시로 터져 나오는 모습은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한지를 되묻게 한다. 대학교, 군대에까지 전화해 자식의 안녕을 묻는 부모의 이야기를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오늘의 한국에서 니모와 말린이 겪은 수십 년 전 모험은 더 귀하게 다가온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JIFF 니모를찾아서 픽사 김성호의씨네만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적어봐야 알아듣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