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지 언더 파이어>(1996)
ⓒ 20C Fox
금방이라도 끝날 것처럼 호언장담하던 이라크 전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후세인 동상을 끌어내렸고, 부시 미 대통령이 비행기를 몰고 나타나 승전을 선언하고, 숨어있던 후세인을 잡아다 사형 선고를 내렸지만 여전히 총성은 끊이지 않는다. 바그다드에서조차 중심부를 벗어나면 미군도 안전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미군 전사자는 3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이라크 침공을 밀어붙였던 부시 대통령에 제대로 대응하는 정치 세력이 없던 상황에서 반전 엄마 '신디 시핸'이 불씨를 지폈다. 부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행진을 벌였고 체포되는 것에 개의치 않았다. 아들 케이시를 이라크에서 잃은 엄마의 하소연쯤으로 치부되었던 반전 엄마의 외침은 끈기 있게 이어졌고 다른 지지자들을 모으는 구심점이 되었다. 이번 미국 중간선거가 이라크 전쟁에 대한 평가를 가늠하는 자리가 되고 그 결과 부시 대통령을 견책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에는 신디 시핸의 끈기가 한몫 했을 것이다. 최근 대추리를 방문하기도 했던 그녀는 아들을 그리는 모정을 넘어서 미국의 세계 지배 정책을 비판하며 국제 연대로까지 걸음을 넓혀가고 있다.
 엄마는 전쟁터에? 여성의 군 진출이 늘어나면서 전투 임무에 투입되고 희생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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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드라 스미스의 선택은 그 방향이 달랐다.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던 둘째 딸이 지뢰에 부상을 입고 돌아오자 그 지뢰들을 없애기 위해 직접 나서기로 했다. 39세의 나이로 군에 입대한 그녀는 폭발물 제거 임무를 자원했다. 큰딸이 두 아이를 둬 할머니 소리를 듣는 그녀는 스무 살 아래인 동료들과 훈련을 받고 있다. 고된 훈련 도중 뼈에 금이 가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6개월 훈련을 마치는 2007년 1월에 이라크로 배치될 것이다. 이라크 전쟁이 미국인들이 자랑하는 좋은 가치들을 퇴색시키고 미국 경제와 사회에 큰 부담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바로 부시 반대, 전쟁 반대로 기우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9.11 테러의 공포는 미국인들을 지배하고 있고 일단 미국이 시작한 전쟁은 승리로 매듭지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미국인들도 적지 않다. 한편으로 무모해 보이는 신드라 스미스의 선택 역시 미국인들에겐 하나의 용기로 비춰지기도 한다.
 항상 예쁜 모습만 보이던 멕 라이언이 흙투성이로 등장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굿 윌 헌팅>을 찍기 전의 맷 데이먼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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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태미 덕워스를 만난다면 용기를 떠올린다. 그녀는 2004년 11월 12일 블랙호크 헬기를 몰고 바그다드 상공을 날고 있었다. 예고 없이 날아든 RPG 로켓탄이 조종석을 덮치지만 않았다면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조종석이 직격된 상태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 헬기를 비상 착륙시켰지만 두 다리를 잃었다. 이라크 전쟁에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군인에게 내려진 명령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그녀였기에 더더욱 쓰라린 상처였을 것이다. 여군에게 허락된 전투병과였기에 헬기 조종사를 지원하고 고된 훈련을 이겨낸 태미 덕워스였다. 그녀는 고통스런 재활치료를 이겨냈고 이라크 전쟁을 바로잡기 위해 나섰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아성인 일리노이 주 하원선거에 뛰어들었다. 휠체어를 타고 선거구를 누비는 그녀의 모습은 민주당에 큰 힘이 되었다. 공화당 차원에서 쏟아 부어진 대대적인 지원에 밀려 2% 차이로 낙선했지만 정치 신인으로는 대단한 선전이었고 전쟁터와 선거판에서 겪은 두 번의 패배가 그녀의 용기를 꺾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다.
 남성들은 아군에 대한 오인사격과 비겁한 도망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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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영웅은 할리우드에서 즐겨 다루는 내용이지만 걸프전을 배경으로 한 <커리지 언더 파이어>(1996)는 여성이 주인공인 흔치 않은 영화다. 헬기 조종사로 전사한 여군에게 훈장을 수여하기 위해 조사를 벌이지만 부대원들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마치 <라쇼몽>(1950)처럼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했던 그녀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여성의 용기가 전쟁에서 좌절한 남성들을 일으켜 세운다는 점에서 뻔한 듯하면서도 기존 전쟁영화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부시는 꼴통이고 라이스는 마녀고 미국 국민들은 CNN이나 폭스TV에 세뇌되어 이라크 전쟁에 끌려 다닌다는 식이라면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에 다가서기는 어렵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같은 영화들이 흥행과 비평에서 고른 지지를 얻는 것처럼 미국인들은 전쟁에 참전하는 것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했던 앨 고어가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아버지를 위해 자원입대한 것처럼 반대를 하는 것과 참전하는 것이 공존할 수도 있다. 신디 시핸, 신드라 스미스, 태미 덕워스는 이라크 전쟁을 대하는 미국인들의 여러 모습들 중 하나다. 서로가 걸음을 옮긴 방향은 달랐지만 전쟁을 직시하고 용기를 굽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고 미국인들은 이런 용기에 남다른 애정을 보인다. 태미 덕워스가 휠체어를 타고 선거구를 누비며 외쳤던 '이라크는 이라크 인들에게 맡기고 미국 젊은이들이 더 이상 피 흘리지 않는 것' 역시 이들 세 여성 모두가 바라는 일일 것이다.
 전쟁영웅은 할리우드에서 빼 놓을 수 없다. 여성 전쟁영웅의 등장은 여성 영향력의 확대인가, 보수적 가치에 포섭된 여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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