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있다고 하자 대뜸 "누구 암살이라도 하게?" 소리가 돌아온다. 영미문학 걸작소설을 뽑는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며 우리나라에서도 필독서로 통하는 이 책이 언제부터 암살자들의 책이 되었을까? 냉소적이고 우울하긴 하지만 주인공이 남에겐 주먹 하나 휘두르지 못하는 그런 책인데도 말이다.

 <컨스피러시>(1997). 원제 < Conspiracy Theory >.
ⓒ WB

떠도는 소문에는 존 레논 암살범인 마크 채프먼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범인 오스왈드 집에서도 이 책이 나왔다는 소문이 더해지더니 암살자들이 즐겨 읽는 책에서 암살자를 만드는 책으로 둔갑했다. CIA가 보통 사람을 세뇌시켜 암살자로 만들 때 이 책을 쓴다던가?

@BRI@ 아예 제목이 '음모이론'인 영화 <컨스피러시>(1997)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둘러싼 소문을 공식화시킨 장본인이다. 주인공 멜 깁슨은 정보기관의 세뇌를 통해 만들어진 암살자인데 일정한 주기마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사도록 설정되어 있다. 멜 깁슨이 참지 못하고 책을 사자마자 그걸 빌미로 위치를 파악한다.

평범한 사람을 세뇌시켜 암살자로 활용한다는 얘기로는 <맨츄리안 캔디데이트>(1962년, 2004년)가 있다. 1962년 영화는 한국전쟁, 2004년 리메이크는 걸프전이 배경이다. 적에게 포로로 잡힌 병사들이 세뇌를 당하지만 그걸 알지 못한 채 미국으로 돌아와 벌어지는 음모를 다루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 세뇌를 통해 꼭두각시가 된다는 공포는 국가 통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불안을 영화를 통해 표현한 것이리라.

<호밀밭의 파수꾼>이 암살자를 만들기 때문에 금서가 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이 책이 학교나 사회에 대한 강한 염증을 드러내고 쉴 새 없이 비속어가 등장하기 때문에 일부 학교에서 읽지 못하게 한 적은 있다지만 암살을 이유로 금서가 된 적은 없었다. 암살자들의 애독서라지만 사실 많은 미국 학생들이 애독까지는 아니라도 일단은 읽고 에세이를 써야 할 책이라 암살자 아니라 누구 집이라도 한 권쯤은 있기 마련일 것이다.

ⓒ WB외

<호밀밭의 파수꾼>이 음모의 책이 된 데에는 저자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비밀 가득한 삶도 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외부와의 접촉을 극도로 피했던 샐린저의 사생활은 거의 공개된 것이 없고 젊었을 때 책 표지에 실었던 사진 외에는 나이든 모습을 아는 이도 없다. 샐린저의 은둔생활은 <호밀밭의 파수꾼>의 묘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어떤 환상을 만들어내고 그 환상이 암살자 애독서라는 소문에도 영향을 준 것은 아닐지.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2000)에서 숀 코네리가 연기했던 은둔자가 바로 샐린저를 모델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걸작 하나를 남기고 세상과 인연을 끊었다는 점에선 샐린저를 떠올리게 한다. 숀 코네리가 연기했던 은둔 작가 포레스터는 흑인 청소년과 우정을 나누고 그를 위해 오랜 은둔을 벗어나 나들이를 하는 따뜻한 모습을 보여준다. 만약 샐린저가 포레스터의 모델이라면 암살자의 대부에서 내 인생의 멘토로 변신하는 순간이다.

 <파인딩 포레스터>(2000).
ⓒ Columbia

샐린저는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주인공 홀든의 목소리로 할리우드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다. 할리우드로 글을 쓰러 떠난 형을 가리켜 '창녀 노릇'이라 비난하고 영화를 보려고 길게 줄을 늘어선 사람들을 한심하게 바라본다. 그래도 <호밀밭의 파수꾼>에는 비록 홀든 자신이 아니라 여동생 피비가 좋아한다는 핑계를 대긴 했지만 '쌈박한 영화'라고 추켜 세워준 영화들이 있었다. 프랑스 영화 <빵집 마누라>(1938)와 히치콕 감독의 <39계단>(1935)이 그 주인공인데 아무래도 샐린저 자신의 취향은 아니었을까?

ⓒ Gaumont British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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