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에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다닌 분들이라면 '나이키'와 '나이스' 사이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운동화라 하면 그냥 동네 시장에서 사던 것들만 알았고 메이커라 해 봐야 '기차표' 정도나 알던 우리들에게 몇 만원 하던 나이키 운동화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사 달라 조르는 가정문제로 시작했지만, 이내 나이키를 신은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 사이에서 계급갈등(?)으로 커졌다.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더니 끝내 학교에서 메이커 신발을 신고 등교하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일종의 공권력 개입까지 불러냈다. 당시 고급 메이커 운동화가 여럿 있었지만 그 기준은 확실히 나이키였다. 그땐 '짜가'라 불렀던 요즘 '짝퉁'에 해당하는 운동화도 여럿 나왔는데 대부분 나이키를 표적으로 삼고 있었다.
 <살인의 추억>(2003)
ⓒ 싸이더스

제일 유명한 것이 영화 <살인의 추억>에도 등장했던 '나이스' 운동화였고, 짝퉁이라 할 물건은 아니었지만 나이키 로고를 흉내 낸 탓에 구박받았던 '페가수스' 운동화도 기억하실 게다. @BRI@ 나이키 운동화가 탄생한 것은 1962년이고 그 유명한 나이키 마크가 달린 것도 1971년부터라 그 역사가 그리 긴 것은 아니다. 지금은 나이키가 세계 시장을 주무르고 있지만 리복이나 아디다스 같은 유럽 메이커들을 따라다니기 급급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나이키가 1980년대 한국 시장에서는 괴력을 발휘하며 새롭게 열린 메이커 운동화 시장을 장악했고, 푸마 운동화를 나이키 로고를 뒤집은 짝퉁으로 취급되게 할 정도의 괴력을 선보였다. 나이키 운둥화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로고를 붙인 것으로 꼽는 이들이 있지만 운동화에 고유의 로고를 붙이는 것은 유럽 메이커들이 이미 오래전에 하던 일이었다. 나이키의 성공은 운동화에 로고를 붙인 것이 아니라 그 로고를 마케팅 한 것에 있었고, 할리우드 영화를 비롯한 미국 대중문화의 지원 사격이 불을 뿜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로 치자면 영화 <이유 없는 반항>과 리바이스 청바지의 관계와 같은 큰 것 한 방은 없었지만, 무수한 영화들에 끊임없이 노출되었다. <백 투 더 퓨처> 같은 영화에서는 시작하자마자 나이키 운동화를 보여주고 그것도 영화 진행에 핵심적인 소품인 도난당한 핵물질과 함께 배치해서 주의집중까지 도와주는데, 이런 식으로 나이키 등장하는 영화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백 투 더 퓨쳐>(1985)
ⓒ Universal

1980년대는 좀 그런 시대였다. 정치적으로 억압된 시기였지만 이른바 3S 정책과 칼라 TV가 상징하듯 대중문화에서는 일부러 군기를 풀어주던 시기였다. 정통성 약한 정권이 미국에 아부하느라 시장개방이 이뤄졌다. 할리우드 영화 직배가 시작된 것이 보여주듯 개방된 시장이 대부분 미국 상품으로 차지해 나갔고, 그 바람을 타고 나이키가 대한민국을 강타한 셈이다.
 <스페이스 잼>(1996)
ⓒ WB
나이키 운동화를 세계무대로 퍼트린 일등공신이라면 마이클 조던을 빼놓을 수 없다. 각종 NBA 영상과 함께 마이클 조던이 선전하고, 마이클 조던이 신는 바로 그 운동화를 사고 싶은 욕구도 함께 퍼져 나갔다. 아예 '에어 조던'이라는 이름이 붙은 운동화를 누가 외면할 수 있겠는가. 마이클 조던은 직접 할리우드 영화 주연도 맡아 워너 브러더스 소속 캐릭터들과 함께 <스페이스 잼>(1996)을 찍었는데, 이때 신었던 운동화는 다시 '스페이스 잼' 버전으로 만들어져 팔려나갔다. 할리우드는 그 자체가 세계 시장을 공략하는 미국의 문화상품이면서 다른 문화상품들을 지원해 주는 역할도 맡고 있으니, 미국이 한국 스크린 쿼터를 눈엣가시로 여기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나이키 로고가 만들어진 것이 1971년이니 그 이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는 PPL이 곤란한 것일까? <기사 윌리엄>(2001)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중세 사람들이 그룹 퀸의 노래를 부르는 식으로 현대적 감각으로 버무린 영화이긴 하지만 아예 기사 갑옷에 나이키 로고를 새겨 넣는다. <기사 윌리엄>은 시합 중에 죽은 기사를 대신해서 몸종이 대신 출세하는 이야기다. 떠돌이 시인 하나가 가세해서 귀족이 아닌 우리 주인공에게 그럴듯한 배경과 사연을 만들어 준다. 아예 시합마다 직접 마이크를 잡고 백성들이 솔깃할 이야기를 연출해서 우리 주인공을 스타로 만들어 버리는데, 현실에서 할리우드가 하는 일 그 자체가 아닌가!
 <기사 윌리엄>(2001)
ⓒ Colum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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