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알트먼 감독. 유작이 된 <프레리 홈 컴패니언>(2006) 촬영장에서.
ⓒ GreeneStreet Film
할리우드 거장과 미국 독립영화 대부가 같은 사람일 수 있을까? 지난 11월 21일(현지 시각)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로버트 알트먼 감독의 부고에선 노장감독과 이단아라는 극단적인 소개가 모두 가능하다.

1957년 첫 장편 <범죄자들>로 데뷔한 이래 영화, 연극, TV를 오가며 지칠 줄 모르며 작품을 만들었던 로버트 알트먼을 간단하게 소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 대략 세 부분으로 나눠본다면 <매쉬>(1970)로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주목받고 <긴 이별>(1973) <내쉬빌>(1975)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던 시기, 1980년대 들어 잇단 흥행 실패를 맛보고 할리우드 스튜디오들 등지고 연극과 독립영화에서 활동하던 시기, <플레이어>(1992)와 <숏컷>(1993)의 성공으로 관객과 평단의 지지를 받으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간 시기로 나눌 수 있다.

 <매쉬>(1970), <긴 이별>(1973), <내쉬빌>(1975), <버팔로 빌과 인디언들>(1976). 서부영화까지 다양한 장르를 섭렵하던 시절.
ⓒ 20C Fox

출세작 <매쉬>는 한국전쟁 당시 미군 야전병원을 무대로 펼쳐지는 블랙 코미디다. 도널드 서덜랜드가 연기하는 반골기질 외과의사의 장난질로 관료를 비웃고 전쟁의 부당함을 폭로한다.

우리에게 <매쉬>는 한국사람들이 베트남 삿갓을 쓰고 나온다 해서 한국이 잘못 나오는 영화로 알려졌지만 사실 이 영화는 말이 한국을 배경으로 삼고 있을 뿐, 1970년이라는 개봉연도를 볼 때 베트남전쟁에 대한 비판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디어 헌터>(1978)나 <지옥의 묵시록>(1979)처럼 베트남전쟁을 비판하는 영화들이 1970년대 말에나 나온 것을 본다면 한국전쟁을 빌어 베트남전쟁을 풍자하며 앞서간 <매쉬>에서 알트먼의 반골기질을 본다.

'Suicide Is Painless'라는 냉소적인 주제가가 흐르는 <매쉬>는 좌충우돌 코미디지만, 신나게 웃고 난 뒤 쌉싸래한 맛이 혀를 괴롭힌다. 전쟁 비판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알트먼 자신이 폭격기 조종사로 2차 대전에 참전하여 전쟁의 공포를 절감한 것을 떠올려 본다면 날선 비판보다는 풍자와 해학을 택한 그가 달관한 이처럼 느껴진다.

항상 현실의 부조리를 걸고 넘어지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이나, 비판의 탈을 쓴 비난이 아니라 풍자와 해학으로 버무려 밥상을 차리는 것이 관객과 평론가에게 고루 사랑받은 알트먼의 비결인 셈이다.

 명색이 코미디 영화인 <매쉬>(1970)의 타이틀은 헬리콥터가 부상자들을 끊임없이 실어 나르며 "자살은 고통없지, 많은 변화를 가져오지" 하고 노래하는 시니컬한 주제가로 채워진다. 한국전쟁을 핑계삼아 베트남 전쟁을 풍자했던 알트먼의 반골기질.
ⓒ 20C Fox

우리에게 알트먼 감독이 널리 알려진 것은 <플레이어>(1992)부터였다. 할리우드 안과 밖을 고루 경험한 알트먼 영감님이 할리우드 시스템을 밥상에 올려놓고 마음껏 요리했다.

<플레이어>의 줄거리와 구조는 한 마디로 요약하기 힘들다. <내쉬빌>(1975)에서도 이미 선보인 바 있지만, 여러 인물들을 여러 겹 줄거리에 던져 놓고 움직여 나가다가 한 곳에 모아 반전을 시도하는 알트먼 스타일은 <플레이어>와 <숏 컷>(1993)으로 다시 화려하게 꽃 피며 그에게 다시 전성기를 가져다준다.

분명 알트먼은 영화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달인이며, 복잡한 형식 구사는 어느 할리우드 감독의 고백마냥 흉내 내기도 쉽지 않지만, 그런 형식들이 풍자로 비판하는 내용을 살려 낸다는 데 묘미가 있다. 악당 하나를 두고 책임을 묻는 것이 할리우드 방식이라면 인생의 여러 면, 사회구조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것이 알트먼의 방식이다.

악당이 죄를 다 뒤집어쓰고 죽으면서 해결되는 것이 할리우드 방식이라면, 부조리한 것도 알겠고 인생이라는 게 깨끗할 수만은 없다는 것도 알겠지만 '그래도 삶은 계속 된다'는 게 알트먼 영감님의 화법이다.

 <플레이어>(1992), <숏 컷>(1993), <패션쇼>(1994), <고스포드 파크>(2001). 평론가들이 'Altmaneque'라 불렀던 특유의 스타일로 새로운 전성기를 누렸던 알트먼 감독.
ⓒ New Line 외

스타 캐릭터 한두 명이 하나의 이야기 흐름을 끌고 나가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기본 문법과 여기에 특수효과를 바르면 블록버스터가 되는 관행(?)에 견준다면, 다층적인 이야기구조와 모자이크에 가까운 인물 배치 그리고 마무리 반전으로 이뤄지는 알트먼 스타일은 그 자체로 할리우드에 대한 반론이다.

평론가들은 알트먼 특유의 스타일에 'Altmaneque'라는 이름까지 붙여 줬는데, 알트먼 스타일의 재발견이자 그에게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준 <플레이어>가 할리우드를 풍자하는 영화라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겉보기에 살인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처럼 보였던 <플레이어>에서 주제를 담고 있는 장면은 마지막 카메오 출연처럼 처리된 시사회 속 영화일 것이다. 영화 내내 마치 <데드맨 워킹> 같은 영화인 듯 기획되던 영화는 순간 <다이하드> 몇 탄쯤으로 돌변하고 대박 예감에 박수치는 제작자들 사이에 어느새 타협해 버린 시나리오 작가도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다.

할리우드를 씹어버린 <플레이어>를 오히려 할리우드 스튜디오 권력자들도 재미있게 보면서 서로 '영화 속 그 제작자는 네가 모델일거야' 옥신각신했다고 하니 적들도 끌어당기는 풍자의 힘이었을까?

 수잔 서랜든까지 등장시켜 <데드맨 워킹>인척 하다가 난데없이 브루스 윌리스 활극으로 변한다. "왜 이리 늦었어요?" "빌어먹을 길이 막혀서." 이것이 할리우드 엔딩이다?
ⓒ New Line

알트먼 감독은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다섯 차례나 올랐지만 수상 운은 따르지 않았다. 칸느나 베를린 영화제에서 칭송받고 미국 비평가협회상을 단골로 받은 것에 비하면, 아카데미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주류의 대접은 시원찮았다. 그래도 올해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으니 고인 생전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겠지만, 그보다 아카데미와 할리우드 사람들 자신들의 염치를 생각하더라도 좋은 선택이었다.

폴 해기스의 <크래쉬>(2004)나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1999)처럼 작품성과 문제의식으로 주목받는 젊은 감독들 작품에서 알트먼 스타일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로버트 알트먼이 개척한 영화세계는 미국 영화계에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알트먼 감독을 배운다고 체질에 맞지 않는 다층구조를 흉내 내는 것은 달을 보라는데 손가락 보는 격일 터이다. 후배 영화인들이 놓치지 말고 꼭 배워야 할 것은 할리우드 스튜디오와 독립영화, 그리고 연극무대를 오가면서 평생 90편 가까운 연출작을 남기며 81세 나이에도 언제나 현역으로 영화를 만든 그 열정일 것이다.

 유작이 된 <프레리 홈 컴패니언>. 세월에 밀려 마지막 공연을 눈앞에 둔 이들을 알트만 특유의 화법으로 엮어 나갔다.
ⓒ GreeneStreet Fi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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