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법의학 영화 <형사 Q>
ⓒ Universal
미국 대중문화의 인기 장르인 수사물이 과학의 힘과 만나면서 인기몰이 중이다. 80년대 초 국내에서도 방영된 <형사 Q >처럼 법의학을 소재로 한 영화나 TV 시리즈들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각자 전문분야를 가진 경쟁자들이 가세하고 있는 < CSI 과학수사대>가 과학수사물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21세기 들어 과학수사물이 인기 폭발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과학수사 선진국이다. 곤충을 이용한 법의학이나 유골을 바탕으로 한 복원술, 탄도학과 유전자 감식은 물론 심리를 추적하는 프로파일링 등 첨단 수사 기법을 주도하는 나라인 만큼 그것을 소재로 삼는 수사물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과학수사물들이 대부분 화려한 특수효과로 받침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표현이 가능해진 것도 과학수사물 전성시대의 중요한 밑천이다. 과거 법의학 물에서는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장면이나 해부하면서 말로 때우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 과학수사물에서는 몸 속을 드나들며 뼈가 부러지고 백혈구가 몰려다니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과학수사물의 대명사 < CSI 과학수사대>
ⓒ CBS
좀더 넓게 본다면 미국 문화 자체가 과학으로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믿음으로 뭉쳐있다고 할까? 동양의 '기'를 응용한 <스타워즈>의 '포스'조차도 에피소드 1부터는 '미디클로디언 지수'를 등장시켜 기계로 재기 시작하는데 그냥 우리처럼 '대단한 내공이군'하는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셈이다. 사회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과학으로 모든 걸 밝혀내는 수사물이 입맛에 딱 이라는 얘기.

과학수사물의 대명사는 < CSI 과학수사대>다. 최신 법의학 기법들을 화려한 시각 효과로 살려내고, 개성 있는 캐릭터들마저 어우러져 본 편은 물론 자매편들까지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유전자 감식에 대한 관심을 높인 공로와 배심원들에게 과학수사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정도로 사회에 영향을 끼쳤다. 우리 나라에서도 일선 경찰청에 과학수사대를 설치할 계획인데 < CSI 과학수사대>의 인기가 적지 않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미국 국립보건원 기동의학팀을 다룬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
ⓒ Paramount
이름이 비슷해서 과학수사대로 오인 받지만 사실은 해군 범죄수사대인 < NCSI >는 우리 식으로 하면 헌병대쯤 되는데 본격 과학수사물은 아니지만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는지 과학수사가 중요한 방법으로 등장한다. 과학수사를 전담하는 캐릭터를 두고 탄도분석이나 유전자 감식 정도는 직접 해결한다. 실제 NCSI는 영화처럼 자체 과학수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요즘 관객은 수사관이면 유전자 채취는 기본으로 해줘야 하는 걸로 아는 시대니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은 의학수사대라 할까? 미국 국립보건원 기동의학팀의 활약을 그린 TV 시리즈로 전염병이나 원인 모를 괴질을 조사하고 확산을 막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CSI 과학수사대>가 부검을 하면서 어떻게 죽었는가 설명하면 그 상황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보여주는 것이 특기라면 <메디컬 인베스티게이션>은 현장에서 사건이 발생한 상황을 떠올리면 그 상황이 겹쳐져 나타나는 기법을 자랑한다. 이처럼 과학수사물엔 자기 주특기에 맞는 특수효과 하나쯤은 가져 주는 것이 중요하다.

 수학으로 범인을 잡는다 <넘버스>
ⓒ CBS
과학수사물은 특수한 장르처럼 느껴지지만 기법이나 경향은 생각보다 폭넓게 퍼져가고 있다. 병원을 무대로 하는 <하우스>는 환자의 관계를 중심에 놓고 있지만 병에 대해 의사들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장면에서는 < CSI 과학수사대>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하는 장면처럼 환자 몸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실감나게 묘사한다. 예전에 말로 설명하던 것을 눈앞에 직접 보여주는 것은 과학수사물의 영향이다.

<넘버스>는 수학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FBI 요원인 형을 위해 수학자인 동생이 공식을 세운다. 사람은 제 맘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패턴을 만들게 되고 수학 공식을 통해 그 패턴을 잡아낸다. 스프링클러가 물을 뿌리면 떨어진 물방울들을 가지고 물이 나온 곳을 찾을 수 있듯이 범죄가 일어난 지점을 통해 범인이 있는 곳을 ‘계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넘버스> 역시 수학 공식들과 범죄 현장이 맞물리는 고유의 특수효과를 가지고 있다.

 FBI 프로파일러의 세계 <크리미널 마인드>
ⓒ Touchstone
천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과학수사물 앞에선 마음도 조사하면 다 나온다. <크리미널 마인드>는 행동을 통해 사람을 알 수 있다는 FBI 프로파일링 수사를 다루고 있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조디 포스터가 일했던 바로 그 부서 '행동과학팀' 이야기로 각기 다른 개성과 특기를 가진 프로파일러들은 주어진 단서들을 통해 행동을 재구성하고 행동을 통해 범인의 상을 그려 나간다. <크리미널 마인드> 역시 범인을 떠올리는 나름의 특수효과를 등장시킨다.

과학으로 못 밝힐 것이 없다고 믿는 미국의 과학수사물. 우리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믿었던 미국 유전자 감식 결과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걸 떠올리게도 된다. 그럼에도 과학수사물이 인기를 끄는 2006년 대한민국에선 < CSI 과학수사대>를 미국 사람들과 별 차이 없이 즐길 수 있는 감수성과 오래된 <수사반장>의 직감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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